60년대의 베트남전쟁과 70년대의 캄보디아내전인 '킬링필드의 학살'은 2차대전 후의 세계적인 전쟁과 학살로 악명을 떨친 또 하나의 인류사 비극이었다.
물론 그 선배격인 우리의 6.25남북전쟁, 역시 수백만이 죽고 다친 참극이었다. '불교국가'인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민이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 벌어졌는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자료와 증언으로 전쟁의 진실이 대부분 밝혀지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념전쟁으로 보는 보수적 시각도 있지만, 탈이념의 진보적 시각으로 보는 학자들에 의하면 근현대사 모든 전쟁은 1, 2차세계대전과 맞물린 식민지전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19세기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자원약탈과 첨단무기의 무한경쟁을 벌이고 약소국가를 정복, 식민지를 만드는 강대국의 침략과 살상으로 이어졌으며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희생양으로 바쳐졌다. 동남아와 한국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고난과 질곡의 식민지국가들이 2차대전 후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과 함께 자유독립이 이뤄질줄 알았으나 뜻하지 않게 같은 동족끼리의 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미안마는 불란서와 영국이, 한반도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해방직후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로 분열되면서 땅과 사람이 반쪽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공산화를 반대한 미국 영국 등의 자유진영과 공산정부수립이 목적인 중국 소련의 지원아래 이들 국가는 남북으로 쪼개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식민지국가들의 기나긴 계급투쟁과 이념전쟁이 시작되었고 강대국들은 정의 평화라는 간판을 내세우고 민족전쟁을 부추기고 지원했다. 그 결과 좌우이념으로 갈라진 서로 다른 정부는 전쟁과 민중탄압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한 쪽 정부에서는 강대국의 지원아래 강력한 반공정부를, 다른 쪽 정부는 다른 강대국의 지원아래 강력한 공산정부를 수립했다. 이를 반대하거나 따르지 않는 자유시민들을 무차별 학살 고문하는 야만적인 통치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자행했다.
미군정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우파 군사독재정권의 만행이나 베트남우파 친미 친불정권과 역시 친불 친중의 시아누크, 폴포트 정권의 무능하고 극악무도한 좌파 정권의 공통점이다.
우리는 좌우이념전쟁이 얼마나 실체가 없는 엉터리임을 알고 있다. 좌우파를 내세워 서로 정통성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술수에 다름아니었다.
이념의 약효가 끝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남북상쟁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이념이 최고의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해방 후 40년의 독재정권을 계승한 구한나라, 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자는 보수우익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해 대선내내 좌파정권 척결을 강조했으나 산전수전 다겪은 유권자들은 더이상 속지 않았다.
문제는 집권전략을 비전이나 정책이 아닌 좌우이념과 남북대결의 흑백논리로 무장한 보수당의 앞날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오랜 세월, 이념에 시달리거나 사로잡힌 세대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진정한 인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정의의 시민들이 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 민족전쟁은 종언을 고했다, 그러나
1세기 이상 지속된 이념 및 민족전쟁은 종언을 고했으나 80년대에 시작된 중동 이슬람민족 종교전쟁이 뒤를 이어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게릴라 탈레반이 9.11뉴욕테러 이후 구소련에 이은 미국이 중동지역과 기나긴 전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에 진출한 무장 이슬람 세력은 유럽의 도시에 폭탄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건물과 민간인들을 공격함으로써 자유세계의 불안과 공분을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이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지 기약이 없다. 물론 미국과 유엔군등이 철수한다고 하지만 과격 이슬람의 보복적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인과관계라고 믿는 불교인의 시각에서 보면, 역사적으로 기독교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의 증오 살상 전쟁의 역사는 천년이 넘은 장구한 세월이다.
7세기에 생긴 급진 이슬람은 기존의 기독교 세력과 맞서 유일신주의를 신봉하고 온건한 평화적 이슬람 세력과 다르게 무장투쟁과 정복전쟁을 일으켰다.
이슬람의 문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온건 평화주의 이슬람은 사막을 건너 중국과 인도로 서쪽으로 이집트 그리스 등 동구권까지 진출,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문화교류를 통해 문물의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 역시 신라 백제 고려 때까지 천년동안을 평화적 이슬람세력과 경제 문화교류를 통해 상호간의 경제이익과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명박정권 때 사우디등으로 부터 이슬람차관을 무이자로 들여오는 것을 극력반대한 한국기독교는 우리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하며 종교갈등의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오랜 세월동안 불교문화국가가 이들과 평화적으로 교류해서 번창한 역사적 배경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무조건 이슬람자본이나 종교문화를 받아들여도 안되겠지만 또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흔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의 역사만 알고 있지만 인도와 중국 동남아의 역사에서 보면 극단 이슬람세력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것은 불교다.
5세기 인도 나란다의 불교대학교는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교로 12세기 이슬람의 침략으로 파괴되었고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는 원인이 되었다.
본래 찬란한 다원화 불교문화국가이던 전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슬람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었고 오직 이슬람의 유일신 배타주의로 변하였다.
구마라집의 고향 쿠차와 스기나가르의 추억
15년전 나는 여러번에 걸친 중국 인도여행 끝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정신지도자인 달라이라마 성하를 뵙고 그 곳에서 6개월을 보냈다.
티베트와 인도문화사를 연구하고 또 중국에 빼앗긴 티베트불교 문화를 폭넓게 이해할 목적이었다. 한 여름 우기가 시작되기 전 7월초순, 보름간에 걸쳐 북인도를 혼자 여행했다.
파기스탄과 인도의 국경지대를 몇번이나 지나고 삼엄한 군사경계지역을 통과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힌두와 이슬람문화권이 대립하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에게 양털담요로 잘 알려진 캐시미르 스기나가르는 해발 5천미터의 설산을 이고 바다같은 호수를 끼고 있는 파라다이스였다. 보트주택에서 하루를 묵으며 한여름의 풍광을 즐겼으나 조금 떨어진 시내는 해가 저물면 무장한 인도군과 파키스탄군과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변했다.
북인도의 여름피서지이며 아름다운 그 곳이 불교역사에 길이 남은 천재학승인 구마라집의 수년간 머물던 불교성지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마음의 충격은 컸다. 그 후 마호메트의 머리털이 보존되어 있는 이슬람의 성지 조기에 가서 어쩌면 우리와 꼭닮은 눈푸른 이슬람인들을 만났고 친절하면서 때로는 종교적위엄이 공존하는 결코 평화롭지 못한 지역을 다녔다.
설산을 머리에 이고 사막과 돌산 오아시스가 번갈라 나타나는 땅을 계속가면 나타나는 평화의 땅, 티베트불교문화지역인 '오래된 미래' 라닥지역이다.
티베트 민족국가로 라닥은 수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 실크로드의 땅이었으나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의 문화와 인종 종교가 섞여 복합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으나 그 중심은 라닥의 티베트불교문화다.
만일 여기에도 불교가 사라지고 흰두교도와 이슬람,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만 남는다면 유혈분쟁이 발생할 것은 자명하다.
역사적으로 볼때 고려불교는 유불선을 조화 포용했듯이 불교문화는 시공을 초월해서 소통 융합 통합의 인류문화를 창조했고 또 널리 보급했다. 근본주의와 민족주의 정치이념과 종교적독선을 고집한 인류사에서 말이다.
토인비와 아인슈타인, 야스퍼스가 불교를 인류미래의 종교라 한 것은 매우 탁월한 통찰이다. 불교인은 어떤 이유로도 세계와 인류를 살상하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배하거나 빼앗지 않는 평화종교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류의 축복이 아닐수 없다.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 분쟁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된다 평화와 통합의 민족종교인 불교인으로서 올바른 역사를 복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 소암 승려시인, 평화통일불교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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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 분쟁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불자가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