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필요한가…자본에 빠진 승려는 쫓아내야”
“스님이 필요한가…자본에 빠진 승려는 쫓아내야”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7.04.24 16: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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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술락 시바락사, 국가주의·자본주의·소비주의에 불교로 답하다
▲ 술락 시바락사.ⓒ불교닷컴

세계적인 불교활동가 술락 사바락사(Ajarn Sulak Sivaraksa)는 21일 불교활동가들을 만나 ‘불교, 평화를 말하다-Role of Buddhist Peace Building in Asia’를 주제로 강연했다. 서울 안국동 월드컬쳐오픈 W스테이지에서 열린 강연회는 대불련총동문회, 불교환경연대 신대승네트워크, 정의평화불교연대가 주최했다. 21일 오후에는 불교계 기자들과 차담을 하면서 강연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술락 시바락사(Ajarn Sulak Sivaraksa, 84세)는 태국 태생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비평가이다. 달라이라마, 틱낫한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불교 지식인이다. 영국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BBC에서 PD생활을 했다. 이후 태국으로 돌아와 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 두 차례 망명했다. 1989년 달라이라마, 틱낫한, 마하 고사난다 스님의 지지 하에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 International Network Engaged Buddhism) 설립을 주도했다. 니와노평화상, 바른생활상을 수상했다. 불교교단의 부패에 대해서도 크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의 저서 <평화의 씨앗>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됐다. <지속가능성의 지혜-21세기 경제학>과 자서전이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그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실천적 불교사상을 전파하고 뿌리내린 인물이다. 강연과 인터뷰 진행, 통역은 통역사와 함께 신대승네트워크 부설 아시아불교싱크탱크의 민정희 씨가 도움을 줬다. 강연에는 주최 측 외에도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불교계 및 시민단체 활동가 5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과 인터뷰 과정에서 이루어진 질의 응답 내용을 정리한다.

“스님 조차 돈벌려 하지만, 이것은 불교가 아니다”

Q. 한국불교는 불자 300만이 줄어 긴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그리고

한국 사회는 촛불집회 후 적폐청산이 과제라고 말한다. 술락 박사는 ‘적은 내안에 있다’고 했다. 적폐청산과 술락 박사의 말씀을 어떻게 연결해 이해해야 하나?(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A 1. 불교 뿐만 아니라 전통종교들이 모두 신자를 잃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술이 덧붙여지면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경쟁하려 한다.

심지어 스님들조차 돈을 많이 벌려하는 데 그런 것은 불교가 아니다. 많은 종교들 중에서 불교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불교의 독특함은 다른 종교는 도그마가 있어 믿어야 한다. 무슬림은 코란을 믿어야 하고, 개신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가톨릭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성모를 믿어야 한다. 하지만 불자가 되려면 부처조차 믿지 않아도 된다. 저는 불자들이 부처님에 집중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처님은 자신을 ‘친구’라고 말했다. (법문을 듣는) 상대를 도반이라고 했다. 좋은 벗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과 이야기 나누고 논쟁하고 도전할 수도 있다. 도반이 핵심이다.

우리 불자들이 도반의 개념을 현대사회로 가져온다면 불교가 번창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와 동등하게 말해야 한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에데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한 것이다.

제 나라(태국)은 과거에는 스님만 30만 명에 달했다. 15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에 태국 인구가 800만이던 시대다. 지금 인구가 6500만 명인데 여전히 스님은 30만이다. 하지만 스님들의 법력, ‘질’은 많이 떨어졌다. 스님은 금욕하고 계를 지켜야 하는 데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지키기가 많이 어렵다. 여러분들이 자각하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사회에서 되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불자들이 타밀타이거에 대립했다. 하지만 일부 스님들은 타밀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사회에 가르쳐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살생하지 말라이다. 우리 대부분은 살생하지 않는다. 개인은 그렇지만, 정부가 너무 많은 무기를 소유하도록 우리가 허락하고 있다.

두 번째는 도둑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은 법적으로 훔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사회로 가져올 수 없다. 제가 <지속가능성의 지혜-21세기 불교>라는 책이 있다. 곧 한국에서도 번역 돼 나올 예정이다. 주류경제는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주류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그래서 불교경제가 필요하다. 어떻게 만족하고, 어떻게 주류경제에 도전할지. 종교나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런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불교는 명맥만 유지하거나 점점 줄어들 것이다.

▲ 질문하는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불교닷컴

“발언의 자유, 그리고 도덕적 용기가 중요”

A 2. 선거는 연극 같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서구제국주의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선거 하지 않으면 우리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대부분이 믿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쉽게 믿지말라고 가르쳤다. 싱가폴을 보자. 4년마다 선거를 한다. 그런데 지배당이 계속 지배하고 있다. 싱가폴은 풍요롭게 살지만, 다 ‘경제의 동물’이다. 싱가폴의 누구도 생각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정부에 도전할 권리가 없다.

여러분들이 민주주의를 믿고 있다면 ‘발언의 자유’를 실천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나이든 사람들과 구체제를 비판하라고 격려해야 한다. 친구와 적들에게 마음열라고 해야 한다. 발언의 자유가 없으면 선거도 없다. 발언의 자유 다음은 도덕적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도덕적 용기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소수자나 기득권이 없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 시절에 그분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도덕적 용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자신만 생각하고 있다. 정치적인 타협을 하고 있다. (수치는) 로힝야 사람도 보호하지 않고 있다. 정치가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큰 정치인들을 바라만 봐서는 안된다. 우리 안에서는 모두 불성이 있다. 도덕적 용기를 함양해야 한다. 발언의 자유, 시스템에 도전해야 한다. 선거에서는 이등 삼등은 없다. 일등만 선택한다. 미국은 오바마가 많은 것을 바꿀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꾼 것이 별로 없다. 트럼프는 완벽하다.(농담) 국가를 기업으로 운영한다. 이런 것들을 마음챙김과 함께 잘 살펴야 하며, 대안 정치를 찾아야 한다.

▲ 질문하는 이도흠 교수.ⓒ불교닷컴

“구조적 폭력 이해해야”

Q. 술락 박사님의 담마다나(지혜 보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감사하다. 요한 갈퉁이 구조적 폭력을 없애야만 적극적 평화를 달성한다고 말했다.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 환경적 고를 없애려면 분노가 필요한데 경전은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또 경전에는 499명의 선원을 살리려고 499명의 선원을 죽이려던 선원을 말리다가 안 되자 그 선원을 죽인 선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선장이 전생의 부처님이다. 정의로운 분노도 이데올로기에 휩싸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중생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비로운 분노는 가능한 것 아닌가. 달라이라마도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고, 구조적 폭력에 저항해야 많은 해결과 적극적 평화가 오지 않았을까. 어떻게 생각하나.(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A. 구조적 폭력이 핵심이라고 달라이라마도 이해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지도자여서 모든 사람이 그분을 모두가 우러러봤다. 그분이 정치지도자 역할을 내려 노았다. 민주주의를 티베트에서 부흥하려 하고 있다. 엄청난 실험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테베트에서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다. 캠페인을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도자를 찾고는다. 당신이 최고인 것 같다고 하면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구조적 폭력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달라이라마가 콜라를 들고 있어 위험하다고 말렸다. 다국적기업이 코카콜라를 팔면서 다른 기업 음료들이 죽고 있다고 말하니 이해했다. 우리에겐 대안이 필요하다. 한국의 TV채널에서 불교를 부흥하려는 게 아니라, 소비주의나 광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런 것들을 다뤘으면 한다.

분노는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분노를 마음챙김으로 잘 살펴야 한다. 부패에 대해 화가 나거나 할 때 분노를 자애로 바꿔야 한다. 그냥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증오를 이해로 바꿔야 한다. 종교적으로 바꿀 수단도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소수자 착취 막는 법이 필요하다”

Q. 로힝야를 비롯해 세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차별에서 비롯된 게 아닌 가 시다. 한국에서 차별금지에 논란이 뜨겁다. 차별금지에 대한 생각은. 그리고 조계종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행보를 어떻게 생각하나.

A. 제가 한국과 한국불교의 상황에 대해 몰라 언급하면 바보가 될 것 같다. 그러고 싶진 않다.

A. 다만, 법(law)은 조화를 진작해야 한다. 소수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는 법이 필요하다. 지혜로와야 한다. 무슬림과 결혼하려면 무슬림이어야 한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어떤 불교신자는 무슬림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법을 통과하려 한다. 이는 인권 남용이다. 불자가 무슬림이 되고 싶거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무슬이 되건, 그리스도인이 되건 자기 내면의 평화를 함양한다는 전제이다.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불교 기자)

Q.  한국사회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 분노를 하지 않고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고 상대를 적으로 대하지 않고 연민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근원적 문제에 극렬히 저항하고 비타협적이어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모범을 찾기 어렵다. 잘못하는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저항하는 것이 어렵다. 분노 없는 평화로운 저항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칫 불의에 저항하는 동력을 떨어 뜨리기도 한다. 평화를 말하면 마치 중립지대(회색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화로운 저항이 어려운 문제이다.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국장)

“거리를 두고 정확히 봐야 한다”

A. 분노하면 멍청하게 만든다. 머리가 무뎌진다. 집착을 일으킨다. 그럴 경우 거리를 두는 것을 배워야 한다. 거리를 둬야 명확히 볼 수 있고 상황이 바뀐다. 사람들은 달라이라마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는 달라이라마의 예를 세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 진실 자비심 뿐이다. 중국인이 티베트인을 무자비하게 공격적이었다. 중국도 한족이 아닌 지배를 수천년동안 받았다. 중국인들이 저항했다. 마오쩌둥이 와서 모든 것을 없앴다 긍적정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이 파괴됐다. 중국인도 현명하다. 불교를 품고 유교 도교도 번성했다. 중국인들이 곧 깨어날 것으로 본다. 중국인들과 경험이 많지 않지만, 20년 전에 모든 중국인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다수의 풀뿌리 조직이 진실을 이야기고 있다. 불자가 되고 싶어하는 중국인들도 있다. 공산당이 강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약화된 것 같다. 공산당원 중에는 달랄이라마와 대화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중국도 자유로워지고 티벳도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자유로워지려면 독재가 나쁘다는 것을 봐야 하며, 국가주의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나쁜 것을 봐야한다. 주류 교육계와 언론이 전세계적으로 안 좋다.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는 소규모지만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불자 정제성 보다 바른 길 걷는 게 중요”

Q. 바른 견해, 바른 관점을 갖는 것이 불자다. 바른 견해는 무엇인지, 다른 종교인과 구별되는 불자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인가.(강성식 지지협동조합 이사)

A. 팔정도의 첫 번째가 ‘정견’이다. 바른 견해는 자아(에고)에 덜 집착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 지구와도 연결돼 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이바지해야 한다. 그것이 정견의 시작이다. 팔정도 하나씩..여덟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자기 정체성’은 유용하지만 해가 되기도 한다. 제 이름은 ‘술락 시바락사’인데 이름이 있어 여러분이 나를 알지만, 그것 때문에 제가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면 나쁘다. 정체성은 라벨(딱지)과 같다. 너무 진지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내가 불자여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느낀다면 나쁜 것이다. 불자라는 것 역시 라벨이다. 이 라벨이 의미하는 것은 불성을 깨우려는 것이다. 우리가 탐진치에서 깨어나면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불자니까 회교도나 그리스도인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다. 소승은 대승보다 본질에 더 다가갔다고 우월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대승은 소승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티베트 불교는 의례도 많고, 탑도, 사찰도 많다. 이것이 그분들의 정체성이다. 선불교에서는 그런 정체성이 없다. 선(수행)이 정체성이다. 그런 것들이 그분들에게 맞는 정체성이라면 괜찮다. 언덕을 걸어 올라갈 때 티베트사람들은 따라가는 부대가 많지만, 선불교는 혼자 올라간다. 어느 것이든 여러분에게 맞는 것을 하면 된다.

“가난한 사람 이해, 좋은 친구가 중요하다”

Q.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BBC PD도 했다. 자본적인 일상에 충실하다가 어떤 계기로 운동가로 전환했나. 운동가로 전환했어도 많은 유혹이 있었을 텐데, 처음 먹은 마음 유지한 것이 무엇인가(박병기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A. 개인적 이야기 많이 하고 싶진 않다. 누가 제 전기를 썼는데 곧 나올 것이다.(웃음) 저는 84세이다. 그동안 삶이 많이 바뀌었다. 제 배경은 상당한 엘리트였다. 제 삶을 180도 바꿨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가 가난한 사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돈, 권력이 최고가 아니고 최고는 도반이라고 가르쳤다. 저는 태국 뿐아니라 한국 포함해 전세계에 도반이 많이 있다. 제 삶의 소명이 좋은 우정, 도반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기독교 무슬림 무신앙자들까지 친구가 될 수 있고 이들과 힘을 모으면 이기심이 아닌 욕심 버리는 것, 이타심을 키우는 것을 하면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좋은 친구들도 많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아웅산 수치는 신경쓰지 않는다.남성이든 여성이든 영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모았다. 독재 치하서 미얀마는 고통을 많이 받았다. 감금된 사람도 많다. 젊은 친구들이 마음챙김 실천하고 용서하면서 그들이 그들이 40 50대가 됐다. 그들이 희망이다.

“샨티아쇽, 훌륭한 조직이지만 국가주의 못 벗어나“

Q.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병폐를 말했는데, 자본과 소비의 대안으로 전세계적으로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 태국 포티락 스님이 아쇽 공동체 소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아쇽 공동체가 태국 주류불교의 병폐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지, 평화에 바람직한 모범인가.(법인 스님)

A. 샨티아쇽(Shanti Asoke)은 매우 훌륭한 운동이며 조직이다. 주류 불교교단에서는 이들을 축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저항해 열심히 일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은 아직 국가주의에 갇힌 한계가 있다. 지난해 그 공동체의 한 스님을 한국에 보냈다. 한국에서 좀 더 배우라고 했다. 국가주의가 덜하고 더 열린마음으로 갔도록 했다. 또 이분들을 인도의 암베드까르 불교와 연결하도록 했다. 암베드까르는 바로 인도 헌법을 기초한 분이다. 그는 불가촉천민이었고, 60년 전에 불자가 됐다. 불자가 된 후 50만 명의 불가촉 천민이 불자가 됐다. 지금 인도에 수백만 불자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연락해 그들을 도와야 한다. 태국에서도 이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샨티아쇽 공동체 사람들이 인도로 가서 불가촉천민 불자들을 만났다. 많은 희망 갖고 있다.

“아웅산 수치조차 로힝야 무관심”

Q. 로힝야 문제에 관심이 많다. 평화적으로 해결됐으면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A. 로힝야 이슈는 복잡하다. 영국 제국주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방글라데시, 인도, 미얀마까지 연관돼 있다. 로힝야 족을 원하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다. 국제 사회가 이들을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 불자들은 더욱 이해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미얀마 불자들이 로힝야 족을 더 국가주의로 배척한다. 미얀마 불자들과 대화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의 무슬림과도 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로힝야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많은 로힝야가 배를 타고 태국으로 온다. 태국 해군이 이들에게 많은 돈을 받았다. 내 나라인 태국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다. 이런 착취가 만연하다. 스스로를 불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로힝야 민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Q

▲ 21일 술락 시바락사 불교 평화를 말하다 초청 강연 기념촬영.ⓒ불교닷컴

당신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좋은 벗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가.

A.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마음챙김을 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다른 관점에 대해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더 많은 인내를 가져야 한다. 비난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만약에 여러분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면 사람을 키우는 일이 쉬워진다.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Q. 불교는 큰 가르침이지만 세상의 인문사회의 지식, 과학기술, 경험 등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으면 도그마나 관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A. 과학적 지식은 긍정적인 측면만 받아들여야 한다. 서구의 과학은 자기들만이 옳다고 하는데, 물질적 유물적이다. 물질인 달을 볼 수 있겠지만, 정신적인 것은 아니다. 붓다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서구의 과학에 대해 비판적이면 나아질 수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위대한 것이라고 들어왔다. 기계파괴 운동이 중요하다. 기술산업이 수공업을 파괴했다. 가족도 파괴했다. 어린이들조차 공장에 일하러 가야 했고, 부자들만 혜택을 받았다. 산업 발달이 어떤 면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원자재를 통해서 생산하는 사람은 의미가 없어졌다. 영국은 원자재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착취했다. 제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예이다. 사람들을 세뇌시켜 더 많을 것을 원하도록 한다. 불교는 그것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 자본주의와 불교적 경제는 다르다”

Q. 언론, 텔레비전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에 속해 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A. 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는 긍정 부정의 측면 있다. 그들은 긍정적인 측면을 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서구의 자본가는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인보다 돈을 더 벌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록펠러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크리스천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도와주고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자본주의적 접근이다. 불교적 접근은 다르다. 자본가(자본주의자)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기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다. 노동자를 착취하며, 광고를 통해 그들의 제품을 사게 만든다.

불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들이 있다. 자기 자신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노동자들을 친구로 여기고 또한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자기 것을 나누게 하고, 자연을 착취하지 않도록 한다. 광고로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다. 이런 자본가 그룹이 태국과 유럽에서 확장되고 있다. NGO와 같이 일하고 있다.

미얀마가 개방되었을 때 이런 리더들을 수치와 만나게 해주었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정이 더 중요하다. 자연을 존중해야 하고, 노조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수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업들이 미얀마에 들어가 착취하고 있다.

“스님 필요한가 물어야…승려는 소박한 삶 살아야”

Q. 교단과 불자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가?

A. 첫째로, 재가자들은 스님들이 필요한지, 질문해야 한다. 기독교는 하느님과 연결하는 역할의 사제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태어나면 세례를 받고, 결혼, 장례에 사제가 관련되어 있다. 승려들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승려들은 소박한 삶을 살면 된다. 그런 삶이 재가자들의 모범이다. 만약에 승려들이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사제와 다름없다. 그들이 사제라고 하면 따라야 될 이유가 없다. 넌센스다.

태국에서 스님들은 탁발을 했다. 스님이 나쁘면 음식을 주지 않았다. 어쨌든 스님들은 재가자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 스님과 재가자 사이가 멀어졌다. 너무 소비와 자본주의에 따라가고 있다. 스님들은 명상할 시간이 없고, 탐욕스러워졌다. 태국에서는 스님들의 평판이 좋지 않다. 그런 가운데 샨티 아속(Shanti Asoke)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돌아가는 좋은 사례다. 엄격히 채식을 하고, 기부를 받지 않는다. 스님들은 돈을 만질 수 없게 돼 있다.

Q. NGO도 변질되는 경우가 있나?

A. 담마까야라는 단체가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스님이 설립했다. 태국에서 스님은 대개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 스님들은 의욕이 앞서 자신들이 세계불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또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 단체는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부패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자만했던 것이다. 나는 담마까야를 심각하게 비판했다. 지금 주지는 몸을 숨기고 있다. 검찰에서 체포하려는 과정에 있다.

Q. 50년 이상 불교운동을 해왔다. 아시아 평화에 어떻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는가?

A. 대부분 실패했다.(웃음)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스님 백여 명을 배출했다. 모두 나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대만의 차오웨이 비구니는 레즈비언의 결혼을 주재하고 있다. 그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결혼은 서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성만의 결혼에 한정하지 않는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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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2017-10-16 17:21:55
서역인의 처용가 처용무 설화처럼, 불교는 종교를 떠나 문화적으로도
오래전 신라시대 때 부터 이미 선불교 수행으로 농익어 소박하지만
깊은 기품으로 고난과 설움의 근현대역사를 우리 민족과 함께 하고 있다.
이미 가르침이 완성되어 각각이 그 실참실수 선택하면 처용무가 되는데...

강나혜 2017-07-11 13:48:22
술락선생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또 한분의 스승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지성이 또 계시다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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