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 비구니스님의 편지들
동학사 비구니스님의 편지들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7.03.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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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동학사 비구니스님들의 편지가 책으로 엮였다.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이다. 책 속의 편지는 동학사 승가대학원장이자 화엄학림 학장 일초 스님이 지난 40여 년 동안 후학들과 나눈 것들이다.일초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 비구니 강원인 동학사를 일궈온 주인공이다.

출가 후 1965년 동학사 강원에 입학한 스님은, 1971년 동학사 강원 중강, 1980년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 1986년 동학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고희를 넘긴 현재에도 동학사 승가대학원에서 후학을 지도 중인 동학사 강원의 산 증인이다.

편지는 스님이 주변인, 후배 서림 스님, 후학 등과 주고 받은 것들이다. 편지에는 스님들의 일상생활, 사유세계, 가치관, 숨기고 싶은 감정, 시대의 사회상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일초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이 제자들과 한담을 나누고 있다(사진=동학사 승가대학)

마음 하늘처럼 텅 비워지면

일초 스님은 한 스님에게 안부를 여쭈면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저는 내 영혼과 육체가 파도에 부딪혀 녹아내리는 거품처럼 꺼져가는 어떤 의미를 잃어가는 것을 느낍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는 기차요금을 먼저 생각하고 기차를 탔다면, 이제는 삶을 생각하면서 기차를 타고 싶더군요”라고 고백한다.

스님은 메모장에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하늘처럼 텅 비워지면/ 그 곳에 만족이 있다는데 텅 비어서 슬픈 중생/ 중생은 길을 잃어버린다”고 쓴다. 하늘 만큼 행복 채울 수 있어스님은 “어머니 같은 할머니 손에 들린 김밥을 거절할 수 없어서 1800원 김밥을 사면서 ‘거스름돈은 놔두세요’라고 했을 때, 기뻐하는 할머니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단돈 200원의 기쁨, 저렇듯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마음,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스님은 “하늘빛이 맑아지면 물빛도 따라 맑아지고/ 사람의 눈빛도 따라 맑아진다/ 그 높고 넓은 하늘이 비어 있는 것만큼/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는 독백으로 편지를 끝맺는다.

▲ 일초 스님의 제자 명선 스님과 원욱 스님, 보련 스님(왼쪽부터)은 일초 스님은 누구보다 엄했던 분이지만 늘 학인들을 살폈던 이 시대의 참스승이었다고 했다

어려운 길 걷게 해서 미안하다

동학사에서 일초 스님 지도를 받은 원욱 명선 보련 스님은 27일 서울 인사동에서 출판 기념 간담회를 개최했다.

원욱 스님(서울 반야사)은 “중물이 드는데 10년, 빼는데 10년, 유지하는데 10년이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일초 스님)이 모아둔 편지에는 비구니스님들의 여린 마음이 담겨 있다. 가슴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학인들을 보듬어 주던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스님은 “선생님을 학림장이라고도 부르지만, 굳이 ‘큰스님’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후학들과 가깝다는 친근감의 표현이다”고 했다.

명선 스님(동학사 화엄학림 교수)은 “선생님은 내게 ‘동국대 강의는 일반 학생 대상이지만 스님을 가르치는 강원(승가대학) 강의는 더 큰 일이다’고 말했다. 선생님 말씀에 동국대 강의를 그만 두고 동학사로 내려와 20년 가까이 모시고 있다”고 했다.

보련 스님(동학사 승가대학 학장)은 “선생님은 내가 승가대학 학장 소임을 맡게 됐을 때 간곡하게 대중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셨다”고 했다. 스님은 “언젠가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시 한편을 봤다. 그 시가 ‘이 모든 행복을 가슴 가득히 기쁨으로 받아들며, 사랑 아님이 없음을 알았는데 내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였다”고 했다.

일초 스님의 제자들과 동학사는 다음달 19일 오전 11시 경내에서 일초 스님의 신간 출판 기념회를 개최한다.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일초 지음┃민족사┃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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