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경전이 삶에 필요한 과학기술 지식을 주는 경우는 전무하다.
- 종교경전은 생명과 우주에 대한 거창한 지식을 자랑했으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 구라로 밝혀졌다
현대에 와서 종교가 망하는 이유이다
- 과학적 진실을 말하는 종교는 범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기불교가 그랬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자동차·냉장고·스마트폰·텔레비전 등 생활의 이기를 만들어내는 과학은 좋아하지만, 생명과 우주의 비밀(발생과정과 작동원리)을 밝히는 과학은 싫어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들이 보기에는 기도·믿음·(신에 대한) 헌신·수행(삼천배 장좌불와)·명상 등은 머리가 나빠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 결과 천둥 같은 계시를 받거나 번개 같은 통찰을 얻어 생명과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지만(물론 그렇게 믿으면 망상이다), 과학은 웬만큼 머리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얕은 이해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즉 딴 나라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정치와 스포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와 유사하다: GE의 전설적 CEO 잭 웰치가 꿰뚫어본 것처럼, 정치와 스포츠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수만 년 동안 누려오던, 자신을 ‘생명과 우주의 신비’와 연결해주는, 핫라인(hotline)을 과학에게 박탈당한 기분이다. 오의(奧義)를 기록한 종교경전들이 헛소리로 가득한 쓰레기통으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과학이 싫어진다. 기도와 명상을 하면 생명과 우주의 비밀을 다 아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과학이 나서서) 그게 아니라 하니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한창 술기가 올라 기분 좋을 때 술병을 빼앗기는 느낌이다.) 뭔가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일수록 심하다. (하지만 진실한 내용이 따르지 않는 느낌은 모두 환망공상이다.)
종교는 직관적이고 과학은 분석적이다. 직관은 일확천금이지만 분석은 힘든 노동이다. 자신의 확신이 옳다는 걸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좋아하고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힘든 연구가 없으면 그리고 시공을 통한 집단적인 지식의 축적이 없으면 과학적(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직관과 통찰이 불가능하므로, 지식의 개정·축적이 일어나지 않는 즉 수정·증보(增補)가 없는, 몇쪽 종교경전을 읽고 생명과 우주의 발생과정과 작동원리에 대한 직관과 통찰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소·말·닭·돼지·지렁이가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는, 그리고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잡아먹히는 이유는, (깊고 강력한) 사유능력이 없고 그로 인하여 (폭발적인) 지식의 발견과 축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부처님이 ‘사유력이 없었으면 자신의 깨달음은 불가능했다’고 한 것은 놀라운 고백이다. 6년간의 고행과 요가를 포기하고 마지막 7일 동안 ‘사유’에 몰입한 결과 ‘연기법(緣起法)과 제법무아(無我)’라는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다. 그 빛나는 통찰이 '지구에 생명체가 생긴 이래로 35억 년간의 긴긴 세월 동안 무지에 덮여있던, 우리 마음이라는 어두운 무명(無明) 하늘에’ ‘빛나는 샛별’이라는 상징으로 불경에 표현된 것이다.
이 세상에 사유처럼 귀한 것이 없다. 무명은 사유가 없으면 극복할 수 없다. 천길만길 높이의, 소지장(所知障)의 장벽을 넘어갈 수 없다.
부처님의 높은 어깨 위에 올라서면 사유의 지평선과 인식의 지평선이 더 멀어진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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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종교 경전들은 그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질 뿐이지 그 어떠한 과학적 가치를 지니지는 못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 한다면 그저 아까운 시간 낭비만 하고 계신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