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성, 전통인가, 축재의 수단인가
기복성, 전통인가, 축재의 수단인가
  •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양대 교수
  • 승인 2016.09.26 11:19
  •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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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한국불교의 망상을 비판한다 (1)
▲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양대 교수.ⓒ불교닷컴

망상은 사고의 이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두려움에 떠는 보초병은 아군을 적군으로 착각하여 총을 쏘며, 임신망상에 걸린 처녀는 성적 접촉이 없었음에도 배가 불러오고 입덧을 하며, 피해망상에 걸린 이는 자신의 구원자를 살해하고, 과대망상에 걸린 지도자는 수백 만 명을 죽이는 집단학살을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석가는 여실지견하라 일렀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국 불교는 수많은 망상들을 생산하고 지속하고 확대하고 있으며 이 피해는 이루 언급할 수 없을 정도다. 이에 한국불교에 잔재한 망상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비판하고 여실지견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기복성에 대해 기술한다.

얼마 전에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의 기복성을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기복성은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전통과 역사인가, 아니면 대중을 혹세무민하고 불교의 교리를 주술적으로 해석하도록 이끄는 망상인가.

삼국시대, 특히 신라의 불교는 기존의 신앙인 샤머니즘과 결합하였다. 샤머니즘과 삼재사상의 결합인 풍류도(風流道)의 세계관과 문화를 강하게 답습하고 있는 당시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고 그것과 결합한 소망을 실현해 주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산신을 믿는 이들에게 부처를 함께 따르라며 절을 짓고 대신 산신당을 품어 주었다. 신주적(神呪的)이고 무불(巫佛)이 하나로 어우러진 관념체계는 왕실, 승려, 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가 규모의 의례인 백고좌회, 팔관재회, 점찰법회에서부터 개인의 기도에 이르기까지 풍류도와 밀교를 융합한 의례에 온 백성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이렇게 내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불러와 삶의 전일(全一)과 행복을 달성한다는 샤머니즘의 제재초복(除災招福)의 원리는 불교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이는 전통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대중들이 불안과 불행, 화(禍)와 흉(凶)을 없애고 복을 구하고자 절을 찾아 기도하고, 삼성각, 산신당, 용왕당 등 재래의 신격을 모시는 터가 절 안에 존재하며, 산신재와 용왕재가 부처님께 올리는 재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행해진다. 이런 역사와 전통으로서 기복성 자체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기복성은 불교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발전의 장애이다. 조준호 교수가 잘 분석한 대로, 부처님은 기복행위를 인간이 결코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짐승들이나 행하는 ‘축생법’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붓다는 인간의 행복과 불행, 쾌락과 고통, 길함과 흉함, 성공과 실패가 모두 바깥의 초월적 존재, 숙명, 우연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중아함 권17의 『가미니경(伽彌尼經)』를 보면, 살인 등 악행을 행한 자의 극락왕생을 그 친지들이 기원하는 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단정하고 이를 큰 바위를 물에 던진 후 떠오르라고 기도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모든 것이 연기와 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기도가 이 원리를 거스르고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서로 작용하는 중력에 이끌려 수십 억 년 뒤에는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가 합쳐지고, 음주운전을 하여 교통사고를 내고, 담배를 절제 없이 펴서 폐암에 걸리듯, 연기와 업은 모든 것과 모든 것 사이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엄격하게 작용하면서 사건을 만든다. 그러니 왕생을 바라고 행복을 원한다면 기도를 하기 전에 스스로 복을 짓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부처님 말씀대로 팔정도를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전(福田)을 짓는 일이다. 그런 후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임계점을 넘어설 때까지 기도를 해야, 내가 변하고 타인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고 더 나아가 세계가 변하고 부처님마저 변화하면서 가피를 베푸시는 것이다.

소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소망 실현 없이 종교는 성립할 수 없다. 불자의 궁극 소망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인데 기복은 이를 부정한다. 내가 깨달아 중생을 깨닫게 하려면, 믿음과 발심과 행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복을 바라는 발심을 하면, 선업을 짓는 일을 하여 그 과보로 현세든 내세든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이것보다 하급의 소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시켜주는 것은 신적 존재도, 운명이나 팔자도, 어떤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연기와 업의 원리에 의해 사건은 벌어지고 소망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기도를 한다면 다른 대상에게 할 것이 아니라 내게 해야 한다. 내가 맑은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올바르게 실천행을 행하며 선업을 쌓는 즐거움을 늘 누리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 불교는 기복성에 기생하고 있다. 합격발원기도만 하더라도, 여러 해 전에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이의 기복성을 비판하면서 조계사부터 합격발원기도 현수막을 내릴 것을 권하고 그 대안으로 논술학교를 열었다. 하지만, 단 한 곳의 절도 호응하지 않았다. 효험이 좋기로 소문난 기도처는 1년에만 수 십 억 원을 번다고 할 정도로 그로 인한 수입이 각 절의 재정에 큰 몫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이나 역사, 중생의 소망 실현 운운하지만 이는 포장일 뿐, 기복의례들은 실은 부처님의 위력을 팔고 중생을 속여 기도하고 재를 올려 돈을 벌려는 축재수단일 뿐이다. 그러기에 삼의일발(三衣一鉢)을 제하고 무소유를 주장한 부처님의 뜻을 어기게 된다. 이는 탐욕을 지멸하고 깨달음을 추구하고 중생구제에 나설 스님들이 돈의 노예와 중생을 속이는 사기꾼이 되게 하고, 더 나아가 절을 수행터에서 시장과 기업의 축소판으로 전락시킨다.

기복성은 한국 불교의 망상이다. 불교 자체가 인도 전래의 기복신앙을 비판하고 이를 부정하면서 태동하였다. 어떤 부처님이 남의 자식을 떨어트리고 내 자신을 붙여달라는 기도를 들어준다는 말인가. 스님이 이를 모르고 행한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 행한다면 혹세무민의 사악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기복성에 머무는 한, 21세기 오늘에도 한국 불교는 전근대적인 종교로 머물 수밖에 없다. 기복불교로 얻어진 이익에 의존하는 한, 스님들이 삼독을 멸하고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결국, 그 주술적 힘을 믿거나 땡중들과 인연을 거역하지 못하는 이들만 남고 진실한 신자와 부처님은 절을 떠난다. 이제 스님들이 조금 더 가난해지더라도 이는 불자의 길이 아니라며 과감하게 기복성과 결별해야 한다. 재가불자 또한 늘 맑은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올바르게 실천행을 하자고 간절히 빌자. 그리하여 나의 변화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 세상을 바꾸자.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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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보장경 2016-11-05 20:53:14
무재칠시


0.첫째는 화안시[花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미소"가 이에 해당됩니다.



0.둘째는 언시[言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0.셋째는 심시[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0.넷째는 안시[眼施]

부드럽고 온화한 눈빛을 가지고
호의를 담은 눈으로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0.다섯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남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보시]

어려운 이웃이나 노약자의 짐을 들어주는 등의 행위가
이에 해당합니다.



0.여섯째는 좌시[坐施]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0.일곱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7곱 가지를 몸소 행하여 습관이 붙으면 행운이 따른다"고
설하셨다.

신심조차 내지 못했던 너 2016-11-05 20:00:28
기도와 참회를 통해서 저는 간화선을 수행했읍니다.
그 때 큰스님들의 참 말씀을 점차 알 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교학의 깊은 뜻을 오십년이 넘어서도 계속 수행 중으로 깨달아 가고 있읍니다.
이것이 정진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불자 2016-10-02 21:16:13
불교를 깊이 나름대로 믿다보니 부정할수 없는 게 천도쟤 나도 처음엔 부정적인 시각 그러나 인가관계에서 전생의 업은부정할수 없었다.

인과법 2016-10-01 21:39:04
한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삼국시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불교의 교리는 훌룡하며 그 깊이가 이루헤어릴수 없을만큼 깊으며 그 좋은점은 말로서 다할수가 없다
옛적부터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 고승(큰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이 한분 나오면 그 지역 지방에 엄청난 홍복이었다
왕건이 남긴 훈요심조때문에 온 백성이 불교를 믿었고 승려의 말은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죠.. 허나 시간이 흐르면
고인물은 썩기 시작하고 흥했던 나라도 망하기 시작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점점 타락.. 부패해졌다
승려들은 극락을 갈려면 돈을 바치라고 하고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다 또한 금탐과 금불상을 만드는 사치와 낭비를
불교는 고려시대 초에 황실 및 문벌귀족과 결탁하여 부정부패를 자행하여 백성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엔 사원전이라 하여 사원(절)에도 토지를 지급하기도 하였는데, 후기엔 불교가 이 토지를 바탕으로
타락하여 백성들의 시주를 더더욱 물어서 사치하는 등 타락이 말이 아니였다
조선(1392~1405) 건국을 주도하였던 관학파 신진사대부들은 고려말 불교승려들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헌금을
부풀려 백성들에게 악덕고리대금업을 하고 땅을 사들이고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을 폭행하고 부녀자를 노리개로 삼고
음주가무 등을 즐기는 많은 폐단을 봄에 따라. 조선왕조 500년 숭유억불정책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 주요내용은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하는 한편, 함부로 승려가 되는 것을 금하고 사전(寺田)에도 과세를 하였으며 승려의 궁중출입
과 도성(都城) 내 출입을 금하였다. 또한 연산군 때는 승과(僧科)를 폐지하고, 삼각산의 여러 절의 승려를 몰아내어
그곳을 놀이터로 삼았으며 원각사(圓覺寺)의 불상을 옮기고 그곳을 기관(妓館)으로 삼는가 하면 선종(禪宗)의 본산인
흥덕(興德)·흥천(興天) 두 절을 없애고 여승은 궁중의 노비(奴婢)로 삼고 승려들도 모두 환속(還俗)시켰다.
중종(中宗)은 경주(慶州)의 동불상(銅佛像)을 녹여 병기(兵器)를 만들고 원각사를 헐어 그 재목은 민가를 짓는 데
나누어 주었다. 나는 고려시대의 불교와 현재의 대한민국 조계종단을 비교해보곤 한다.

불교 어려운게요 2016-09-28 05:34:50
경전 잘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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