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박수치기’[척수성隻手聲]
‘한 손으로 박수치기’[척수성隻手聲]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6.07.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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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22.

성찰배경: 지난번에 소개드린 ‘삼세심불가득’ 화두에 이어 초심자를 위한 화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또 다른 화두 하나는 일본 임제종을 크게 일으킨 백은白隱 선사가 제창한 화두話頭로 “보통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한 손으로 내는 미묘한 박수 소리를 ‘외짝 손소리[척수성隻手聲]’라고 하는데, 이 소리를 들려주게!”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이원적 분별심을 끊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이 화두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간화선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초심자들이 가장 많이 씨름하는 화두 가운데 하나로 남녀노소 누구나 대부분 바르게 참구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투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유독 이 화두를 투과하는데 20년이 걸린 분도 더러 있습니다.

‘한 손으로 박수치기’[척수성隻手聲]

화두: 어떻게 하면 한 손으로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제창提唱: 두 손으로 맞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지만 ‘어떻게 하면 한 손으로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두는 상식이 지배하는 분별 작용에 의한 상대적인 견해를 완전히 버리고 절대적 인식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단적으로 일깨워주고 있기에 더 이상 부연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를 온몸으로 체득하기위해 바른 스승 문하에서 남송 시대에 확립된 ‘입실점검入室點檢’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간절히 화두를 참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만 한다면 마침내 남녀노소 누구나 어느 때인가 상대를 초월한 무심無心의 경계를 체득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참선’ 강의 수강생 투과 사례

2014년 2학기에 제가 담당했던 ‘참선’ 강의를 수강했던 수강생이 ‘참선 수업과 <좌선> 책은 하나의 패키지’라는 제목의 독후감을 제출하면서 ‘척수성’ 화두 타파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좌선>을 읽으면서 가장 눈이 갔던 부분은 역시 공안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한손으로 내는 박수 소리’라는 뜻의 ‘척수성隻手聲’을 공안으로 씨름을 했었고, 열심히 한 덕분인지, 운이 좋았었는지 모르겠지만 뒷걸음치다 소 잡은 격으로 공안을 타파하게 되었고, 새로운 공안인 ‘손을 쓰지 않고 호미자루를 쥔다’라는 뜻의 ‘공수파서두空手把鋤頭’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그 공안을 붙잡고 있습니다.
‘척수성’을 붙잡고 있는 동안 어떻게 하면 한 손으로 박수소리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걱정이 되었던 것은 이번 학기가 끝나게 되면 그 방법을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너무나 간절한 마음으로 그 방법을 강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보통 ‘척수성’을 타파하는 데 1년 정도 걸린다는 말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학기 만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비슷한 경계를 제시함으로 ‘척수성’을 타파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타파할 수 있던 것에는 매 수업 시간마다 입실점검을 통해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교수님께서 버리라고 하시는 말씀에 여러 갈래를 버려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간화선 입문자의 변화 이야기

사실 분별력이 뛰어난 많이 배운 지식인들일수록 처음에 입문하기가 힘이 듭니다. 서강대에서 제가 1994년 3월부터 교수님 세 분과 참선 모임을 시작했는데, 세 분 모두 ‘수식관數息觀’ 수행을 익힌 다음 초심자 분들을 위한 첫 화두를 1년 이상 참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입실할 때마다 분별에 의한 경계를 지속적으로 제시하셔서 화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사문의指事問義’의 일종인 ‘시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바꾸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세 분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분별 작용을 멈추고 100% 시계와 하나가 된 경계를 제시하셨으며 다시 첫 화두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첫 화두를 무난히 타파하면서 수행을 이어나가셨습니다. 그후 두 분이 끝까지 수행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선도회 점검 과정을 모두 마치시고 선도회 법사로서 저를 포함해 2반의 ‘참선’ 강의를 교대로 함께 나누어 맡으시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수도권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한 분이 지난 2015년 11월에 선도회에 입문하시면서 위 세 분들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계십니다. 이 분도 첫 화두인 ‘척수성’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최근 ‘시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바꾸어 드렸더니 역시 얼마 후 이 ‘지사문의’ 화두를 타파하시고 다시 ‘척수성’ 화두를 참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분께서 최근 자신의 심경을 담은, ‘간화선 입문자의 변화 이야기’란 제목의 성찰 글을 보내주셨기에 그 내용을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간화선 수행에서 어째서 화두 참구가 아니라 수식관부터 시작하게 될까?

매일 짧은 시간이나마 다리를 틀고 앉아보니, 내 자신이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자극(예: 인터넷 정보, 다른 사람의 말, 자신의 실수, 경험 등)에 의해 길들여지고 또 강화되어 왔음을 발견한다. 설사 그동안 내 자신과 주변에 대해 성찰하고 어느 정도 통찰의 지혜를 맛보았다 하더라도 매우 제한된 영역의 내용을 제한된 수준에서 경험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흙탕물이 튀고 있는 장마철의 계곡물처럼 거칠고 갈피가 잡히지 않는 모습과도 유사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숙고하고 성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 내면의 흙탕물부터 가라앉히는 작업이 필요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식관數息觀’이 바로 그 작업에 해당되는 것 같다. 그저 가만히 앉아 복식호흡을 하면서 ‘하나~’, ‘두울~’ 이렇게 수를 세어가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다. 수를 세는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을 단순화하고 본격적인 화두참구를 위한 워밍업을 하는 것이다. 아직 간화선의 맛도 보지 못한 수준이지만 수식관을 통해 새삼 발견하는 내용은 간단한 수세기를 통해 나 자신을 무심히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 수식관 수행이 끝나고 넌센스 퀴즈같은 예비화두 참구를 하는 이유

처음부터 집중적인 수행이 어렵기에 수식관을 통해 워밍업을 했다. 그러나 수식관을 통해 어느 정도 예열이 되어도 자기 자신의 집착을 끊어내고 붓다가 설했던 내용들(예: 사성제, 8정도)을 온몸으로 체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쥐고 있는 온갖 집착의 덩어리, 과거의 기억,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더해져 화두에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받은 교육(특히, 주입식 교육과 시험 준비용 교육이라면)과 사회생활을 통해 누적된 경험들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란 지난한 일이다. 이때 예비화두(예: 척수성)는 그런 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물꼬를 터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는 것 같다. 여전히 분별의 망상에 빠져있기에 예비화두를 통해 어느 정도 물꼬가 트이고 나면 본격적인 화두 참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간화선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라 뭔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다는 인상도 받았으나 체계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요즘 들어 간화선에 대한 비판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으나, 적어도 천 년 이상 지속되어 온 수행방법이라면 아마도 동아시아인들에게 최적화된 면면이 있을 것이다.

- 지사문의 화두 점검을 마치며

‘100% 시계가 되어 보시오!’라는 말을 너무 복잡하게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했다. 그놈의 분석병이 오히려 금방 갈 수도 있는 길을 빙 돌아서 가게 했다. 아마도 (순수한) 어린이라면 벌써 적절한 경계를 내어 놓았을 것이다.
결국 ‘나’와 관련된 분별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시계가 되는 쪽으로 방향전환이 일어났다. 문제는 시계가 아니라 어찌 보면 ‘나’였다. 그만큼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나'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많은 개념어(예: 일치, 변화, 성장) 및 분별적 표현(예: 높다/낮다, 멈추다)을 사용해 왔음을 발견한다. 분별로 떨어진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습관처럼 사용해 온 그 말들이었다. 나름 무심히 바라본다고 하면서 표현한 그 말들 역시 분별을 보여주는 실례實例였다.

군더더기: 서강대 ‘참선’ 강좌에서 수강생들에게 이 ‘척수성’을 첫 화두로 늘 참구하게 하면서 입실점검을 해주고 있는데 대부분 화두 타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화두 참구가 몸에 익으려면 적어도 일 년은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렇지만 이 가운데 매 학기마다 조금만 더 점검받으면 될 수강생들이 적어도 몇몇은 있었으며, 지금까지 제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 가운데 단 1명만이 학기 중에 입실점검을 통해 이 화두를 온전히 투과했습니다. 덧붙여 참구하는 화두를 점검받으러 스승이 계신 곳으로 입실하는 순간 마치 호랑이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온몸을 초긴장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공부를 향상向上시켜 나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 화두에 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지만 바른 화두 타파는 수행자로 하여금 넓은 안목을 갖추게 하고 이는 삶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어 필연적으로 온몸으로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드러내게 됩니다.

관련 자료들
참선 수업과 <좌선> 책은 하나의 패키지/ 2013학번 참선 수강생
http://www.seondohoe.org/69440

<불교닷컴> 칼럼 19. 수식관 관찰 과정과 화두의 유래
http://www.seondohoe.org/98299

<불교닷컴> 칼럼 21. 삼세심불가득화三世心不可得話
http://www.seondohoe.org/99269

참고자료들
종달 이희익 지음, <좌선: 함께 앉고 함께 나누기>  (본북, 2012년)
박영재 지음, <석가도 없고 미륵도 없네> (본북, 2011년)
박영재 지음,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 (비움과 소통, 2015년)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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