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놓고 법거량 해보자”
“‘반야심경’ 놓고 법거량 해보자”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6.07.20 16:58
  •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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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정토원 정목 스님 “‘반야심경’ 제대로 아는 이 없다”

전국 사찰에서 매일 봉독하는 <반야심경>을 갖고 법거량을 해보자는 스님이 나타났다.

정목 스님(양산 정토원, 한국정토학회 이사)은 20일 서울 관훈동 음식점에서 <반야심경 오가해> 출판간담회를 개최했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승납 30년 이상 중진들과 <반야심경> 법거량을 원한다”고 했다.

스님은 <반야심경> 구마라집, 현장, 반야와 이언 본을 한글로 번역하고, 원측과 원효 논서를 비교‧해설해 <반야심경 오가해>를 펴냈다.

선방에 염불하러 갔던 스님

스님은 원효와 정토 연구에 천착해 왔다. 출가 후 참선만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경전과 논서를 읽었다. 책을 읽어도 구도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다가 원효의 <무량수경종요>를 보고 안목이 트였다. 스님은 “선방에 염불하러 들어갔다. 이후 염불삼매, 관불삼매를 체험했다”고 밝혔다.

스님은 “내 능력이 부끄럽지만 나만큼 열심히 공부한 사람도 없다. <기신론> <아미타경소> 등 원효와 정토 관련 독보적인 위상을 이제는 갖춰야 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효는 신라 사상계의 왕따, 원측은 현장에 밀려난 중국의 왕따였다. 같은 왕따끼리 동질성이 있겠다 싶어 접근했다. <반야심경찬>을 통해 원효와 원측의 해설‧주장이 계합함을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부처 행세 하는 사람 많다

스님은 “조계종이 지난 2011년 <한글 반야심경>을 봉정‧배포하기 시작했다. 틀린 곳이 많지만 딱 한 곳만 지적한다. ‘부처 행세 하는 사람이 많아 혼란스러운 것’이다”고 했다. 스님은 “<반야심경>은 짧고 매일 같이 외우는 경전이지만 한국인들은 <반야심경>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스님은 “제도권에서는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을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건지느니라’를 갖고 고민한다. 이는 ‘일체 중생의 괴로움과 멍에를 벗어나게 하셨다’로 번역해야 옳다”고 했다.

물질의 쌓임이 곧 공성

조계종은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고 번역했다.

스님은 “‘물질의 쌓임은 공성과 다르지 않으며, 공성은 물질의 쌓임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의 쌓임은 곧 공성이요, 공성은 곧 물질의 쌓임이다’가 바른 번역”이라고 했다.
 
스님은 “현대철학은 존재, 인식, 가치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반야심경>이 3가지 근원적인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은 내가 깨닫는 상구보리를 뜻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은 남을 제도하는 입전수수를 의미한다”고 했다.

갑질 피하려면 대승사상에 눈떠라

스님은 “<반야심경>이 바른 뜻으로 옳게 읽혀져야 한다. 한국불교가 1600년이나 됐지만 입으로만 <반야심경>을 외운다. 실천 또한 입으로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에 맞게 <반야심경>을 실천하려면 염불수행을 해야 한다. 재가자들이 중들의 갑질을 피하려면 대승사상에 눈떠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오는 23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반야심경 오가해> 출간을 기념하는 염불인대회를 개최한다. 스님은 국회 정각회, 공무원불자연합회 등에 모두 2만권을 배포할 계획이다. 또,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해 해외에 법보시도 한다.
 
반야심경 오가해┃정목 역해┃금샘┃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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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2017-02-06 01:10:33
생이지지나셨네

김기득 2016-10-08 23:29:02
이치를 알면 책이 안에있음이요 책을보고 이치를 안다면 그것이 알아 지겟는가? 부처님께서 말을못하여 84000여 법문을 설하셧겟는가 부처님 법문을 다 이해햇다는 또는

불가사의-기상천외법 2016-07-29 12:26:58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 진리로써 무한함이며.항상 상이며~⊙




▣"불생불멸不生不滅 무시무종無始無終, 이며"
무위법이란 함이 없음이며 무한하여 시작과 끝을 알 수 도,, 정할 수 도없는 무한함이며 항상상이 되며~ ▣

▣"유위법이란 인과연법으로~"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나오나니,,,
이세상 모든 만생만물은 아무것도 없는데에서 나오지 아니하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며,,나는 여자는 아니며,,/ 나는 남자는 아니며,,, 다르다 변화다~/ 항상상~은 아니다 라는 뜻이며

▷즉 생이 없어면 멸이 애초부터 없어며.. 멸이 없어면 생도 없어며-
▷멸진처가 없어면 열반도 없고 ,,멸진처가 있어면 열반처도 있다

▷즉 시작이 없어면 끝도 없어며,, 끝이 없어면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존재 한다는 것도 있어며 -

▷이러 이러한 시작이 있어면~/ 이러이러한 끝도 있어며~ 끝이있어면 "항상" "상" 하지 않고
▷시작과 끝이 있어면 이러 이러한것은 모두 변하며 이러 이러한 모든것은 유위법의 생멸ㅇ의 시작과 끝이라 한다-

▣부처님이 깨달아서 아신 이러 이러한 모든것을 불변의 진리라 하며!!!

이러 이러한 모든 진리는 항상상과[출세간법] / 윤회로[육도윤회(속세법]] 변화 작용하면서 - 이양쪽 모두는 무한함을 말씀 하시었다▣

▶이들은[有無]도 모르며 이러 이러한 것이 만들어지는[有] 유정의업식, 억파제법과,,
▶겁도[지수화풍등의 모든것이 만들어지는-겁수],, 모르며,, 연기법도 모르면서
▶부처님이 깨달아서 아신 근본불교법과 사상을 무시부정왜곡하고 이상한 법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바로 부처님이 예언하신 바로 그장본인 주범들인!
수천년동안 이들이 득세하는 말법 말세시대로 만든 용수&조계종 말법승들~≫

▷모든것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어며 있다가 사라지니
▷이러한 인과연이 모두 생멸의[12인연]변화 작용으로 집집을 이루다가 일체가 모두 공으로 돌아가니~

"모든 만생만물은 항상 상하지않고~
이렇게 모든것은 변해 버려서 무아이며 무상이며 공으로 돌아가게 하니
이러한 모든것은 일체의 괴로움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이 근본이되어 나오게 하고 변해 버리게 하는 것인가?

≫지수화풍은 만물을 이루는 근간이되는 바탕이 되고
≫공은 자비희사를 바탕으로 근간이 되고
≫이를 근본으로 하여 모두 공에서 자릴잡고 또아리를 틀어 집집을 이룬다
≫이집에서 모든 정[精氣]을 끌어모아[무명의 행] 유[有]를 만들어 탄생[有生]하여

≫이렇게 하여 탄생하면 스스로 주인 행세하는 유정의[有精] 업식으로 인하여[因]
≫ 이것으로 인하여 만물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緣]연기법이 일어나는 근본이 되고 바탕이 되고 근간이 되니~

"이것을 일체라하며~
이것을 모두를 아는 지혜를 일체지라 한다!"


▣이 모든것의 참실상을 깨달아 아는 지혜인 거룩한 성서러운 4가지 지혜로써
다스리고 조절하여 모두 벗어날줄 아는 지혜를 참실상을 바로 보고,,아는 참다운 해탈 지혜라 한다▣


"거룩한 지혜로써 깨달은 이를 부처님의 제자로써 세상 만인의 존중 받을 수 있는 4쌍팔배의 거룩한 성중이라 하며
이러한 거룩한 성중에 거룩하게 귀의 받는 이가 될려면~"

▣반드시 거룩한 지혜가 필요하고 /고집멸도의 수행도 선수행 하여야 한다 !!!▣


▶그럼에도 거룩한 지혜도 모르고 몰라도되여~ 거룩한 지혜없는 수행법도 모르는 수행 한자락도 안해본 개나소나,,다~불성있는데,,ㅉㅉ

▶그러고는 바로 내가 부처여,, 본래 자성불이여 알간!감히 어디서~~ㅉㅉㅉ희한한 요지경 이사ㅣㅇ한법!


≫가히 불가사의한 법 --- 기상천외의 법≪

"법설명으로는 지상,,우주최고의 부처님도 무기하셨던 부처세계부터 해서~
모든것이 다~들어있고 모두 짬봉으로 설명이 되는 스님들세계 그러한 말법 종단에서는 최상의 법
그런데 시작과 끝이 안맛아서 공부할수록 무명 아상 참나가득 만들고~
정상적ㅇ인 사람은 도저히 깨달음 없고 얻는다는게 되려 비정상적이며~"

≫온통 쌔발깐 거짓으로 점철된 그러면서도 환상을 불러 일어켜서는 더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결국에는 깨달음 커녕 골병들거나 ,,정신이상자 미치지않은 이상 모르는 이상 비정상적법!!!
▶불법 아닌 법으로?써,,부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법아닌 말법!!!


⊙공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벗어날줄도 모르면서 공만,,머리로만,,알면 무슨 깨달음 다~얻는것인줄 알고~
⊙수 한자락도 먹지 않어면 살아 갈수도 없고,,,벗어 날줄도 모르는 지혜를 가지고서는 마치 다~깨달은 참부처의 지헤를 말하고~
⊙화 를 벗어날줄도 모르면서는 마치 무슨 또 다른 대단한 법이 또 있는줄,, 간화선이니 화두니하며~
⊙풍 이 어디에있고 어떻게 벗어나며~풍 은 어떻한 연유로 만들어지고, 사라지는줄도 모르면서는 연기법을 말하고~
⊙이땅에서 살면서 이땅ㅇ에서 ㅇ어떻게 살아야 열반으로 가는지도 모르면서는 열반정토 , 화장장엄세계, 불국토를 말하고~
⊙이들은 자기라는 식도 제대로 모르고,, 해탈 ,,벗어날줄도,, 모르면서는 참나열반부처라 한다-오호애제라~

≫이들이 뿌린 수천년동안~ 수억ㅡ 천만 억의 헤아리기도 힘든 불자들을 무명에 빠트리고~
≫스님종단 스님 귀의처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나머지 부처님 제자들인 사부대중은 시다바리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부처님 시대에도 말안듣고 잘못 저지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존중받는
우두머리격인 지금의 권승들이 되는 이들 중에서는
거룩한 성중이라는 4쌍팔배의 존중받는 상좌 제자들 중에는 단 한명도 오계 대역죄를 범하는이 없었어며~▣


≫지금처럼 온갓 권승들이 도박, 음주,가무 ,은처승, 폭행, 언론금지, 거짓,비방,혹세무민, 억압중단시키고~
≫ 잘났다고 큰소리나치고,,,제대로 부처님 법대로 깨우쳤다면~ 절대로 이리 되지도 이리 할 수 도없는 법이 불교이고 불법인데~

≫불교를 망가뜨리는 행위등 너무 죄악이 이루다~표현하기도 창피스럽고 불자들을 우롱하고~
≫ 부처님과 법을 훼손시키는 이토록 큰죄인들이 도리어 버젓이 행세받는 용수&조계종 말법승들!!!

≫불자들을 이용하여 가진ㅁ것이라곤 이것이 최고~오로지 돈과권력으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이들의 말법행 ,,죄악행은 갈수록 더~커져나가고 악마승 말법과,죄악상은 너무나도 커서 이루 다~말할 수 없음인데도 이러니~오호애제라 오호통제라~

원불사 단현 2016-07-28 21:50:59
지금까지 대승불교를 공부한 후 초기불교를 다시 공부한 대부분의 스님이나 학자들이, 아직도 대승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을 강의하는 것은, 초기불교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교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야경이나 금강경이 공 = 무상 무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초기불교와 다를 것이 없다는 시각이 주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이라는 것은 힌두교의 핵심 사상인 일체법(나와 대상)이 허망한 환상계라는 여몽환포영을 뜻하는 용어이고 보면, 무상 무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대승불교 경전의 올바른 이해를 도우려는 목적으로, 지난 8월 15일 쓴 것을, 며칠 전 혜천스님께서 초기불교적인 시각으로 해석하신 반야심경 강의를 읽은 후,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이 대승불교 경전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 수정해서 올립니다.



1. 반야심경 금강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교학이나 논장, 위빠사나 명상에 심취한 재가불자들에게



212.08.15

원불사 단현







반야심경 금강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한국에 남방 상좌부에서 수행한 스님이나 학자가 제법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아직도 한국불교의 습으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등을 강론하거나 법회에서 염불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 금강경 등 초기대승경전의 본보습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려드렸으면 하는 충정에서 글을 씁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안내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지금 한국의 초기불교를 강의하는 대부분의 스님들의 실태를 말해야겠습니다.




한국대승불교로 출가해서 간화선 참선 등을 하시다 '대승불교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인도나 스리랑카 등지로 유학한 다음 니까야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한국대승불교에 출가하여 수행하시다가 '이게 아니다'라는 자각과 함께 멀리 미얀마나 태국으로 달려가서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도 위빠사나를 수년씩 수행하신 스님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스님들이 대승불교사상의 잔재가 남은 상태에서 근본불교를 공부해서, 교리교학의 핵심이나 맥을 뚫지 못하고, 바로 강의에 나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김해의 붓다ㅇㅇ라는 스님은 철저한 단멸론자로 주위 모든 스님이나 재가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남방불교에서는 철저한 조사와 논증으로, 밝혀지면 그 즉시 힌옷 입혀 강제출교 되는 것이지만, 지금 한국 초기불교 스님이나 학자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마디도 없는 실정입니다. 또 많은 스님들은 아직 대승불교의 습을 버리지 못하고 대승불교 경전을 아무런 부담 없이 강의하거나 인용하거나 하면서 근본불교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근본불교의 대표적인 학자이신 팔리문헌연구소 마성스님 같이 불교사상의 변천사를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브라만교 힌두교 근본불교 대승불교 티벳불교 등과 인도역사 인도사상사 불교역사 불교교리발달사 등 근본과 대승 전분야를 공부하신 분도 계시지요.




그런 분들은 불교의 교리가 처음에는 어떠했고 나중에는 어떻게 바뀌었으며 시대를 따라 어떤 모양으로 변질되어서 지금에 이르렀고 각 나라마다 불교교리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그들의 신행이나 수행, 교리는 얼마나 다르고 같은지를 연구합니다.





누가 반야부경전을 만들었는가?





저 역시 학자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나름대로 종교를 연구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불교철학이나 신앙보다는 학문적인 불교를 먼저 조금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제가 불교사를 공부한 바로는, '반야경 금강경은 부파불교 당시부터 불교로 유입된 힌두논사들이 점차적으로 불교를 힌두교로 변질시켜가던 과정에서, 힌두논사들의 입장에서 불교를 재해석한 하나의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고, 다른 분들은 '비록 대승경전이지만 그 주장이 공과 무아를 설하기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초기경전의 교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승불교 스님도 아닌 초기불교를 전공한 스님이나 학자들이 굳이 반야부경전(반야경 금강경)을 강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놓았다가, 지난 주 혜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읽은 후, 초기불교에 대한 완전한 공부가 된 분의 강의는 도리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야부경전의 내용은 어떠한가?




제가 [대승경전을 보는 바른 시각 / 반야심경과 금강경에 속을 것인가?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c18q/80] 라는 글에서 예를 든 부분을 다시 거론하게 됩니다만, 반야부경전의 모든 내용은 부처님의 근본교학인 ‘오온부터 12처 18계 우주 등 온 세상과 나까지 포함하는 일체법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근본불교 교학을 허망한 것(空)혹은 없는 것(無)’이라고 단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처님의 모든 교학을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든 다음,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힌두교의 근본교리인 공사상으로 불교교리를 무효화 시킨 원흉 같은 경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래 근본불교는 힌두교의 바탕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오온 십이처 십팔계 무명 업과 연기 윤회 해탈 이런 용어들은 모두 힌두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 2가지, 일체법이 허망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공사상이 아닌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과, 영원히 존속한다는 아트만이 아닌 제법무아만 힌두교와 판이하게 다른 사상입니다.



브라만 경전인 베다와 베다의 후신인 힌두경전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자아추구의 결과물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세상에 만연한 고통, 존재의 허망함, 끊임없이 계속되는 탄생과 죽음의 의미 등에 대한 고민과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을 찾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무아라는 것을 체득하는 것으로 서로 상반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금강경 등의 대승경전




또한 근본불교 교리는 철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강경에서부터 불교는 무수한 말의 잔치가 영판 불교의 본령인양 호도되었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해석하는데 이천년 동안 모두의 해석이 각기 다를 정도로 애매하게 표현된 몇몇 구절로 인해, 불교는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철학이 불교이고 불교가 철학인양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근본교학은 맺고 끊는 법이 칼 같은 것이지요. 와서 보라 할 만큼 누구나 들으면 즉시 이해되고 감동 받아서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 뿐이지요. 어느 누가 해석하든 초기불교 교학은 한 치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물론 논장불교를 하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승경전으로 와서는 경전 하나를 해석하는데 평생을 바쳐도 또 다른 이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금강경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45년 부처님 가르침을 수보리와의 질의응답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수보리야 내가 한마디라도 설한 것이 있었느냐?' '그렇다. 나는 한마디도 설한 적이 없다.'라고 부정하게 만든 후 '일체법은 무상이 아니라 여몽환포영로전의 공이다'라는 힌두대승불교로 전환하는 전환점으로 만든 것이 금강경인 것입니다.





경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아상이니 중생상이니, 자아니 개아니, 법이니 비법이니, 보살이나 여래니 같은 말을 수십 번 중언부언하고,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그 복덕이 얼마나 크다며, 끝없이 되풀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초기경전에 어디 그런 술 취한 자가 횡설수설, 했던 말 또 하고 또 했던 말 또 하는 쓸데없는 말이 단 한 줄이라도 있습니까?




이 금강경은, 힌두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닌, 그렇다고 불교가 아닌 것도 아니고 힌두교가 아닌 것도 아닌, 힌두교라고 말기도 그렇고 불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불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힌두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힌두교이면서 불교라고 하기도 그렇고 불교이면서 힌두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불교는 불교인데 힌두교 같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힌두교는 힌두교인데 불교 같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힌두교적인 불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불교적인 힌두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불교적인 눈으로 보면 불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힌두교적인 눈으로 보면 힌두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불교라고 하는데 힌두교와 더 가까워 보이고 힌두교라 하는데 불교와 더 가까워 보이고, 불교가 불교라서 불교가 아니고 힌두교가 힌두교라서 힌두교가 아니고, 불교가 불교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이고 힌두교가 힌두교가 아니기 때문에 힌두교이고....




이런 중언부언,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아상 인상 중생상을 철저히 부정하다가 갑자기 긍정해버리고, 금강경에 그 많은 '수지독송하면 그 공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 니까야에 단 한 줄이라도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집니다. 이런 애매한 말장난으로 일관된 경전은 니까야 7000여 개 경전 중에 단 하나도 없는 것이지요.




지난 번에도 예를 들었던, '집착을 떠나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라. 집착 없이 행하는 자가 가장 높은데 이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금강경(응모소주 이생기심)보다 최소 3~5백년 앞선 힌두교의 최고경전인 바가바드 기타(신의 노래)에 나오는 말인데, 이런 힌두교사상을 대승불교논사들은 아무런 비판 없이 차용해서 그대로 불교의 이름으로 경전을 만든 것이지요.





근본불교교리와 어떻게 다른가?




또 무주상보시라는 것을 많이 강조하지만 이것은 초기불교와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가 공덕을 쌓았으면 평소에도 그 공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야 임종할 때 그 즐겁고 행복한 죽음의식이 남아 다른 생명으로 재생연결 될 때 선처에 태어나서 후생을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을 때 선행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괴로움만 있다면 악처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렇듯 금강경에서 그렇게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무주상보시마저 근본불교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금강경 맨 마지막 32품 응화비진분,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은 금강경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론이고 금강경의 핵심이지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금강경을 적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은 허망한 것(공)이다. 부처님은 무상이라고 했으나 그것은 잘못 본 것이고, 일체법은 허망한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한 것입니다.




"수보리야, 내가 단 하나라도 설한 것이 있느냐?"

"아닙니다. 여래께서는 하나도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나의 설법은 뗏목과 같은 줄 알아라.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 부처님은 스스로 근본불교교리를 하천한 것으로 버리셨다고 주장한 후에 '모든 것은 개시허망하여 제상이 비상(공)임을 본다면 진리(참나)를 본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면서 '세상은 허망한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미 물 건너 갔다(所謂佛法者 卽非佛法 :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이 금강경인 것입니다.(단현의 일방적인 해설)




아쇼카 대왕의 전국가적인 지원으로 정사마다 화려한 식당이 차려지고 산해진미를 공양올리는데 현혹되어 불교승단에 대거 유입된 힌두논사들이, 평생 <이 세상은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참나(아트만)을 찾아 브라만과 합일하는 것이 해탈 열반>이라고 신념하던 힌두교적 사고가 뿌리 깊게 젖어 있던 힌두교논사들이, 비록 향기로운 음식을 쫓아 불교승단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머리 속 깊이 세뇌되어 있던 사상은 죽어도 불교의 근본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공사상을 주장하는 반야경과 금강경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제행무상과 일체개공은 얼마나 다른 사상인지 이미 알고 계실테니 간단히 말하지만, 불교는 무상이라서 무아가 나올 수 있지만, 힌두교는 허망하기 때문에 참나를 찾아야 한다는 사상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금강경은 힌두교의 논사들이 불교로 들어와 불교를 힌두교로 변질시키기 위해 만든 초기대승경전으로, 대부분의 불교학자들과 특히 대승불교의 영향을 입지 않는 유럽의 불교학자들이 그 점을 격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본불교 전공자가 반야부경전을 강론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지만 금강경은 각 종단에서 앞다투어 소의경전으로 정해서 한국 스님들이 가장 먼저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여 공부한 경전이기 때문에, 대승불교에 출가한 후 초기불교를 공부하신 스님들은 아직도 '금강경이 아주 좋은 경전으로 초기불교적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미련이 남아 금강경을 강의하고 있고 법회 때마다 독송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에 산냐 무아 등 초기불교 비슷한 내용도 있고, 부파불교의 유식사상 자아나 영혼사상을 고발하는 내용, 기타 도덕적으로 좋은 내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강경은 근본적으로 힌두사상에 가까운 경전이고 근본불교적 측면에서 볼 때 없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경전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사상의 변질사를 공부하지 않는 분들은 저의 이 말을 도무지 믿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런 관점의 전환이 없으면 진정한 근본불교 교학으로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니까야에 非我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불교에서 我라는 것은 없다(無)는 것과, 我가 아니다(非)라는 것은 너무 다른 것입니다. 니까야 속에 我를 無가 아닌 非로 표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지요.




근본불교에서 無我가 아닌 非我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 옛날부터 이단취급을 받았던 케케묵은 이야기입니다. 역시 남방 상좌부에서 이런 비아를 주장한다면 그날로 멸빈되어 쫓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아직도 무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아를 말하는 것은 아직 힌두불교적 참나 개념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제행비상(諸行非常) 제행개고(諸行非苦) 제행비아(諸行非我) 역시 근본불교 교학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가가 아니라 제행비상 제행비고 제행비아라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학자에게도 나오지 않은 말로서 이것은 근본불교가 이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불교적으로는 비상 비고 비아라는 용어는 유식논사들이 무아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껴, 나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피해 "아트만이 아니다 무아가 아닌 그 어떤 실체가 있다"는 의미로 윤색해서 쓰는 용어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근본불교에서는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근본불교 학자이신 마성스님의 신간인 <왕초보 초기불교 박사되다, 민족사> 143페이지에, 힌두논사들이 점령한 부파불교 중에서도 초기 유식사상을 주장한 설일체유부가 기록한 잡아함경 제1권 제1경 무상경에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다하고 범행은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고 관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이요, 空하며,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러나 이 경과 대응하는 상윳다 니까야에는 공이나 비아라는 대목은 없다. 오직 무상 고 무아로 되어 있다. 니까야의 무아(anatta)를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의도적으로 공 비아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라문 힌두논사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아함경은 의도적으로 무상 무아를 공이나 비아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마성스님을 만났을 때 비아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여쭈기도 했고, 춘천 흥천사의 혜천스님께도 여쭙기도 했었습니다 [혜천스님, 반야심경 강의 / 반야의 지혜! 마음으로 흐르다...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c7G7/117] 너무나 좋은 위대한 강의, 불자라면 무조건 필독 요) 물론 스님들의 답은 대승불교의 역사는 무아를 탈피하고 유아로 회귀하려는 역사라고 이구동성이셨습니다.



무아도 아니고 유아도 아닌, 참나 아뢰야식 여래장 본래면목 그놈 주인공 주시자 등등의 비아를 만들어 마치 그 어떤 실체가 존속하는 양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비아라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접습니다. 저는 불교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전개할 수 없고, 무아와 비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마성스님 각묵스님 전재성박사님 임승택교수님 등의 강의나 질문을 이용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스님들이나 법사들은 가장 먼저 불교사상사를 공부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불교의 교학을 공부하기 전에 먼저 불교교리발달사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교리가 어느 시대 무슨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교리도 자기 기호에 맞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게 되어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원불사 불자필독자료란 게시판의 글 중에 [단현의 신앙고백 / 출재가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불자 필독서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c18q/73] 중에 불교사상사 책 5가지 중에 양훼이난 교수의 불교사상사를 먼저 읽으시면 오늘 이 글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이 되고, 또한 근본불교 교학의 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며, 이후에 니까야나 교학을 공부하거나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바르고 빠른 길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이여 2016-07-24 09:19:37
조계종에 학문이높고 선지식 참다운 깨달음얻은 선지식,하나도 없고~

아하~ 있지 그려 있구먼

선지식인보다 훨씬 더높은~ 깨우쳐 참나부처경지 이룩한 이들이 가득있지~

그러네 있네~있어~
본래자성불에 개나소나 하품소리 대신에 불성가득에~

그래서 사람도 개나,소나 같은 짐승이여~

사람은 새처럼 날지도 못하고 사자나 호랑이처럼 크고,날쎄지도 못하고
고래처럼 웅장하게 크지않은 그냥 짐승들 중에 하나여~

사람은 그들 짐승들중에 하나가 더나은 생각많은 동물이여~

다른 어느짐승도 가져 보지도 ,갓고 있지;도 않은 사람 전용 전매특허용 인거여

그래서 이생각은 아주 소중한 것이여

이 몸뚱아리는 길어봐야 백년짜리 몸뚱아리여~
생각많은 짐승이라고 온갓 가득~ 생각 많은 잡념 번뇌로만 살아가는~
이러한 일체고름덩어리를 안버릴겨?
그렇게 개나소나 다가진 불성 참나로 죽어면 짐승값도 못받을건디?


어여 어여 어여~
늣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바르게 고치지 못하면
그냥 짐승일뿐이여 사람짐승!

그러니 어서,생각을 잘사유해봐여~
무엇이 잘못인지여~ 잘모르면 있잖아요 우리 불자들의 영원한 스승님!

석가모니 부처님법과 사상 그대로 유지[열반유훈]받들어

바른견해를 내어서 바른 택법을 잘 등명하여 정사유등으로 잘~ 다스려야제?
그냥 사람징슴대로 한세상 요대로 살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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