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세우고, 스님들 뒷바라지를 하며, 8남매 모두를 스님 등 불자로 길러낸 이의열(원만화) 보살이 지난 9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104세. 원만화 보살은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혜일 스님(서울 법륜사, 제주 정방사 주지) 어머니이다.
제주에 부처님 법 꽃피운 보살
원만화 보살의 장례는 제주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에서 5일장으로 치러졌다. 발인을 하루 앞둔 12일 혜일 스님은 “내 어머니 원만화 보살은 불심이 지극했다. 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스님을 공양했던 분”이라고 했다.
혜일 스님과 자식들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절에 먹을 것이 없으면 직접 탁발해 사찰 운영을 돕던 대보살이었다. 법화사 초대 신도회장을 지냈던 아버지와 함께 척박한 제주도에서 부처님 법을 피운 보현보살이었다.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도
혜일 스님은 “어머니는 8세 때부터 내겐 외조모인 친정어머니를 따라 법화사를 다니며 불연을 쌓았다. 어머니는 안봉려관 스님에게 불교를 배웠다. 방동화 스님, 동산 스님 등을 시봉하며 대보살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는 3‧1운동보다 앞선 1918년 서귀포 법정사 항일 운동을 했던 방동화 스님을 어려서부터 가까이 시봉했던 분이다. 일생을 서귀포 불교를 위해 헌신했던 보살”이라고 했다.
함께 읽고 외운 ‘반야심경’
스님은 “어머니의 남다른 신심을 지켜본 8남매 모두가 불자가 됐다. 다섯째인 나는 스님이 됐다. 손자, 외손자도 사찰 청년회 회장, 불교대학 동문회장 등으로 불교를 위해 각각의 몫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한글 반야심경>을 구해왔다. 내게 5번을 읽어달라고 했다. 5번을 읽었다. 어머니를 따라 나도 <반야심경>을 외우게 됐다. 그 인연으로 나는 출가를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모습 자연스레 닮게 돼
스님은 “내가 출가한 뒤 어머니와 서로 경어를 썼다. 어머니와 아들이었지만 출가한 뒤로는 도반처럼 서로의 수행을 격려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아들 강부택 씨는 “나는 일생을 농부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왔다. 일할 때는 일하고 어머니가 절에 가자면 절에 갔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아들 강부철 씨는 “나 역시 어머니와 절에 다니면서 동생스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장손 강동욱 씨는 “어려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가서 뛰어놀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원만화 보살)는 광명사를 세운 주인공이었다”고 했다.
아들 강부윤 씨는 “형제들 신심은 모두 어머니를 빼닮았다. 나도 젊어서는 절에서 청년회장을 역임했다. 부처님과 절에 헌신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닮게 된 것”이라고 했다.
출가생활 버팀목 된 어머니 가르침
혜일 스님은 “출가 후 지난 1997년부터 제주 정방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은사 덕암 큰스님과 함께 어머니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큰스님과 속가식구에 누가 안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만화 보살은 생전에 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잊지 않았다고 전한다.
원만화보살이 다섯 보살들과 시주금을 모아 세운 광명사와 아들 혜일 스님이 주지로 있는 정방사 신도 등은 12일 대보살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원만화 보살은 13일 오전 영결식 후 서귀포 가족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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