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관 관찰 과정과 화두의 유래
수식관 관찰 과정과 화두의 유래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6.04.1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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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19.

성찰배경: 앞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초심자 분들이 수식관 수행을 철저히 하게 되면, 자연스레 화두話頭 참구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먼저 지난 수개월간 수식관을 집중적으로 수행하신 초심자 분이 최근 그 수식관 수행 관찰 과정을 상세히 정리한 기록을 이메일로 저에게 보내주셨기에 주고받은 이메일의 핵심 내용을 소개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화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두의 유래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수식관 수행 관찰 과정과 그 한계

초심자분의 이메일: 법경 법사님, 지난 5개월 가까이 변화한 내용을 요약도 할 겸 간단한 수준변화표 같은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변화를 좀 더 상세히 공유하고 혹시 학부 학생들을 지도하시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가능한 상세히 적어 보았습니다. 아래 수준표에 나타난 것처럼, 지난 5개월 동안 큰 변화가 없는 것도 같았는데 막상 적어보니 이런 저런 꼬물꼬물한 변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능한 7,8단계에 머물고자 하나 그렇지 못한 날도 많습니다. 그런데 보다 구체적인 빈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개는 5,6단계에 머물렀고 7,8단계는 가끔 찾아옵니다. 특히, 8단계에 이른 것은 지금까지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1. 자리에 앉아 수를 세는데 수세기가 중간 중간 끊어지고 호흡도 편안하지 않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올라와 수세기를 방해하고 몇 분간은 그 생각 속에 빠져들어서 다시 하나부터 수를 세어야 한다. 한참 앉아 있었던 것도 같은데 시간은 더디 흐르고 수세기를 한 것인지 복잡한 망념에 빠져들었던 시간인지 구분이 안 된다. 좌선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한다.

2. 전체 좌선 시간 중에서 수를 세는 시간이 늘어나고 딴 생각으로 빠졌다가 다시 수를 세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든다. 수세기가 약간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데 그래도 그럭저럭 수를 세는 활동이 이어져 가기는 한다. 호흡은 약간씩 편해지기는 한데 한 호흡의 길이가 짧아 하나-둘-셋-넷 정도로 이어지고, 하나아-두우울 - 이런 식으로 조금 더 깊고 천천히 호흡을 하려고 하면 수세기의 리듬이 깨어져 이내 다른 생각이 섞여들기 시작한다.

3. 수세기가 지속되나 수를 세는 활동 안으로 몰입이 잘 되지 않고 약간 겉도는 식의 수세기를 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저런 오늘 할 일이나 그동안 생각하던 여러 가지 아이디어 혹은 과거의 일들이 자꾸 기억 속에서 흘러나와 수세기에 섞여든다. 수세기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앉아있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밀려들고 오래지 않아 눈이 떠진다. 그래도 다리를 틀고 앉아 매일 수식관을 진행하는 것 자체는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4. 수세기의 리듬도 어느 정도 일정해지고 잘 끊어지지 않지만 여전히 다른 생각도 함께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그러나 수 세기에만 집중하든 수 세기와 생각이 약간 혼합되어 있든 전체적인 집중도가 좋아져서 주변의 소리나 자극에 덜 민감하다. 가끔 수세기의 몰입도가 좋아진 것을 발견하는데, 몰입하는 순간은 잘 모르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주변의 소리나 자극이 들어올 때야 비로소 한동안 수세기에 집중해 있었음을 느낀다. 집중하는 동안 다리가 아프거나 좌선 자세가 가져다주는 어색함 등은 어느새 잊어버린 것도 같다.

5. 수세기 활동이 잘 진행되다가 비록 몇 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 올라오기도 멈추면서 수세기만 하거나, 수세기 중 수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 지속된다. 가끔 눈을 감았음에도 눈 앞쪽에 수를 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수의 모습을 형상화 해 보기도 한다. 좌선을 매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좌선의 시작, 수세기 워밍업, 몰입의 시간, 집중도가 다시 엷어지는 시간, 재몰입의 시간, 좌선의 마침과 같은 일련의 리듬내지는 흐름이 생겨났다.

6. 위와 같은 수세기 지속 시간이 제법 길게 이어지고 수를 세는 단순한 일인데도 마음이 평안하고 다른 복잡한 생각이 잘 올라오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앉아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순간순간 짧은 생각이 올라오는 듯도 한데 이내 옆으로 밀려나 버린다. 가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올라올 때도 그냥 마음 속으로 “이제 그만 하게나. 그냥 이대로가 내 모습 아니던가?” 하는 듯한 상태가 되며 다시 편안한 상태가 유지된다. 좌선을 하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이 많이 올라올 것 같으면, 미리 일정관리나 업무 기타 복잡한 생각들에 대해서 미리 점검하고 정리하여 좌선 시간동안 방해받지 않으려는 예방차원의 준비도 한다.

7. 수세기의 집중도가 좋고 호흡도 편안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수를 세면서 호흡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마치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있는데 그 내가 나를 관찰하는 상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수세기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며 상대적으로 짧게 앉았던 것도 같은데 나중에 시계를 보면 생각 보다 앉아 있었던 시간이 길었다. 오랜 세월동안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그 무슨 커다란 깨달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세기 같은 단순한 자기조절의 시간도 꾸준히 갖지 못한 것이었음을 발견한다.

8. 수세기를 하는 동안 잡념이 거의 올라오지 않고 그냥 수랑 매우 친해진 것인 양 수를 세게 된다. 생각의 그림자도 휴식을 취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수세기에 몰입이 되어 가지만 중간에 바람소리 같은 것이 들려도 수세기에 묻혀간다. 다른 방해조건만 없다면 꽤 오랜 시간동안 앉아 있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저의 답신: 수식관 수행을 하시면서 체험한 바를 매우 상세하게 정리하셨군요. 마지막으로 다음을 추가하면 좋겠습니다.

9. 다른 느낌은 다 사라지고 오직 자신과 호흡과 수세기가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다가 좌선 법회에서 마치는 죽비 소리가 들릴 때 (또는 혼자 하는 경우 알람을 맞추어 놓고 앉아 알람이 울릴 때) (아!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구나! 하면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사실 수식관의 마지막 단계는 수식관의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합니다. 장점은 수식관을 하는 동안 잡념 없이 몰입할 수 있게 되어 마치게 되면 머리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상쾌해졌음을 느낍니다.
한편 한계는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좁은 안목으로 현안 문제들과 씨름하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한가운데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곤 합니다. 그래서 수식관이 잘 되는 분들의 경우 (8,9 단계) 이제 화두 참구를 하며 본격적으로 간화선 수행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화두 타파를 통해 안목이 자연스레 넓어지게 되며, 넓어지면 질수록 자아에 대한 질긴 집착을 포함해 삼독으로부터 그만큼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될수록 자연스레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5달 정도 꾸준히 수식관 수행을 잘 이어오신 선생님의 경우 이번 일주일 동안 9단계를 목표로 철저히 수식관 수행을 해 보시고 새로운 변화의 시도로 화두 참구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네요. 법경 합장

화두의 유래: 지사문의指事問義

 ‘사물을 가리키며 그 본질을 묻는 것[지사문의指事問義]’도 사실 화두의 일종으로 당唐 나라 시대의 선문답에 많이 등장하는 다양한 생활 용품이나 동식물 및 일상생활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 등이 흔히 화두[公案]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에서 그 유래를 쉽게 찾을 수 있어, 그 본보기로 ‘스리 라마 크리슈나의 비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에 대해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자 제자가 스승에게 왔다. 스승은 제자에게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 제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서 명상을 시작하면 자꾸 자기가 사랑하는 황소 생각이 나서 명상을 계속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음, 그러냐. 그럼, 네가 사랑하는 황소에 대해 명상하기로 해라.’ 제자는 오직 황소만을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뒤 스승이 제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제자가 대답했다. ‘스승님! 스승님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문이 너무 작아서 제 뿔이 걸릴 것 같아요.’ 이에 스승은 웃으며 말했다. ‘놀라운 일이다! 너는 이제 네가 집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었구나. 그럼. 이제 신에 대해 집중해 보거라. 쉽게 될 것이다.’"

군더더기: 그런데 선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경계는 아직 멀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 명상의 스승은 이 정도에서 인정했을지 몰라도, ‘뿔’이라는 분별이 아직 남아 있어 실제로는 집중의 대상인 ‘소’와 철저히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선도회의 경우 초심자 분들 가운데 일 년 이상 참선을 해도 ‘초심자를 위한 화두’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분들, 특히 지식적知識的으로 상당히 내공을 쌓은 분들을 위해 구체적인 대상에 관한 ‘지사문의’ 부류에 속하는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게 하고 동시에 떠오른 경계들을 입실점검入室點檢 받게 하면서 저절로 간화선看話禪 수행이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초심자들을 위한 화두인 ‘찰칙察則’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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