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이 번쩍, 하늘서 검은 비 내리고
섬광이 번쩍, 하늘서 검은 비 내리고
  • 합천평화의집
  • 승인 2016.0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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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70년,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후손들] 2. 1945년 8월 6일, 그날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였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0주년이 되던 해였다는 것은 많은 국민이 알지 못합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폭발과 화재,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이 70만 명에 달했습니다. 피폭 피해는 국적 인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징용 등에 동원됐던 조선인들 역시 원자폭탄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한국인(조선인)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 지조차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약 7만 명, 나가사키에서 약 3만 명의 한국인이 피폭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중 5만 명은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피폭 한국인 가운데 4만 3,000여 명이 방사능에 피폭된 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우리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원폭 피해자들은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다가 죽어갔습니다. 일상적인 삶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우리나라 정부는 외면했습니다. 피폭자와 그 후손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어 ‘원폭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배상은 없었습니다. 원폭피해자 자신만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그 2세와 3세까지 피폭의 상흔이 대물림됐습니다. 2015년 9월 30일 기준으로 국내에 2,524명의 원폭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아픔은 우리 정부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도 요원합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뜻에서 ‘합천 평화의집’과 함께 ‘잊혀진 70년,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후손들’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여기에 실린 내용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 박영준(가명, 78세)님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은 생각하기도 싫은 날이다. 그날 아버지는 여덟 명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식자재 배달을 나가고 집에 안 계셨다.

그 당시 나는 미사사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침을 먹고 방안에서 형들과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부엌 쪽 지붕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흙먼지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런 갑작스러운 난리통에도 어머니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하여 어린 우리 형제들을 모두 챙기시더니 방공호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나는 그때 엉겁결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오다가 무너진 부엌 판자 모서리에 가슴을 찔려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방공호에 간 어머니는 들락날락하시며 배달 나가신 아버지께서 무사히 방공호로 오시기를 바라셨지만 아버지는 소식이 없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한 번 섬광이 번쩍한 후 시내 전체가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밤하늘처럼 깜깜해졌다.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렸는데 시꺼먼 석유 찌꺼기가 묻은 끈적끈적한 물 같았다.





그 때는 매일 같이 피난 경보(쿠슈케이호)가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수십 척의 비행기가 떼를 지어 히로시마 하늘을 지나가곤 했었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투하된 그날은 피난 경보도 없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섬광이 번쩍하더니 큰 폭발음이 들리고 거센 바람과 함께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히로시마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원자폭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던 터였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좁디좁은 방공호 안에서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시꺼멓게 때가 묻은 옷을 입으신 아버지가 방공호 안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셨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에 우리 가족은 서로 기뻐하며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투성이가 된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기겁하시더니 나를 들쳐 엎고 서둘러 근처 아키여자고등학교로 달려 가셨다. 아키여자고등학교에는 어느새 의료진이 와 있었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부상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한참 후에야 치료를 받고 무사히 방공호로 올 수 있었다.

아버님 등에 업혀 방공호로 오는 도중에 본 거리엔 어느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기도 하고 부서진 집을 보고 땅을 치며 대성통곡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길옆으로는 자욱한 연기 속에 부서진 집들이 흡사 태풍이 휩쓸고 간 듯 수없이 널려있었고, 불이 타고 있는데 누구 한사람 불을 끄려고 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시내 쪽에도 곳곳에 불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고 시커먼 연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무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틀 정도 방공호에서 지내고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에게 이곳보다 안전한 ‘고이’란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 친구 분이 계신 마을 ‘고이’는 아수라장이 된 히로시마 시내와는 정반대로 평온한 마을이었다.

‘고이’에서도 3개월쯤 지났을까 이곳에서도 불안하셨는지 아버지는 눈이 내리는 12월 중순, 가족을 데리고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귀국 길에 올랐다. 12월의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몇 차례 기차와 트럭을 바꿔 타고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키’ 항구였다. 벌써 그 곳은 한국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서로 먼저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틈새에서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에게 예방주사를 맞게 하고, 보리쌀이 많이 섞인 주먹밥이나마 가족 수 대로 배급을 받아 추위와 허기에 지친 배를 채워 무사히 배에 몸을 실을 수 있게 하셨다.

그 후 뱃멀미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토록 그리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고향이라고 찾아온 합천은 너무 썰렁하였고 친척이라고 찾아가 본 집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몸 전체에 피부병 같은 발진이 생기면서 온몸이 가렵고 숨이 차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모시고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민간요법은 물론 여러 가지 치료와 약물요법까지 함께 써 보았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시고 아버지는 결국 50대 초반에 한 많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가 원자폭탄 피폭에 의하여 병이 발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원폭으로 병이 발생했다고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식자재 배달을 나가셨다가 원폭을 맞고 가족을 찾으러 피폭지를 헤매고 다니셨으니 당연한 결과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아버지를 찾으러 시내를 나가셨다가 원폭에 피폭되어 평생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셨다.

히로시마에 있던 우리 형제자매들도 다를 바 없었다. 원폭피해 후유증으로 위암, 갑상선암, 전립선암 등으로 사경을 헤매는 수술을 여러 번 받고, 형님들은 원폭증을 평생 안고 사시다가 여러 해 전 모두 돌아가셨다. 




현재 한국에는 나와 같은 2,600여 명의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가 있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와 같은 처참한 생활로 70여 년을 버텨왔고,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원폭피해자들은 36년 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헐벗고 굶주리다 목숨이라도 연명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병마와 싸우며 전 재산과 가족을 잃었다.

늦었지만 우리 원폭피해자들이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은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원폭피해자 명예와 인간다운 권리를 찾아주는데 관심을 갖고 아픈 삶을 치유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것만이 아직도 주야장천 떠도는 한 많은 원폭희생자 영혼들에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합천평화의집은 2002년, 한국인 원폭2세피해자 故 김형률님의 커밍아웃에서 시작된 한국원폭2세 인권운동의 성과를 모아 2010년 3월, 한국원폭2세와 뜻있는 시민단체가 협력하여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 설립한 비핵․평화운동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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