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주지스님이 청정 비구 종단에 부적절한 주지스님이 있다고 해서 문제제기한 신도들을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하는 모습이기에 매우 황당한 상황이기도 하다. 의혹을 밝혀 논란을 마무리하기보다는 주지직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고 한 자신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진정한 스님의 모습이 어떠한 지 일본 임제종의 하쿠인(白隱慧鶴 1685-1768)선사의 일화를 보자.
수행으로 명성이 드높아 살아있는 부처라고 일컬어지던 하쿠인 선사에게 많은 스님들이 몰려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산 아래 마을 처녀가 동네 총각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었다.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날 때의 동네 비난과 연인이 다칠 것을 염려하던 여인은 워낙 명성이 높기에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해서 아이의 아버지가 하쿠인 선사라고 말했다. 성난 마을 사람들은 선사에게 찾아가 각종 욕을 하며 수행은커녕 여자에 손대는 자라고 소란을 피우자 가만히 앉아 듣고 있던 선사는 이윽고 일을 열어 ‘그렇습니까?’라고만 대답하였다.
이를 지켜본 많은 스님들은 수근 거리면서 사찰을 떠나갔고, 이윽고 10개월이 지나 아기가 태어나고 여인의 부모는 어린 젖먹이를 데리고 사찰로 올라가 하쿠인 선사에게 갖다 주며 ‘당신 아이니 당신이 기르시오’ 했다. 그때도 선사는 '그렇습니까?'라고하면서 아이를 받았고, 이에 그나마 남아 있던 스님들도 떠나고 그 많던 신도들은 발길을 끊었다. 선사는 묵묵히 힘들게 젖동냥과 탁발로 아이를 정성껏 길렀다.
한편, 아이를 못 잊고 아이까지 태어난 상황에서 가정을 이루고자 딸은 모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놀란 아버지와 주민들은 이제는 몇 안 남고 모두 떠나간 황량한 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아이와 함께 있는 선사에게 찾아가 백배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선사는 이번에도 담담히 또 다시 '그렇습니까?‘ 라면서 아이를 여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바른 비판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난에마저도 나를 내세우지 않는 이런 스님을 한국 조계종단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만, 제시된 의혹을 밝혀 청정 비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신도들을 비난하고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신도들을 고소하는 승려가 종단 본사급 주지라는 것은 참으로 신도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는 과연 자신이 입고 있는 승복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는 비단 그만의 모습이 아니다. 올해 초 ‘바른불교 재가모임’ 창립식에서 세월호 사태에 있어서 이웃종교에 비해 불교 활동이 없었다는 발언을 한 이에 대하여 종단 관계자들은 해당인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또한 종단의 잘 알려진 어느 스님은 자신이 팽목항에서 봉사했는데 그런 말을 들어서 잠을 못 이뤘다고까지 매체에 언급하는 것을 보았을 때, 불자로서 느꼈던 자괴감을 기억한다. 그것이 내가 속한 조계종단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범계의혹 속에 송담 스님마저 탈종시킨 스님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런 주지로 인해 손상된 신도들의 명예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가다.
청정 비구 종단인 조계종단의 신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종교가 기득권을 이룬 한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불자임을 당당하게 천명하고 있는 재가신도들이다. 그렇다면 종단 승려들의 각종 범계의혹과 도박, 폭행, 표절, 성추행, 은처, 범죄자와의 유착 등의 구체적 행태가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추된 불교도로서의 자긍심과 명예는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진정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야 할 이들은 의혹을 밝혀 청정비구 종단을 되찾고자 나선 신도들이 아니라 그런 추한 승려들이 아닐까.
재가신도를로부터 존경받고 물심양면으로 공양 받을 청정 비구종단을 바라는 재가자들의 바람이 승려의 명예훼손이라면, 반대로 범계행위가 밝혀진 승려들이나 세속법으로는 무죄라고 해도 청정비구의 행태로 볼 수없는 승려들이야말로 신도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임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하쿠인 선사의 일화를 보자.
유명한 대신이 선사를 방문해 특별한 가르침을 청했고, 마침 절 앞에 사는 할머니가 수수떡을 올렸다. 시골 할머니가 만든 거칠고 모양도 좋지 않아 맛도 없어 보이는 수수떡을 하쿠인 선사가 대신에게 권하자 그는 일순 당황하고 머뭇거렸다. 이를 본 하쿠인 선사는 조용히 말했다. ‘마음 내어 드시지요. 백성들의 고귀한 수고의 맛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늙은 소승의 가르침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불가의 높은 가르침을 배우고 체화시켜 살고자 하는 재가신도들의 자긍심을 이권과 권력 싸움 속에 신도들을 기만하는 종단의 권승들이 이해나 할 수 있을까. 불자로서의 자긍심이자 당당함을 짓밟은 못난 승려들이 너무 가득하다. 종단에 진정 스승으로 삼아 즐겁게 함께 갈 승려는커녕 부끄러움을 느끼는 승려조차 너무도 적은 것이 종단 현실이다. 문제제기한 문중 스님들은 손도 못대고 신도들이나 세속법에 고소하는 수준의 승려가 종단의 본사주지이고, 이에 호응하는 총무원 스님들이라니 그들을 위해 푸른 가을 하늘이 오늘 더욱 더 부끄러울 뿐이다.
/ 우희종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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