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끄네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끄네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5.09.26 1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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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13.

성찰배경: 마침 전통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추석명절이 돌아왔습니다. 선도회의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 가운데 ‘이천 소가 밥 먹으니 제주 말이 배부르네!’[이천우끽화利川牛喫禾 제주마복창濟州馬腹脹]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또한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끄네’[신부기려아가견新婦騎驢阿家牽]라는 화두도 있습니다. 사실 본질적으로 이들 두 화두는 같지만 명절 때마다 겪는 명절증후군을 앓고 있는 요즈음 세태에 비추어 뜻하는 바가 적지 않기에 추석명절에 즈음해 함께 성찰하고자 저의 졸작인 <두 문을 동시에 투과한다>(불광, 2004)에 들어 있는 내용을 발췌해 따로 제창해 보고자 합니다.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끄네

이 글귀는 <선림구집禪林句集> 가운데 칠언七言에 나오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임제 선사의 선풍이 쇠퇴하기 시작하던 송나라 초기에 다시 임제종의 바람을 일으켜 세운 분이 수산首山 선사인데 이 분은 바로 <무문관> 제43칙인 ‘수산죽비首山竹篦’로 유명한 분입니다. 수산 스님에게 어느 때 한 승려가 “부처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수산 스님께서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아가阿家]는 고삐를 끄네!”라고 응대한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수산 스님께서 1000년 후 적지 않은 시어머니 분들께서 며느리 분들에게 역으로 시집살이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예언하신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굳이 말로 풀이하자면 시어머니란 위치도 며느리란 위치도 떠난 경지에 도달했을 때 “부처란 무엇입니까?”란 물음의 답은 스스로 자명하리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 뿐이지 스스로 체득하지 않고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사실 이런 경지에 서게 되면 며느리는 평소에는 남편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시부모님들을 극진히 봉양할 것이며 이런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병으로 몸져눕게 됐을 때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느리의 병간호를 극진히 하게 될 것이니 이 경지가 바로 시어머니니 며느리니 하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초월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편 앞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무심無心한 선적禪的 경계에 대해서만 언급했으나 정말로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진심으로 극진히 봉양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데에는 역시 아들의 진지한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즉, 아들도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라고 하는 옛말은 과거의 잘못된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돌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고이 길러 시집보내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모시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평소에 살아간다면 아내는 남편의 그 진심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더욱 극진히 시부모님을 모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즈음은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하나나 둘을 낳아 기르는 것이 젊은 부부들 사이에 보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신부기려아가견’의 바른 이해와 실천이 더욱 절실해져가고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정신을 잘 살린다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득실에 얽힌 대부분의 문제들도 대립의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의 관계를 통해 보다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군더더기: 참고로 ‘이천 소가 밥 먹으니 제주 말이 배부르다’라는 화두는 원전에는 중국의 옛 지명인 회주懷州와 익주益州로 되어있으나 선도회의 종달 선사께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이를 우리나라 지명으로 바꾸셨습니다. 사실 이 화두는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술과도 관계가 있는 ‘김 서방이 술 마시니 이 서방이 취하네![김공끽주리공취金公喫酒李公醉]’와 본질적으로 같은 화두로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경지에 도달할 때만이 비로소 이천 소니 제주 말이니 혹은 김 서방이니 이 서방이니 하는 차별계에서 벗어나, 뚜렷한 평등적 견해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명절 관련 선행 자료:
설 명절에 즈음해 부모님의 고마움 새기기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02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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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자 2015-10-04 17:21:26
~시부모와 며느리,장인.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공경과 존중 공감대형성 포근함으로 넉넉하며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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