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약간 생소한 단어이지만 도시재생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도시재개발이나 재건축과 같은 일률적이고 전면적인 철거 방식이 아닌, 동네 주민이 중심이 되어 마을의 역사성과 공간적 특이성을 강조하여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맞춤형 정비방식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의 경우 대기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익추구를 통한 무분별하고 천편일률적인 개발방식이다. 반대로 주민의 생활공간을 인정해주고 그들 자신이 공간을 변혁시켜가는 방식이 도시재생사업이다. 서울시는 향후 도시재생의 추진모델이 될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지역을 선정한 바 있다.
도시란 허물을 벗는 곤충과 같다. 도시는 일반적으로 50년 또는 100년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건물의 수명이 다하면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 이 경우 도시의 공간이 재배치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도시는 새롭게 변모하거나 새롭게 태어난다.
동대문구장이 있던 곳에 동대문프라자(DDP)를 건축한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보존도 있지만, 새로운 창조도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면,
“도시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력 회복을 위하여 공공의 역할과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도시의 자생적 성장기반을 확충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일 것이다. 삶의 질은 물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강하다. 도시가 인간미가 없거나 문화가 없으면 유령도시가 된다.
근대에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도시는 인공의 작품이었다. 도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아가는 매우 편리한 공간이었다. 차라리 온실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개념이 바뀌고 있다.
‘자연을 씨줄로 문화를 날줄로 엮어나가는 것이 도시’라고 한다. 자연을 배제한 도시는 너무나 삭막하고 오염으로 가득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조선말 한양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이 된다. 건물의 수명이 다하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이렇듯 도시는 허물을 벗는 곤충처럼 변모한다. 변모할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문화 즉 정신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풍수이다. 미국의 눈이나 유럽의 눈으로 도시를 만든다면 국적불명의 도시가 된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의 혼을 보고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의 도시를 만들자. 그 바탕이 풍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조상들이 경주를 만들고, 개성을 만들고, 한양을 만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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