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악마인가
감정은 악마인가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6.22 07:32
  • 댓글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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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53.

- 철학자들은 감정이 이성과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고,
  특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과 반대가 된다고 생각해 왔다. <통찰의 시대> 에릭 캔델

- 감정은 종의 생존에 유익한 짝선택 기능과 사회적·적응적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다윈

감정이 없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는가?

I. 감정이 없으면 판단력 장애가 생긴다

인간은 감정이 있다. 희로애락애오욕구(喜怒哀樂愛惡慾懼)의 8정(八情)이 그것이다. 감정은 (깨달음과 지혜를 획득하는 데) 부정적인 것이고 반드시 없애야 하는 대상인가? 도통(道通)하면 이런 감정은 다 없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감정은 궁극적으로 사회생활에 부적절한 것인가?

사고로 뇌의 특정부위에 부상을 입으면 감정이 없어진다. 문자 그대로 감정이 사라진다. 감정중추에 이상이 와서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대뇌변연계가 감정을 담당한다). 감정이 없으면, 쓸데없는 감정이나 기분에 휩쓸리지 않아서, 결정을 더 잘 내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임상관찰결과에 의하면, 뇌부상으로 감정이 사라진 사람은 일상적인 판단·결정을 하는 데조차 심하게 어려움을 겪는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냉철한 지도자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부하들에 대한 애정·신뢰와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다. 명태조 주원장은 개국공신들을 거의 다 주살(誅殺)했지만, 명장 서달은 천수를 누렸다.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일관하며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하여 그들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충성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조세핀에게 급히 달려가겠노라고 매번 열정적인 편지를 보냈다.

장고(長考)로 유명한 바둑기사 이창호가 속기에 약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속기전(速棋戰)에서도 많이 우승했다. 프로 바둑기사들이 시간을 쓰는 것은, 대체로, 다음수를 발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직감적으로 떠오른 수가 최선의 수라는 것을 확인하는 논리적인 과정이다(물론, 직감도 당연히 질의 차이가 있으며, 각자의 능력 즉 기재(棋才)에 따라 처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수의 품질이 결정된다). 직감적으로 떠오른 수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라 할지라도, 그 몇 개만 검토하면 되므로, 아무 수도 안 떠오르는 것보다는 무한히 유리하고 효율적이다.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수가 없으면, 무지막지하게 많은,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느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즉 제한시간 내에 다음 수를 두지 못한다. 감정은 지극히 평등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그러면 인간은 그 질서를 따라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II. 감정이 없으면 인식기능 장애가 생긴다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은 사람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양 등 동물의 얼굴은 구별하지만, 유독 사람의 얼굴만 구별하지 못하는 신기한 증상이다. 사물의 모양과 감촉을 처리하는, 측두엽과 후두엽 사이에 있는, 방추회가 뇌졸증 등으로 손상되어 일어난다. 유명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한때 이 증상에 걸린 적이 있다.

비슷한 증상으로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란 망상이 있다. 시신경은 말짱하지만, 시신경과 변연계 사이의 신경회로가 끊어진 사람이 겪는 증상이다. 이런 사람은 아는 사람을 만나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보고 "누구신지 몰라도 우리 엄니하고 디게 닮았네. 당신, 우리 엄니 행세를 하는 사기꾼 맞지?"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보는 사람의 모습이 형상으로서는 어머니 모습이라고는 알아차리지만, 친밀감 사랑 등, 어머니에 대한 특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로의 신경회로가 차단되어 시각정보를 변연계로 전달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그 결과, 자기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고 어머니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없으면 이런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

III. 참나론자들과 범아일여 힌두교도들은 코타르 증후군 환자

증세가 심한 경우,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코타르 증후군(Cotard's syndrome) 또는 ‘걷는 시체 증후군(walking corpse syndrome)‘이다. 희귀한 경우에는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믿는다. 자아존재에 대한 인식기능의 결핍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어디서도 자신을 볼(찾을) 수 없으니,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참나론자들 역시 코타르 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 자아, 즉 나의, 공(空)함을 보고는 지금의 (번뇌로 더럽고 고통스러운) 자기는 존재하지 않고 따로 (번뇌가 없어 깨끗하며 즐거운) 불멸의 자아(참나)가 존재하고, 사실은 자기가 바로 그 '상락아정의 참나'로서 불멸의 존재라 믿는다. 이 증세가 전문 수행자들처럼 장기간의 강렬한 참선의 결과 뇌에서 일어난 커넥톰(connectome)의 구조변화로 일어난 경우는 (자기가) 진짜 그렇게 불멸의 존재라 느끼므로 코타르 증후군이지만, 장기간 강렬한 참선의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뇌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생생한 의식경험이 없이, 그냥 "나는 불생불멸의 참나다" 하며 앵무새처럼 흉내나 낼 뿐이므로 코타르 증후군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타인성(他因性) 과대망상증이다. 그 증거로는 자기가 불멸의 존재라는 걸 보여주겠노라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불 속으로 뛰어들거나 목재소 대형 전기톱으로 돌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IV. 감정이 없으면 직관도 없다

감정이 없으면 감정이 제공하는 직관이 없다. 그래서 감정이 없는 경우, 시간 내에 즉 위험이 닥치기 전에 결정을 내리려면, 이성을 맡은 뇌용량이 엄청나게 커야한다. 이성은 직관이 아니므로 가능한 경우를 모두 검토하여야 한다. 실제로 체스(서양장기)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1997년 5월 IBM이 만든 체스컴퓨터 딥블루(Deep Blue)는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격파했다.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이었다. 어마어마한 용량을 지닌 슈퍼컴퓨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인간을 이긴 것이다. 딥블루는 가능한 천문학적인 모든 경우를 검토하고도 제한시간 내에 인간을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 경기결과(3.5점 대 2.5점)는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었으므로 인간의 체스능력은 슈퍼컴퓨터나 동일하다는 말이다. 즉, 역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직관을 가졌으므로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컴퓨터공학이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하면 컴퓨터의 능력은 인간의 뇌를 넘어서게 될 것이며, 그때는 컴퓨터칩을 뇌에 내장함으로써 기억·추리·계산 등의 뇌의 기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그 후, 20년 만에 작은 방만 했던 딥블루는 사람손톱 크기로 줄어드는 기술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면 신인류의 출현이다. 뇌에 칩을 삽입하여 뇌의 활동을 돕는 것은 이미 동물실험이 성공했다. 지난해 2014년에, 팔이 없는 사람에 인공기계팔을 연결하여 남아있는 팔부위에서 (뇌에서 보낸) 전기적인 신경신호를 포착하여 인공팔과 인공손가락을 움직여 컵을 쥐고 놓는 일이 성공했다;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YouTube 참조). 미래학자들은 40년 내로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컴퓨터가 출현할 것이며, 심지어 의식을 지닌 컴퓨터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인간의 낙(樂) 중 많은 부분이 감정의 만족으로부터 나옴을 볼 때, 과연 감정이 사라진 인간이 여전히 행복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인간의 불행의 주요 원인인 점을 보면, 구(舊)감정이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감정이 나타나도 꼭 해롭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탄생할 수 있다! 물고기,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이 그들과 전혀 다른 감정과 행복감을 갖는 것을 보면, 그리 상상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V. 감정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감정은 직관적·본능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옳건 그르건, 그 결정은 대체로 옳거나 도움이 될 것이다. ‘대체로‘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결정도 안 내리는 것보다는, 틀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대체로‘ 옳거나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존은 확률이기 때문이다). 공포(懼)는 그 상황이 생명에 직결되는 중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호랑이거나 늑대일 수 있다. 혹은 절벽이나 구덩이이거나), 로(怒)는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는 감정이다. 애(愛)는 좋은 열매나 좋은 짝짓기 상대를 본 것일 수 있으며, 오(惡)는 싫은 상대를 본 것, 즉 전염병자이거나, 거렁뱅이이거나, 우리와 같은 도덕을 공유하지 않아서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떠돌이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볼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그런 감정이 일어난다면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특정인을 볼 때 안 좋은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많은 경우 과거에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과 육체적·정신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기계적인 감정이며,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단, 면밀히 살펴서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살필 일이다. 감정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포(懼)와 증오는 적대적인 타부족이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낯선 사람을 상대할 때,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지금 브라질 열대우림에 사는 석기시대 원시인 야노마뫼족은 방심하는 사이에 적의 활이나 몽둥이에 맞아죽고 부인을 강탈당한다.) 위험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지 않거나, 해를 주는 존재를 증오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는 것보다 생존에 불리함은 명확하다. 증오는 해를 주는 존재는 피하게 하는 회피기능을 한다. 경보장치가 없으면 화재·홍수 같은 재난에 크게 피해를 당할 위험이 큰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감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죽어도 그만’이라는 수행자에게는 없어도 되지만, 만약 그 수행자의 후원자들과 추종자들조차 공포와 증오의 감정이 없어서 외부위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멸종한다면, 그 교단도 멸종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큰 이념을 지닌 (고등)종교일수록 큰 지지그룹을 즉 큰 국가나 사회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우주적으로 큰 이념을 지닌 종교는 문화나 국가가 클 때 나타난다. 즉 집단의 큰 규모로 인하여, 생존에 대한 위협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증오와 공포가 별로 필요 없는 거대(巨大)집단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국가는 서로 전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이와 같이 ‘희로애락애오욕구’ 즉 8정이라는 8가지 감정은, 현재의 상황을 8가지로 분류하여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46억년 진화과정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매번 의식적으로 정보처리를 할 필요 없이, 뇌가 즉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계산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8가지 감정이라는 서로 다른 색깔을 이용하는 이유는, 색깔이 같으면 정보의 구분이 어려우므로 색깔을 달리해서, 즉 대별해서 8가지 다른 방법으로, 반응과 대응을 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도 그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세속인간은 감정의 증폭(amplification)이 일어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것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았을 때, 알아차리기 힘든 미약한 통증만 일어난다면 크게 화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다른 인간들과 경쟁을 하면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면, 경보가 예민하게 그리고 확실히 울려야한다. 그러나, 가족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에게는, 그리고 죽음이 즉 생물학적인 멸종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실제로, 숲에서 살다가 맹수밥이 된 수행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맹수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는 수행자들의 증언도 남아있다).

육체적 통증을 못 느끼는 병을 무통증(無痛症, analgesia)이라 부른다. 말초신경, 척수, 뇌 등에 이상이 생겨 뇌로 지각·촉각·통각·온도각 등 감각정보가 전달되지 못하거나, 전달되어도 통증을 못 느끼는 증세이다. 통증이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위경련이나 맹장염이나 치통으로 지독한 고통을 받아 본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무통증 환자는 경하게는 모기 거머리에 물려도 통증이 없어 물린 줄 몰라 그냥 피를 다 빨리며, 심하게는 끓는 물을 끝까지 다 마시다 혀와 식도에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으며, 맹장염에 걸리고도 통증이 없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위궤양이 있어도 통증이 없어 모르고 지내다가 위벽의 천공(穿孔 구멍뚫기)으로 발전하여 죽을 수 있으며, 또 암이 생기더라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방치하다가 말기암으로 진행해 급사(急死)할 수 있다.

감정을 잃는 것은 정신적 무통증에 해당한다.

VI. 감정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감정이 없으면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 자폐환자와 같은 상태에 빠져, 타인과 소통을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서로 감정의 교환을 통해서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취감 자부심 등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일체감을 통해서 자아의 확장과 고양감(高揚感)을 경험하기도 한다: 월드컵 경기를 보며 집단적으로 응원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감정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먹이이기도 하다. 같이 웃고 울며, 또 같이 기뻐하고 성을 내며, 타인과의 감정을 교환함으로써 감정은 증폭이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슬픈 감정 역시 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고 읽으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음은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심지어 공포조차도 먹이이다. 여자들은 여고생 괴담 같은 영화를 보며 공포를 참다못해 작은 연약한 주먹을 꼭 쥐고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을 찾는다. 자두 콩국수 쇠고기 삼겹살 등 특정 음식이 몹시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공포도 몹시 댕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VII. 새로운 유전자의 등장: 깨달음 유전자 
     새로운 땅의 발견: 열반의 땅

(부처가 자신의 ‘사후(死後) 존재·비존재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을 버린 즉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종(種 생체유전자)의 존속욕구를 버린 존재들이 가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세상은 물질적·육체적 유전자에 의해서 유지되는 세상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유전자인 ‘깨달음유전자’, ‘해탈유전자’, 또는 ‘열반유전자’의 확산에 의해서 유지되는 비물질적 세계이다: 새로운, 문화유전자적인, 종種의 출현이다. 감정으로 이루어진 삶만이 유일한 삶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면, 즉 감정이 없는 삶도 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이런 세상이 불가능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우리 몸의 각 세포가 뇌의 의식을 알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듯이, 개개인간은 인간전체의 의식을 알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몸의 세포가 의식하는 것은 뇌로부터 오는 구체적인 전기신호일 뿐이지 고차원의 뇌의식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는 생각을 하는 법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만약 도구가 생각을 하면 위험하다. 저능아 식칼이 생각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니면,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병사의 총이 스스로 생각을 해 결정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상상을 해보라; “주인님, 저 사람이 들고 있는 총은 제 동족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 형제입니다. 저는 절대로 저쪽을 향해 총알을 발사할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세속인이 감정을 약하게 하고도 살아남으려면 조그만 감정도 무시하지 않고 탐지해서, 이성의 힘으로 사태를 밝히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의 동력은 감정이므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살기 위해 상황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도를 닦아서 감정이 (거의 또는 아예) 없어진다면,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거나 못할 것이다(동북아시아와 인도에 떠도는 ‘도통하면 어린이와 같아진다’는 말은 바로 이 현상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후득지(後得智)라는 형이상학적 용어가 생겨난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힌두교 최고 수행자 라마 크리쉬나는 도통 후 한동안 어린아이처럼 살았다). 이런 사람이 생존하려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탁발을 해서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탁발을 해서 살지 않는 수행자들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속세에 머물며 돈을 벌면, 욕망에 휩쓸릴 상황과 여건에 심신을 내맡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경계적(逆境界的) 사례는 역사상 무수하며, 지금도 우리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통상 사람들은 감정이 일어나면, 이성으로 그 감정을 검토하지 않고, 그냥 감정을 따라 같이 달려간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감정이 없는 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감정이 약한 사람은 감정이 제공하는 추동력(推動力)이 없으므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성의 능력과 힘이 엄청나게 커야한다. 즉 두뇌용량이 엄청나게 커야한다.

VIII. 이성은 감성의 노예: 좌뇌는 우뇌의 노예

철학자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했다.

욕망이 먼저 일어나고, 뒤이어 이성은 욕망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고안해낸다. 욕망은 생각하지 않는다. 즉각적이다. 생각은 이성이 하는 법이다. 일은 사장이 벌이고, 수습은 사원들이 하는 법이다. 일을 벌이는 것은 즉각적이고, 수습은 시간이 걸린다. 욕망이 생존이라면, 이성은 생존을 돕는다. 생존방안을 고안해 낸다. 본시 욕망이란 식욕과 성욕이 근본이다. 식욕과 성욕은 각각, 당대(當代)의 생존과 후대(後代)의 존속(存續)을 목표로 한다. 즉 현재와 미래의 보존이 목표이다: 프로이트의 용어로는 에로스(eros)이다. (식욕과 성욕의 목표는, 개체 정체성의 보존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보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거는 경험·정보의 창고인데 이를 바탕으로 개체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면에서 과거는 개인의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식욕과 성욕의 목표는 삼세의 보존이다!) 이것은 생명체의 가장 중대한 목표이다.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유전자의 ‘보존과 전달’이라는 목표이다. 그러므로 ‘욕망’이란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다. 이것은 7정(七情) 중에 가장 뒤에 배열된다. 희로애락애오욕 중 ‘욕(慾)’이다. 따라서 ‘욕망’은 생존과 번식이고 삶의 근원이다. 이성(理性)은 이 삶의 근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기능이다. 따라서 이성이 욕망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IX. 감성의 초월: 성인(聖人)

하수인 ‘이성’이 주인 ‘감성’을 넘어가려고 할 때, 사람의 마음 안에서는 생사를 건 극심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지며, 이 투쟁은 지독한 고행과 처절한 수행이라는 외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침내 욕망이 힘을 잃으면 내적·외적으로 지극히 평화로운 인격이 출현한다. 물질적인 존속(생체유전자 전달)을 유지할 동인(動因)이 사라진 사람은(무여열반이 상징하는 바이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욕망(재욕 성욕 식욕 명예욕)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과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엄청난 규모로 문화유전자적인 후손을 배출한다. 예를 들어 예수와 마호메트의 문화유전자적 생존후손은 지금도 각각 수십억 명을 자랑한다. 이들에 비하면, 자식을 근 1,000명이나 생산하여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체유전자를 남긴 모로코의 이스마엘 황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세상은 그를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성인은 세상과 같은 밥그릇(욕망)을 두고 다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성인을 존경한다.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아 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특히 반대편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시라도 (같은 편이라도 갑자기 돌변해서)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은 자기들의 적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찬성하지만, 자기들과 같아지는 것은 반대한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들이 성인들 앞에서 평화로워지고 유순해지는 것은, 다른 개들에게는 지극히 적대적인 사나운 강아지가 주인 앞에서는 유순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성인은 자기들에게 주기만 하지, 빼앗아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인 앞에서, 평소에 욕망으로 인한 투쟁으로 점철된 마음이 갑자기 평화를 누린다. 그래서 성인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X. 범성중 삼제(凡聖中 三諦)

범인(凡人 성인이 아닌 세상사람)들이 가(假)라면, 성인은 공(空)이고, 이렇게 돌고 돌아가는 살림살이는 중(中)이다.

XI. 감정이 없으면 불행해진다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게 감정의 부재는, (직관력, 통찰력, 판단력, 인식력 등의) 정신적 기능 결핍과, (타인의 감정 이해력 등) 사회적 소통기능 결여와, 생존욕구·자손생산욕구 약화와, (사랑, 우정, 모험, 스릴, 희망, 설렘, 소속감, 일체감 등에 대한) 정신적 허기증을 가져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들어, 낮고 좁고 얕고 엷고 얇고 메마른 삶을 살게 되어 불행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런 상태로 살 수 있는 곳은 태어나기 전의 어머니 자궁이 유일한 곳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궁귀소본능(子宮歸巢本能) 소유자가 아닌지 의심해 볼 만하다.

XII. 감정은 축복이다

우리가 감정을 지닌 것은 축복이다. 감정은 세상을 높고(숭고함을 느끼고), 넓고(박애를 느끼고), 깊고(행복과 고요함과 평화로움과 신비로움을 느끼고), 진하고(타인과 동물의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두텁고(지혜와 직관과 통찰력과 판단력을 느끼고), 풍요롭게(자연과 생물과 예술을 감상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문제는 감정을 어떻게 잘 사용하고 누리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감정을 없애려는 시도로는 결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는 생각을 없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를 얻으려는 시도와 다를 바가 없는 헛수고이다.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비와 지혜는 감정과 사유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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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2015-07-06 11:39:30
진제가 원효를 남달리 흠모한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워낙에 한국 중들이 원효를 좋아하기도 하고.

"작금의 조계종 선사 대표인 진제 종정과 그 수하의 작태들을 보면 말이오."

- 아, 그래? 그럼 나는 진제를 버리고 숭산이나 성철, 청화, 송담으로 갈아타야겠다. 어차피 다 여래장 선사들 맞지?

뭐여? 2015-07-06 09:37:48
원효대사가 문제가 많은 분이라는 대승적 자학을 하는 건가?

해골 물 드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려야 했을 터인데……ㅉㅉㅉ
~ 작금의 조계종 선사 대표인 진제 종정과 그 수하의 작태들을 보면 말이오.
~ 근데 누가 수하인지 헷갈려………
~ 어쨌든 요새 중 모집 중인가 보네. 근데 왜 노병들이여? 신병이 그리도 없나?

상식/ 2015-07-04 18:27:31
원효와 동향이지. 아무래도 진제가 원효 따라하는 것 같아.

근데/ 2015-07-04 17:21:32
당신이 중시하는 근본은 그것들 아냐?
너무 속옷 자주 보이지마.

상식/ 2015-07-04 16:40:31
내 글의 기조가 변한 것 아냐. 당신의 이해력 향상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거지.

- 과연 그럴까? ㅎㅎ 계속해 보자고.

--- 잘 생각해 봐, 내가 변한 적이 있던가? 불퇴전의 중생이네, 이래 봬도.

- 항상 변하지. 그러면서 인정을 하지 않는 양심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 사성제-윤회-열반-계정혜-팔정도 ~ 이 이상 다른 단어는 더 필요치 않아.

- 그런 걸로 변했다는 게 아냐.

---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들어 본 적 있지? 개념에 개념을 더 하면 망상만 늘 뿐.

- 자네에게 필요한 말이군?

서양철학은 잘 모르죠? 옛날 옛적에 버클리라는 성공회 신부가 있었다오.
물론 동서양의 다른 철학자들도 많지. (불교철학 포함) 모두 징검다리라네. 불교를 향한……
어떤 징검다리는 불교로, 또 어떤 징검다리는 비-불교로…… 그래서, 늘 조심은 해야 한다오.

- 버클리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야지.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가
전법한 불교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요?
--- 색수상행식-오온 ~ 열반 찍고 ~ 윤회-열반-상공화? 레알?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반야심경은 내 속옷 색깔이고,
중음신은 내 *티 색이니, 그런 건 자꾸 묻지 마세요, 남사스럽게~시리.
--- 내 옷들도 당신이 걸친 옷만큼 누덕누덕하다오. 조금 칼라풀 해서 그렇지.

- 왠 곁가지가 이렇게 많아? 그래서 반야심경이 자네에게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냐니까?

버클리가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면 불교의 철학자가 될 수 있다오. “Esse est percipi”
근데^^ 버클리가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지 못하면 계속 기독교 성공회 신부로만 간다오.

- 그래서? 니까야도 자네처럼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지 못하면 외도경전이 되는 건가?

도대체 보살이 왜 필요해요?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볼까? 필요 없으면 버려. 남의 전통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말고.

그래도 혹시라도 보살이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면 보살도 불교의 방편이 될 수 있다오.
근데^^ 보살이 불교의 조건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저 꿈의 근데^^-보살로만 남을 거요.

- 보살이 자네보다도 못할까 봐? 자만심이 강한 친구군.

아! 나는 당신 아래야, 중생!
소승도 감지덕지고, 근본주의자는 그저 칭찬으로 고마워한다오. _()_

- 나도 근본을 중시해. 그러나 근본주의자는 전혀 다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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