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온 세상을 다 가지고 싶어 한다.
그런데 기묘한 상상을 해보자.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 세상이 죄다 그 사람 소유이다. 그렇지 않은가?
북극도, 남극도, 금도, 은도, 물고기도, 짐승도 다 자기 것이다.
하지만 ‘자기 것’인 물고기를 먹으려면 그물을 치고 낚싯줄을 드리워야 하며,
자기 것인 노루를 먹으려면 숨을 헐떡이며 좇아가 창을 던지고,
밤새워 올무를 만들어 산길 들길 길목에 놓고, 땀 흘려 함정을 파야 한다.
기묘하게도,
방심하다가는 자기 것인 곰이나 사자, 호랑이, 악어, 상어 밥이 될 수도 있다.
자기 것인 들에서 자기 것인 번개에 맞아 죽을 수 있으며,
자기 것인 계곡에서 자기 것인 물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다.
자기 것인 강이나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자기’가 ‘자기 것’에 살해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이하고 기이한 일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 것’인, 너무나 소중한 ‘자기 것’인 ‘욕망’에
빠져 죽고, 휩쓸려 죽고, 맞아 죽고, 잡아먹힌다.
세상 재물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어도, 돈을 현금으로 일 톤이나 가지고 있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젊음, 건강, 암, 탈모, 수명, 사랑, 애증, 갈애, 번뇌는 자기 맘대로 안 된다.
(근래 지병으로 입원중인 중국 군사 부주석 집에서 그 많은 돈이 발견되었다.)
세상을 다 소유하더라도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
재물을 한없이 소유하더라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자기가 재물을 자기 뜻대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물이 자기를 소유하고 난폭하게 힘을 휘두를 수가 있다.
재물이 다른 재물들과 얽혀 인연을 만들며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면,
나는 아예 처음부터 뒷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아니다.
세상을 다 소유해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면 사실은 자기 게 아니다.
단지 ‘자기 거’라는 환상과 망상에 빠져 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남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부리기 위해서
딱딱한 부위와 물건으로 치고, 날카롭고 뾰쪽한 금속으로 찌르며 싸움과 전쟁을 벌인다.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시작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예 처음부터 “나와 남이 없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대전환을 하는 것이다.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이 한 마디로 표현된다.
무아(無我)와 유아(有我)!
다른 종교와 철학은 나와 남의 갈등을 말한다. 남이란 신, 자연, 타인 등이다.
불교는 말한다. 나와 남을 가르는 ‘나’와 ‘남’이라는 개념자체가 문제이다.
상변(常變)하는 이 우주에 불변(不變)하는 ‘나’나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변의 ‘욕망’도, 상주(常住)하는 ‘욕망의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탐욕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애증(愛憎)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모두, 내가 없으면, 의미없는 환상이자 신기루이자 꿈이다. 그리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연에 의해 잠시 모인 심신복합체(心身複合體)이며, 그 구성원인 몸과 마음은 더 작은 구성원들로 분해되며, 이들은 시공에 따라 명멸하며 흐르는 무수한 인연에 반응하며 끝없이 변한다. ‘연기즉시색 색즉시연기’(緣起卽是色 色卽是緣起), ‘연기즉시심 심즉시연기’(緣起卽是心 心卽是緣起)이다. 그러므로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 궁극적으로는 성인(聖人)의 말에도 얽매이지 말라. 부처도 중생도 (상주불변하는 실체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말씀하신다.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너희들, 비구들은 알라, 내 설법은 뗏목과 같다. 오히려 법도 버려야하거늘, 하물며 비법이랴!”
진실로, 자기가 자기를 자기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자기가 아니다. 자기가 없으면, 쌍대성에 의해서, 남도 없다.
불법은 ‘나’도 ‘남’도, ‘중생’도 ‘부처’도 없는 대자유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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