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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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각 스님
  • 승인 2015.03.24 16: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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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91.

초승달이 서산마루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아니 서산 보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 숨 고르기를 한다 해야 그럴듯한 표현이 될 듯하다. 저 달은 지나온 세월을 회상해 보는 시간일까 아니면 이별의 아쉬움을 음미하고 있는 것일까. 달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한순간 순간 위치가 달라지고 변화하는 모습에서 무상을 잉태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 잔칫상의 고명처럼 별빛이 영롱하게 드러난다.

옛 사람들은 미인의 눈썹을 아미(蛾眉)라 표현했다. 누에나방의 촉수(觸鬚)처럼 털이 짧고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을 일컫는 말이다.

도심에서의 달은 전선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때의 달은 마치 오선지상에서 볼 수 있는 악보가 된다. 그러나 그 달을 무심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행인과 부딪칠까 두렵고 보행길이라 해도 자동차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의 밤은 낮보다 조심과 주의를 필요로 한다. 전신주나 가로수가 그렇고 입간판도 잘 피해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낮에는 발길을 잡는 반려(伴侶)가 생겼다. 회양목(淮陽木)이다. 이 나무는 태생적으로 절제가 몸에 밴 듯하다. 위로 솟기보다 낮게 자리 잡고 자란다. 게다가 사람들의 손길이 닿게 되면 그 절제는 극에 달한다. 왜소함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역부족이다. 그래서 일까. 꽃말도 극기라고. 꽃이 피어 자태를 드러내려 해도 확 눈에 띌만한 특징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해도 숨 가쁘게 흥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것일까.

저 한적한 꽃에 발길을 멈춘다. 벌들이 날아들어 꽃에서 먹이를 따느라 수선을 떨고 있다. 숨죽이고 앉아 이들을 관찰하고자 하면 이내 달아나 버리고 마는 민첩함에 허전한 여운만 남긴다. 한적함이 더한다. 그러나 벌이 날아 간 뒤에 꽃을 보기가 쉬워진다. 굵은 땀띠가 성이나 올라오듯 여러 개의 꽃이 원형을 이루어 피어있다. 서너 개의 암술머리가 가운데 있고 수꽃은 암꽃 주변에 너덧 개가 둘러 피었다. 소래기처럼 엎드려 지심을 받고 있는 윤기 나는 회양목이다. 꽃구경에 홀린 것도 잠시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회양목의 별명은 도장나무이다. 석회암 지대가 발달된 북한 강원도 회양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회양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월등했던 친구는 회양목으로 막도장을 파주고 짭짤한 수입을 올린 일도 있다. 특히 입학원서를 쓰는 시기에는 그 절정에 이른다. 지원자 이름에 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나무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방에서는 잔가지와 잎은 진해ㆍ진통ㆍ거풍 등에 약재로 쓰고 있다. 나무의 질이 단단하여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조선시대에는 목판활자를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패와 표찰을 만드는데도 쓰였다. 그리고 얼레빗이나 장기 알 등을 만드는데도 이용되었다.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았다. 회양목으로 만든 단도였다. 단도는 과분한 표현이고 초미니 단도라고 해야 모양에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우편물을 개봉할 때 쓰라고 하여 잘 쓰고 있다. 기증자의 이름과 받은 날짜도 적어 놓았으니 고마움의 작은 배려로 여기고 싶어서이다.

여불위(呂不韋, 292~235 B.C.)는 생활에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집안에 손님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그 식객들 가운데 별의별 기인과 명사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객들 가운데 3,000명의 머리를 빌려 책을 편찬하였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여불위는 이 책을 내고 얼마나 흡족하였던지 저잣거리에 전시해 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 완벽한 내용을 과시한 것이다. 그의 호언장담 때문에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기게 되었다. 여불위가 이 시대에 등장했더라면 표절 운운 정도야 단숨에 잠재웠을 것이 아닌가.

≪여씨춘추≫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다.

단사(丹砂)는 갈 수 있다고 해도 그 빛을 빼앗을 수 없고
돌은 깨뜨릴 수 있어도 그 굳음은 빼앗을 수 없다.

     丹可磨    而不可奪其赤
     石可破    而不可奪其堅

학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강한 메시지이다. 어찌 학자에게만 국한된 말일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소중한 말이다. 이렇게 귀한 말도 만무방에게는 단순히 스쳐가는 바람일 수 있다. 주변에서 곧잘 정체성 운운하는데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점검해 볼 만한 일이다. 일상의 잡다한 일에는 바짝 신경을 쓰면서 정작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행위가 어떠한지는 관심 없이 헐렁하게 넘어가는 습성이 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상대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묵묵부답이다. 답답하여 재차 삼차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떳떳한 자리가 아니라면 와 있을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필연코 꼭 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면 쭈뼛쭈뼛하며 신분을 못 밝힐 이유가 없다. 사람은 어디서나 당당해야 한다. 배움이 많다거나 지위 고하와는 무관한 인간의 정언적명령(定言的命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미워지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주변의 누가 아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 그 시간에 당당하지 못했던 사실이 후일에 자신을 원망하고 괴롭히는 아쉬운 여운으로 남는다면 아물지 않은 상처로 한동안 갈 것이다.

나를 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하다. 그러나 베일의 뒤에 자신을 숨기는 사람은 단명하고 탁류에 쓸려가고 말 것이다. “충성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는 왕촉(王燭)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제나라가 이웃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패전하자 연나라로 귀순하면 부귀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권유를 뿌리쳤다. 그리고 위의 말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제나라 유민들은 왕촉의 행동에 자극을 받아 심기일전하여 태자 전법장(田法章)을 옹립, 나라를 재건하였으므로 후일 그는 충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어찌 멀리 중국에서만 찾아야 할까. 이성계에게 등을 돌린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도 있다. 단심가로 이름을 높인 정몽주도 있고, 조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게 반기를 든 사육신도 이 땅을 지킨 선현이고 학자의 양심을 간직한 충신들이다.

시류에 편승하기를 여반장 하듯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당히 굴절되어 보일 수 있다. 후대의 눈살을 찌뿌러지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일그러진 영혼에 괴로워 뒤척이는 일이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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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스님 2015-03-28 12:57:29
송담선사께서 탈종하신 후에는 스님이 없는 줄 알았더니 한분 계셨네요.
고맙습니다.

불자 2015-03-26 22:42:53
ㅇ.만무방[만ː무방][명사]
<문학> 김유정이 지은 단편 소설.
응칠, 응오 두 형제가 부랑(浮浪)하는 삶을 중심으로
식민지 농촌 사회에 가해지는 가혹한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1935년 7월 17일부터 7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그 뒤 1938년에 간행된 단편집 『동백꽃』에 재수록되었다.
표제의 ‘만무방’이라는 말은 염치가 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김유정 문학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일제 식민지하 농촌의 착취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한 작품이다.


1.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
2.아무렇게나 생긴 사람.

감동 2015-03-24 17:04:17
스님의 글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스님이 쓰신 "며칠 전에 우연히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상대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묵묵부답이다. 답답하여 재차 삼차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떳떳한 자리가 아니라면 와 있을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필연코 꼭 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면 쭈뼛쭈뼛하며 신분을 못 밝힐 이유가 없다. 사람은 어디서나 당당해야 한다. 배움이 많다거나 지위 고하와는 무관한 인간의 정언적명령(定言的命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미워지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주변의 누가 아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 그 시간에 당당하지 못했던 사실이 후일에 자신을 원망하고 괴롭히는 아쉬운 여운으로 남는다면 아물지 않은 상처로 한동안 갈 것이다."는 몇일전 동국대학교 이사장실에 후안무치로 앉아 있던 몇몇 동국대 교수들의 행태를 묘사하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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