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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가 ‘친일’? 대다수 교회 ‘신사참배’ 잊었나
국민일보, ‘봉은사역’ 딴지 위한 억지…천년고찰에 ‘친일’ 딱지라니
2015년 03월 05일 (목) 18:23:11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명칭이 ‘봉은사역’인 것을 못마땅해 하는 개신교계가 봉은사의 친일행적을 들고 나왔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해서 우리 민족혼 말살에 부역했던 대다수 한국 개신교회의 과거를 망각한 억지이다.

개신교계지 국민일보는 지난 3일자 29면에 ‘봉은사, 대표적 친일사찰이었다’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국민일보는 김인환 서울시 강남교구협의회장의 말을 빌어 “박원순 시장은 과거 대표적인 친일 종교시설이었던 사찰의 미래위원장을 맡았다. 그곳 이름을 강남과 서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명으로 확정·고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교 이전에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서울시장 퇴진운동을 벌이기 전에 역명부터 당장 바꾸라”는 말로 기사를 끝맺었다.

   
▲ 국민일보는 봉은사가 친일사찰이라는 증거로 일제강점기 당시인 1945년 6월 23일자 매일신보 보도를 제시했다. (사진=국민일보 캡춰)

1200년 전통사찰을 친일공간으로 매도

국민일보는 기사에서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명칭으로 결정된 봉은사가 과거 ‘일본군 전몰장병 충령탑’을 설치하고 중일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법회를 여는 등 일제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대표적 친일공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당시 불교는 자연스럽게 식민권력의 통제 아래 놓였다. 봉은사는 서울과 경기 광주·시흥·고양·여주·이천의 82개 사찰을 말사로 관리해 31개 본산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찰이었다. 1912~1945년 봉은사 주지를 지낸 승려는 나청호 김상숙 강성인 홍태욱으로 이들 4명의 이름은 불교계에서 출간한 ‘친일승려 108인’(임혜봉)에 나올 정도로 대표적 친일인사였다”고 했다.

“친일 행적에 봉은사 신도 3만명 동참했다”

국민일보는 “일제가 무력통치를 강화한 30년대부터 봉은사에서 친일행사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34∼40년 봉은사 주지였던 강성인 승려는 조선총독부 총독이 주장한 심전개발운동에 조선불교도들이 적극 협력하도록 35년 7월 심전개발사업촉진발기대회를 개최했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40∼45년 봉은사 주지였던 홍태욱 승려는 일제 강점기에 주지를 맡았던 4명의 승려 중 친일에 가장 앞장섰다. 41년 봉은사 신도 3만명과 ‘일본군 전몰장병 충혼위령제 및 수륙제’를 거행했고, ‘중일전쟁 4주년 기념법회’ 등도 개최했다”고 했다.

이어 “본·말사를 동원해 일장기 부채 2000개를 위문품으로 보내는 운동을 했고, 일제 침략전쟁용 무기를 만들기 위해 철제류 수집·헌납도 결의했다. 43년 ‘일본군 전몰장병 충령탑’ 공사에 들어가 광복 2개월 전인 6월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곳에선 전몰장병의 명복을 비는 천도제가 열렸다”고 했다.

‘봉은사역’명 지정은 적법…심의만 3차례

‘봉은사역’명 지정 서울시지명위원회가 3차례 심의를 거쳐 결정했다. 이 위원회에는 서울시 행정제1부시장 등 서울시 인사 2명, 역사학자 향토학자 국문학자 교통학자 등 외부전문가 8명이 참여했다.

역명의 적법에 앞서 봉은사는 794년 신라시대 연회국사가 창건한 1200년 고찰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을 비롯해 대경장판 3479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한 전통사찰이다.

강남개발 전부터 봉은사는 지역 중심도량이었다. 코엑스를 비롯해 인근 한전 부지 등은 모두 한국불교의 자산이었다. 정부는 이 땅을 강남개발을 한다며 헐값에 수용했다.

딴지 위한 억지, 한국 교회사부터 돌아보라

‘봉은사역’ 이름에 거는 개신교계의 억지는 그들이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쓴웃음마저 짓게 한다.

일제강점기 개신교계는 주기철(1897~1944) 등 일부 목회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종했다. 신사참배에 저항해 못판 위를 걷고 옥사한 주 목사 등 일부를 빼고 일제의 민족혼 말살 부역에 동참한 개신교회와 관련 목회자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 개신교 최대교파인 장로교 홍택기 총회장의 문서가 그 본보기이다.

홍 총회장은 "我등은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하고 추히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해 비상시국하에서 총후 황국신민으로서 赤誠을 다하기로 기함"이라고 1938년 9월 10일 썼다.

봉은사가 친일사찰이라면 장로교는 친일교단이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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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5-03-05 18:23:11]  
[최종수정시간 : 2015-03-05 19:34:34]  

   
기사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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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악인 2015-03-08 18:42:15

    지리산 "반야봉"도 불교식 산이름이니 바꾸라 난리쳐 보시게나

    평창 오대산 "비로봉"도,
    원주 치악산 "비로봉"도,
    대구 팔공산 "비로봉"도,

    대구 팔공산 "염불봉"도,
    설악산 공룡능선의 "세존봉"도,
    설악산 공룡능선의 "나한봉"도,

    경남 양산의 "원효산"도,
    경북 포항의 "문수산" 도,
    전북 익산의 "미륵산"도,

    충북 영동의 "천태산"도,
    경북 영천의 "보현산"도,
    경남 가야산의 "칠불봉"도...

    어휴~!!!
    한국의 불교식 산 이름 다 적으려니 몇날 며칠 밤을 지도책을 들고서
    꼬박 새워야 할만큼 지천으로 널렸네~!!!

    산 이름을 안 바꿔주면 전국의 포클레인을 세를 내서 산을 파헤쳐서
    바닷속으로 던져버리고 싶겠지~???
    푸하하하하~!신고 | 삭제

    • 주지 2015-03-07 23:17:02

      주지가 덕이없으니 사회적으로 이렇게 시끄럽군요 봉은사자리비우고 어디다니는지 보살들도 이렇게 서면운동하는데 주지는입도 벙긋않네요신고 | 삭제

      • 대한국인 2015-03-07 20:13:02

        아래 내 댓글 왜 삭제했소? 떳떳하지 못한게 있소?
        개독이 뭐요? 불교도들의 입이 이렇게 거칠으니 수행한 것이 아깝소신고 | 삭제

        • 민족정기 2015-03-07 10:46:13

          [기독교 목사들 친일찬양 간증집]
          [펌글] 하이텔 /네티즌광장 /큰마을 /47203번 글
          제목 : [경악] 목사님들의 나라사랑 간증집. [47203]
          저자 : 김성국 (seega78 ) 2001-01-28 18:31 조회 : 42 추천 : 1


          ★ [1] 신사참배 결의

          ▲ 1936년 1월 29일 감리교 총리사 양X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 참배 순응의 뜻을, 6월에는 신사참배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 결의

          ▲ 1938년 9월 장로교 제27차 총회(총회장:홍X기 목사)에서 평양노회장 박X월 목사가 제안하고 평서노회장 박X현 목사의 동의, 안주노회장 길X섭 목사의 재청으로 신사참배 가결.

          총회 서기 곽X근 목사는 다음과 같은 신사참배 결의 성명을 발 표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후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함』


          ★ [2] 기독교 지도자들의 친일행각

          ▲ 유X기, 윤X호, 박희도, 차X명 목사 등이 1937년 각도 순회시국강 연에 나서서, 황국신민으로 부일협력 할 것을 주장.

          ▲ 박희도 목사는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 한 명으로, 친일잡지 <동양지광
          (東洋之光)>을 발간했다. 이에 부일협력을 촉구하는 논설 등을 실었다.

          ▲ 신X우 목사는 당시 YMCA 총무로 재직 중이었다.
          신목사는「천황 폐하의 충성스런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이것이 조선기독교도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 김X란(XX여대 초대총장), 모X숙(시인), 유X경(YMCA 초대 회장), 장X심(기독교여자 절제회 총무), 고X경, 서X숙(배화여고 교장) 등 여성지도자 들은 신사참배 내선 일체를 강조하는 강연회 강사로 나섰고 정신대 참여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 [3] 성결교회 교단 해체 선언

          ▲ 1943년 12월29일 성결교회는 『중생 신유 성결 재림의 4중 복음교리가 국민사상을 혼미에 빠뜨리며, 이와 같은 불온 포교를 해온 책임을 통감한다.
          이를 맹서하여 결정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실추치 않을 것을 기한다』며 교단의 해체를 선언했다.신고 | 삭제

          • 민족정기 2015-03-07 10:41:08

            8) 역사 왜곡으로 고항인 청주 [3. 1 공원] 에 세워졌던 민족반역자 정춘수의 동상은 역사왜곡을 뒤늦게 알게 된 시민단체들에 의하여 1993년 2월에쓰러트려 지고야 말았다. (더러운 X끼)


            ★ [3] 정인과 장로교 목사 - 상해 임시정부 외무차장이었다가 귀국후 변절한자

            1) 장로교 총간사로 취임하여 "교도로 하야금 그 직에서 멸사봉공의 성을 봉하야 충량한 제국신민(왜놈)으로서 협심육력 동아질서의건설에 용왕매진" 하자고 선동하면서,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제창" 선도

            2) 교회의 헌법, 교리, 교법, 의식 등을 순정 일본적 기독교로 할것과, 전 기독교 서적, 출판물을 검토하여 이론 국체에 배치되는 자구 개정을 지시

            3) 1941. 9. 4. 매일신보에 발표한 글
            - 앞으로 일보일보 내선일체의 철저화에 최후적단계에 이르도록 계속 노력하려 하는 바인즉, - - - 어쩌구 저쩌구 (참 내 드러워서 !)

            4) 1942. 4. 29. 발표한 글 중의 일부 -
            - 내선일체의 완성과 국어(일본어) 생활의 철저 -

            5) 해방 후 친일행각 죄상으로 반민특위에 체포 되었다가 독재자 이승만에 의한 반민특위 폭력 해산으로 구명도생 (X팔새끼 !)


            ★ [4] 전필순 혁신교단 목사 - 항일단체 [대동단] 단원이었다가 변절한자

            1) 중일전쟁시 전국 각지 교회 순회강연시 "정의의 중일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조선인은 전쟁에 헙럭하라 !" 고 선동

            2) 기독교를 총 망라한 혁신교단을 조직하여 그 괴수가 되어 친일 부역

            3) 교회 건물 내에 일본 [가미다나]를 설치할 것과 [황도연구회] 설립선동

            4)해방 후 친일행각 죄상으로 반민특위 - - - 위 [3]항과 같음.

            ★ [5] 김길창 목사 - 조선기독교연합회 회장으로 친일부역한 거물 기독교지도자

            1) 기독교인 황민화운동을 이끈 수뇌 인물
            2) 황민화운동, 신사참배운동, 민족정신 말살운동 등에 광분
            3)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목사와 교인을 왜놈경찰에 밀고 탄압케 함.

            4) [3. 1 운동]을 "쓸데 없이 딴 장난 하다가 실패하였다" 라고 비난.
            5)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됨 - - - (이하 생략)신고 | 삭제

            • 민족정기 2015-03-07 10:37:31

              기독교가 현재에만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는 야훼 유일신 교리에 정면 배치되는 왜놈 마귀에게 무릎꿇어 참배하고 교회에 돌아와서 다시 야훼께 기도하고 … 양다리 걸치기 2중간첩 노릇도 서슴치 않았다. 기독교 친일행각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자료를 써본다.

              ◎ [일제시대 기독교 마귀참배 일지]

              - ○ 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파 99인]에서 인용 -

              ★ [1] 박희도 감리교 목사 - 3. 1 독립선언 민족대표33인중 1인이었다가 변절한자

              친일잡지 [동양지광]을 창간하면서창간사에 쓴 글
              - 이때에 반도 2천만 동포의 가슴속에 일본정신을 철저히 하고, 황도정신을 앙양하고, 천황
              폐하의 적자로서, 황국 일본의 공민으로서 예외없이 국체의 존엄을 체득하고, 황국 일본의
              대사명을 준봉하고 - - - 어쩌구 저쩌구-

              생각컨대 이 대의를 이해하고 이 이념을 체득할 때 일본국민으로서의 영광과 긍지를 감득
              치 않을 자 누가 있겠습니까.

              이 개X끼는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독재자 이승만에 의하여 구명도생 하였다.

              ★ [2] 정춘수 감리교 목사 - 3. 1 독립선언 민족대표33인중 1인이었다가 변절한자

              1) 1940. 10. 감리교 교권을 장악한 후 [감리교 혁신안] 발표 내용 중
              - 교도로 하야금 지원병(왜군)에 다수 참가하게 할것 - 까지 규정

              2) 1941. 10. 10.에는 교역자와 신도대표 50여명을 이끌고 [부여신궁] 조영근로봉사를
              하고 돌아왔다.

              3) 1941. 10. 21. 교회의 철문, 철책 등을 뜯어 헌납하도록 하는 이른바 "종교보국 5개
              항"을 결의 실천케 하였다.

              4) 1942. 2. 13. 감리교 각 교구장에게 공문을 보내어,
              "교회 종도 헌납하야 성전(왜놈제국주의 2차대전) 완수에 협력 할 것" 을 요구.

              5) 1944년 감리교단을 이끌면서,
              상동교회에 [황도문화회관]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교역자들에게 일본정신 주입에 광분

              6) 머리 이마빡에 일장기 두건을 두르고 교인을 인솔하여 남산의 조선신궁(왜놈신사)까지
              뛰어가 단체로 신사참배 강행 !

              (대부분의 사람들은여기에서 입을 벌린채 할 말을 잊게 된다. X팔 !)

              - 정춘수의 더러운 행동은 소설이 한권 되므로 여기에서 생략 -

              7) 해방 후 낯짝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자 1949. 10월 어느날 명동성당의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 삶을 마치다.신고 | 삭제

              • 친일부역 기독교 2015-03-07 10:28:03

                헉, 봉은사가 친일사찰이라구~???
                똥묻은 개가 왕겨묻은 개보고 더럽다고 한다는 속담이 바로 안성맞춤이로군.

                기독교가 왜정시대 친일부역에 미쳐 날뛰며,
                황군(왜군)의 무운장구를 주님(여호와)께 기도하고,
                조선장로호라는 이름 붙인 전투기를 사서 왜군에게 상납도하고,

                7년동안 왜놈 마귀(신사)참배하며 덴노헤이까 반자이~ 고함지르고 난리버
                거지 피운거 벌써 잊었는가~?신고 | 삭제

                • 자격없는 2015-03-06 21:36:37

                  탐욕에 눈만 멀었지. 뭘 제대로 하는게 없다~신고 | 삭제

                  • .. 2015-03-06 15:56:04

                    1942년 2월에 창간된 '기독교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내며 친일논설을 기고하거나 친일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던 백낙준 조선야소교서회 편집총무는 "황금만능주의 밑에서 운전되는 것이 미국이다. 선전만 잘하면 전국적으로도 지위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침략의 마수를 뻗어왔던 것이다. 이 형세를 그대로 방임해 두면 대동아공영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기보다 명백한 것이다. 영원히 광만 뻗도록 그동안 날과 달을 거듭할수록 더욱 감개 깊이 생각되는 것은 이 싸움이 가진 도의적인 성격과 위대한 이상이다. 이렇게 숭고하고 위대하고 엄숙한 한낱의 전쟁을 가진적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해방 이후 문교부 장관과 연세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36년 6월 29일 총독부에서는 양주삼 조선성서회 행정총무 감리교 목사에게 "감리교가 총회에서 신사 참배 결의를 해달라"고 요청하자 양주삼 목사는 "국민의 의무일진데 누구나 참배할 것이니 구태어 결의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

                    복음교회 감독인 최태용 목사는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 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나는 생한각다."고 주장했으며 채필근은 "국민 정신 총동원이 필요한 이때 종교인들도 국가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자야말로 도리어 이단이다." 라고 단정하였다.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34320
                    (대종교와 항일투쟁관련얘기지만은 단군을부정하는 예수쟁이들의 친일에 대해 신랄하게 꾸짖고 있음)신고 | 삭제

                    • .... 2015-03-06 15:45:04

                      절 자체가 친일이고 그러는데 그럼 개독들은 어떤 교회 목사가 친일로 밝혀지면은 그 교회 자체가 친일이라고 그럴래??

                      하여튼, 예수쟁이들이란.. 미제의 앞잡이 주제에~

                      ㅉㅉㅉ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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