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삭스, 어떤 사유하는 중생
올리버 삭스, 어떤 사유하는 중생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2.25 10:33
  •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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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38.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중생이라는 것은 특권이자 모험이다 <올리버 삭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깨어남’, ‘환각’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낸 신경의학자 올리버 삭스(Oliver Sacks)가 불치의 암을 진단받고 나흘 전에 뉴욕타임지에 기고한 글 ‘나의 삶(My Own Life)'의 전문(全文)을 번역, 소개한다. 그는 뉴욕의과대학의 신경의학과 교수이다.
 
이 글에서,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동양인들의 고질병인, 자기감정을 숨기고 위장하는 위선이 없이, 솔직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묘사하는 서양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항상, 겨울강의 살얼음을 통해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차갑고 투명하게 자신을 꿰뚫어 통찰하는 옛 유학자나 수행승들을 보는 느낌이다. 진리와 삶의 실상에 대한 지식을 구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좁은 방에 앉아서도 심안(心眼)은 벽을 뚫고 천지를 내달리는 철인(哲人)을 보는 듯하다. 안암(眼癌)에 걸려 원근감을 상실하고 이어서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고도 연구, 환자치료, 저술활동을 계속하며 불굴의 투지로 사는 모습에서, 환망공상과 거대담론에 취해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기여를 전혀 하지 못하는 한국 지식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든이 넘어서도 삭스와 같은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홍복(洪福)은 없으리라.
 
삭스의 글과 삶과 투병생활을 통해서, 사티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특수한 명상의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항상 일상적인 자기 삶에서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티 수행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일체에 열린 자세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에게는, 발견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진리가 무한이 많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고통에 더없이 가슴아파하시며, 부러 이 세상에 머물며 탈출구와 탈출방법을 가리켜주고 일러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지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권하고 싶다.

나의 삶 

한 달 전에 나는 건강하다고, 심지어 혈기왕성하다고 느꼈다. 81살 나이에도 나는 날마다 수영을 1.6km 한다. 하지만 운이 다하여 몇 주 전에 내 간에 복수의 암(癌)전이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9년 전에, 내 눈에서 희귀한 종양인 ‘악성흑색종’이 발견되었다. 방사선과 레이저로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 암은 거의 전이가 되지 않는 암이지만 전이가 되었으니, 나는 운이 없는 2%에 속한다.

처음 암 진단 이후 지난 9년간 건강이 좋았고 많은 것을 성취한 점에 감사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 암은 내 간의 3분의 1을 점령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암은 그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저지할 수는 없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가능한 한 가장 풍요롭고, 깊고, 생산성 있게 살아야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흄의 말에서 용기를 얻는다. 그는 65살인 된 1776년 4월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자, 하루 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다. 그는 그 글에 “나의 삶”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거기에서 그는 썼다. “나는 이제 스피디하게 해체되고 있다. 몸은 고장 났지만 고통은 거의 없다. 더 이상한 일은, 내 인격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원기(元氣)가 쇠퇴하는 고통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부욕심이 있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면 흥겨웠다.” 
 
나는 80을 넘어 사는 복을 누리고 있다. 65에 죽은 흄보다 더 산 15년 동안, 일과 사랑은 똑같이 풍요로웠다. 다섯 권의 책을 냈으며, 오는 봄에 출판될 자서전을 완성했으며(몇 쪽 안 되는 흄의 자서전에 비해서는 길다), 다른 몇 권의 책도 거의 완성하였다.
흄은 자서전에서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온화한 성격이며, 기분을 통제할 수 있으며,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흥겨운 성격이며, 애착은 하지만 증오는 거의 없고, 모든 열정을 다 절제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흄과 갈라진다. 스스로 나 자신을 평가하자면, 나는 사랑과 우정을 즐겼으며, 사실상의 적은 없었으나, 온화한 성격의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를 아는 어느 누구도 그리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며, 폭발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열정을 절제함에 있어서는 거의 극단적으로 무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흄의 에세이 중 한 구절이 충격을 준다. 그는 “삶에 대해서 (치명적인 병에 걸린) 지금보다 더 초연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이 불치의 암에 걸리고 보니) 이 말이 참으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나의 삶을, 높은 곳에서 경치를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경험이 내 삶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와 반대로, 나는 펄펄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힘이 남아있다면, 더 쓰고 더 여행을 해서 새로운 차원의 이해와 통찰을 얻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가 맺은 세상과의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담함과 명료함과 담백한 화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놀 시간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철없는 짓도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돌발적인 초점(집중)과 관점을 느낀다. 비본질적인 일에 쓸 시간은 없다. 자신과 일과 친구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매일 밤 뉴스프로그램 ‘뉴스아우어(NewsHour)’를 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초연함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중동과 지구온난화와 불평등증가에 대해서 걱정하지만, 이 일들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다. 이 일들은 미래에 속한다. 나는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즐겁다. 심지어 내 ‘악성흑색종양’을 생체검사하고 진단한 젊은이까지도 그렇다. 나는 미래가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느낀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내 세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점점 더 의식하고 있다. 내 세대는 사라지고 있으며,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죽음은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느껴지며, 내 일부분이 찢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와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사실은 똑 같은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죽은 사람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남긴다. 누구나 고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자신의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동시에 유전자적이고 신경세포적인 운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에게 공포가 없는 것처럼 굴 수는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고마움이다. 사랑을 주었고 사랑을 받았다. 많이 주었고, 그 보답으로 무언가 받았다. 독서하고 사유하고 글을 써왔다. 나는 세상과 교류(여기서 삭스는 intercourse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단어는 성교라는 뜻도 있다. 문호文豪 나다니엘 호손이 이 단어 intercourse를 처음으로 이런 뜻으로 썼다. 삶을 개아가 우주와 하는 성교라고 보면 밀교일까?)를 했으며, 작가들과 독자들과는 특별한 교류를 해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의식을 지닌 존재(sentient being, 이 용어는 중생衆生의 영어번역어로 많이 쓰인다)’이자 사유하는 동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이 사실은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이 그렇다.

2015.2.19 올리버 삭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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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홍 2020-12-14 13:07:53
의식있는 존재로서 교류하면서 고맙게 살아왔다.

이것이 다다.

여여부동 2015-02-28 02:52:37
동서남북일수도 있는 수많은 일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어느 한쪽만이 옳다는 생각과

주장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중도법의 중요성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행동하며, 올바르게 걸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래본다.


*불교의 목적은 행복이다.
당연히 완전한 행복은 고멸이다.
출가승과는 달리 재가자는 소유한되 집착하지 않으면서 행해야 한다.
어렵지만 교학과 수행을 하는 불자라면 뜻을 이룰 수 있다.

여여부동 2015-02-28 02:41:42
법사님의 추천으로 읽게된'무소유로는 행복해질수 없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그동안 우리가 불교관련 책들을 접할때마다
봐왔던 이야기나 제목하고는 사뭇 틀린 느낌이어서 생소하기도,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어서 이런 제목이 나왔을까? 궁금해졌다.

이책의 작가님은 '바스나고다 라훌라 스님'이셨는데, 부처님의 아들이셨던 '라훌라'라는 이름이 눈에 익어서인지 친근감까지 들었던 작가님이면서,
제목만큼은 뭔가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있을거 같은 책이 생각보다 얇아서 짧은 이야기속에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줄 수 있을지
기대반,걱정반!(책의 두께가 중요한건 아니지만,,개인적으로 두꺼운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책속에는 총 14장으로 나누어져 불교에 관심이 있건, 없건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불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되짚어 가면서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본래 존재하고 있던 진리를 발견하시고 중생들에게 전하신 진리의 참 모습을 세심하게 파고들어, 편하게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불자인 나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불교에 대해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여러가지 교리들과
불법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떻게 사법과 불교의 참진리를 구분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사뭇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만한 내용인데도, 읽다보면 우리가 어렵고 멀게만 생각했던 진리에 대해서

어느곳에 포인트를 맞춰 바라보고, 판단해야 되는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있는,

어떻게 부를 축적해 나가는지,지켜내는지,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또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지켜나가야 하는지,
사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어떤 방법이 있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삶을 걸어나가야 하는지를
부처님이 2600년전 발견한 참 진리의 내용과 함께 쉽게 설명되어 있어,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할 수 있던 불교를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와 불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쉬이 내려놓을 수 있을만한 책이었다.

그만큼 불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中道 (중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밍숭맹숭한 중간이 아닌, 어느 한쪽 극단에 치닫지 않고,

이쪽일수도 저쪽일수도, 위 아래 일수도, 동서남북일수도

여여부동 2015-02-28 02:36:51
불교는 분별하고 취착하는 마음을 놓는 것이다.
하므로 업식이 변하고 갈애가 끊기고 느낌이 사라지게 된다.
업식이 변하고 숙달되어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느낌에서 관찰해 갈애로 넘어가지 않게 된다.
평소에 꾸준히 분별심과 취를 놓아가야 한다.
물론 일어나는 욕탐을 놓기가 힘들다.
해서 붓다의 유언이 불방일 자등명 법등명이다.
출가승은 무소유지만 재가자는 교학도 수행도 하고 정당하게 재물도 모우고 베풀고 다다익선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와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무소유로는 행복해 질 수 없다>(바스나고다 라훌라 스님 지음, 아이비북스 간)라는 신간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원서명은 The Buddha's Teaching On Prosperity (2008년 출간)으로 저자는 라훌라 스님. 그는 불교문명국이었던 스리랑카 출신이며 불교철학자이다. 초기 불전인 ‘팔리어(Pali語) 경전’을 원뜻에 가장 근접하게 해석했음을 강조하며 그 주장의 근거들을 부족하지 않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2,600년 전 붓다(Buddha)가 설법을 할 때 일반신도들에게는(출가제자들에게 와는 달리) 부(富)를 최대한 성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라고 설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현대인들이 하고 있는 오해와 그 이유, 그리고 일반신도들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춘 가르침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샅샅이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는 그 동안 출간된 수많은 불교서적들은 붓다가 출가승인 제자들에게 가르친 경전의 내용을 일반신도인 재가자들이 자의적으로 인용함으로써 그 의미가 변형됐다고 말한다. 부제(副題) ‘2,600년 동안 파묻혔던 붓다 본연의 가르침’이 표명하듯이, 불교라고 하면 속세의 덧없음과 괴로움을 강하게 강조하면서, 무소유, 금욕, 고행 등을 중시하는 염세주의적 종교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주창한 ‘무소유’와 라훌라 스님의 ‘무소유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이 두권을 책을 읽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깊은 생각이 필요 한 때이다.


가난은 세상의 괴로움이다.
가난한 자는 빚을 내어 살아가며
이로 인해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붓다는 모을 수 있는 한 많은 재물을 모으라고 가르쳤다. 부유한 신도들에게 재화를 그만 모으라든가, 너무 많이 모았다고 비난한 게 아니라 보다 물질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계획하고 관리하며 더욱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여여부동 2015-02-28 01:48:40
작가 주: 당신에게 불교는 어떤 이미지인가? 스님? 향냄새? 통통한 금색 아저씨 불상? 기분 좋게 울리는 목탁소리? 뭐라고 말하는 지 알 수 없는 스님들의 염불소리? 무서운 표정으로 포즈를 잡고 절간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상? 산 속에 숨은 욕심과 번뇌와는 무연한 청정한 진리의 세계? 얼마 전 사람들이 사재기했던 故 법정 스님의 <무소유> 속의 탐진치(耽嗔痴)를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하라는 가르침? 아니면 성철 스님? 숭산 스님? 현각 스님? 혜민 스님? 혹시 혜밑 스님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이미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무소유’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방하착(放下着, Let go)을 실천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설령 떠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큰 지복과 환희를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잠깐, 그렇다면 집착만 없으면 소유나 무소유나 마찬가지라는 말인가? 그럼 가지는 게 낫잖아? 그것도 많이!






그렇다. 가지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가져라. 바스다고다 라훌라 스님의 말에 의하면 그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물론 출가한 스님이 아닌 재가신자를 위한 설법으로, <무소유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팔리어 경전에 담긴 상좌부불교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상좌부불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자면 책이 한 권 필요할 테니 간단하게 정리하겠다. 불교는 크게 3개의 전통으로 나뉜다. 극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선종 포함), 티베트의 비밀불교,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상좌부불교. 이 중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했던 언어인 팔리어 경전을 바탕으로 석가모니가 직접 한 구어체의 말과 당시의 전통을 지금도 잇고 있는 불교가 바로 상좌부불교다.



상좌부(上座部)는 말 그대로 높은 방석이라는 뜻으로, 이 위에 앉을 자격이 되는 높은 단계에 있는 장로를 말한다. 상좌부불교에서 승려는 석가모니의 교단인 승가(僧家))에서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엘리트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말하자면 대학교수나 연구자 같은 위치다. 이들의 가르침은 분명 석가모니의 생생한 가르침을 담고 있었지만, 연구를 거듭한 결과 너무 현학적으로 변해버렸다. 마치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말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세월의 격차와 현학적인 라틴어 신학으로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져 카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나타났듯, 상좌부불교에서도 민중과 서민의 구원을 부르짖는 대승불교가 나타났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극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스스로가 상좌부불교로 변했다. 한역된 불경은 박사학위를 따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스님들의 설법은 현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오묘하지만 속세와는 아무 상관없는 공허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소위 자기계발서와 멘토에게서 속세를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구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행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행복을 얻는 방법을 다름 아닌 석가모니가 설한 적이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석가모니라면 무소유의 상징 아닌가? 발우와 가사 두 장 말고는 모두 버린 사람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석가모니는 실제로 재가신자에게 ‘행복을 위해 더 많은 부를 이루라’고 가르쳤고, 이를 위한 윤리관과 실용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애초에 석가모니가 누구인가? 행복을 이루도록 사람들을 “자기계발”하도록 “코칭”하는 최고의 코치이자 멘토가 아니었던가? 2600년의 세월에서 진가를 시험받은 자기계발서를 두고, 고작 몇 십 년 동안의 개인 경험을 늘어놓는 자기계발서를 손에 든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석가모니는 그렇다고 억지로 책을 쥐어주지 않는다. 단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말해준다. 가장 불교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키워드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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