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1.16 10:08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도겸 박사의 ‘불교의 자성과 쇄신’ 26

삼귀의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삼보는 부처님, 가르침, 스님들을 뜻하며, 스님은 그냥 한명의 스님이 아니라 승려들이나 승단의 의미가 있으며 출가자만 해당한다고 한다. 거기에는 동의하는 출가자들이 적지 않다. 다만 그 승려들을 거룩한 승려들에 한정시킬 것인지 훌륭한 사부대중 역시 포함되는지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구 뿐만아니라 비구니와 우바이, 그리고 우바새의 포함문제일 것이다.

이런 문제가 붉어진 원인에는 한국불교 승려들의 범계행위가 자리잡고 있다. 심심지 않게 권승이나 권승지망자들의 도박, 사기, 성매수, 성희롱, 폭행 등이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이런 범계를 저지른 출가자들을 거룩한 승려들인 삼보로 볼 수 있는가가 이런 논쟁의 핵심이 된다. 아울러 수행을 열심히 하여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사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제자들 가운데는 재가자들도 있다. 이들 역시 단순한 청신남, 청신녀인 사부대중이 아니라 유마거사, 승만부인(보살)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정도라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 점에 국한해서 삼보 가운데 승보를 논의해야 한다. 부처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21세기에 자행되고 있는 추락하는 출가자들의 문제다. 우리 여기서 지금을 얘기해 보자.

재가불자들이 다른 것은 문제삼지 않고 승보에 귀의한다는 것만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절에 가서 우리가 절을 하는 대상인 불상은 자기성찰이라는 수행적인 측면에서 엄밀하게 말하면 문화재일 따름이다. 진짜 부처님은 거기에 없다. 따라서 불상을 가리키면서 은유로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지 불상 자체가 부처님은 아니다. 따라서 깨친 선사들 가운데는 불상을 태울 수도 있었던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고 말한 선지식도 없지 않다. 왕이 돌아다니면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왕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면 참으로 챙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왕이고 남들도 다 왕이라고 인정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권력누수현상이 있었던 것인지 내가 왕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이미 적어도 왕 다운 왕은 아니다. 그런 왕은 오래 못가고 오래 가도, 결국 역사속에서 다른 훌륭한 왕들에 묻혀 지워진다. 역사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른 얘기로 내가 부처다라고 하는 순간 이미 부처다운 부처는 아니다. 선사들이 화두를 애기할 때, 죽은 곳에서 살아나오라고 했다. 돈오하는 순간에 이미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나오라고 했다. 금강경을 말할 것도 없이 물은 흘러야 하고 머무를 데가 있는 것은 이미 깨침이 아니다. 죽은 곳이다. 마음의 어디에 점을 찍을려고 하는가! 의단이 죽은 그 순간에 이미 깨침은 공허한 망상이 될 뿐이다. 작은 견성에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내가 부처라는 아상만 남기고 모든 공덕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라도 떠드는 수행자)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깨친 부처도 이미 과거에 집착한다면 부처가 아니다. 그런데 출가했으면 그 인연만으로도 충분히 수승한 것인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내가 스님이고 나아가 삼보라고 강조하고 강요해야 하는가? 스님이라면 수많은 계율을 지키고 청정해야 하는데, 수많은 범계승이 모두 서면경고에 그치거나 공권정지로 여전히 승려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오직 권승들에게 대항한 이들만 ‘멸빈’이나 ‘제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속되는데도 ‘자성’과 ‘쇄신’을 하고 있다며 모든게 ‘화쟁’이라는 올해가 갑오면(말)인데도 병신년(사슴)이라고 속이는 이들도 있다. 정말 자성인가? 쇄신인가? 화쟁인가? 눈가리고 아웅도 유만부득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대화를 하겠다니 그 자체가 넌센스라는 재가자들이 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승보에 귀의해야 한다고 삼귀의는 가르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여야 하는데, 정말 3보에 다 귀의해야 하는가? 거룩한 스님네들이 아닌 무늬만 승려인 타락하고 부패한 출가자들에게 귀의하는게 정말 옳은가? 다른 말이 필요없다. 출가자라면 스스로 3보가 맞나 살펴라! 스스로도 답을 모른다면 당신은 이미 참회를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부처님도 자신에 의지하지 말고 가르침인 법에 의지하라고 했다. 법등명자등명으로 부처님이 밝히신 법에 의존하여 자성을 밝혀야 할 따름이다. 오직 정법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3보가운데 오직 법보만 귀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법에는 계율도 포함된다. 부처님 생시에 수많은 계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부처님도 열반에 들기 직전 소소한 계율은 버려야 하며, 가장 중요한 계율만이 전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뜻을 잘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참회하라! 요즘 승보에는 비구만 속해 있지 비구니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리야상가 즉 성승(聖僧)은 수다원~아라한 과위를 얻은 성스러운 스님들이라는 것이 <깃발경(다작가숫따)> 등에 나오는 말씀이라고 한다. 일단 이러한 초기불교적인 입장에 서면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는지도 모르고 걷거나 알아서 걷는 이 모두 성승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승보에 출가자만 포함되는가에 있다. 재가자들이 들어갈 틈이 정말 없는가? 거꾸로 유마거사와 승만부인은 3보가 아닌가? 정말 넌센스다. 내가 만나는 모두가 전생에 한번쯤은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보리심’을 내라고 했는데, 정작 출가자는 재가자의 자녀들이 아닌가? 그런데 부모를 놔두고 나만 보물이라고 내게 귀의하라고 할 수 있는가! 아상이다. 집착이다. 이것도 버리지 못했는데 출가하면서 대체 뭘 버린건가?

3보에 귀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부처님과 그의 말씀, 그의 제자로서 ‘법의 등’을 밝혀서 ‘스스로의 등’까지 밝힌 이들은 승보가 맞다. 이들을 역대전등이라고도 한다. 이런 전등 가운데는 반드시 거사와 부인(보살)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미 그들의 등이 밝았는데 억지로 3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3보의 기준이 출가와 재가에 단순히 있는 것이라면 그 기준에 의지하고 싶은 ‘열등감’과 그로인한 ‘과시욕’을 먼저 바로 봐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간화선의 장점이다. 출가자라면 내가 왜 계속 3보 가운데서 승보에 집착하는지. 내가 왜 행동은 이러한데 스스로를 승보라고 치켜올려야하는지. 혹시 하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혹시 부처님 계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더 큰 가르침인 ‘지금’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훌륭하신 선지식들은 ‘깨치면 재가든 출가든 모두 승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에 의지한다면 나만이 출가자만이 비구만이 승보라는 애착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굳이 사부대중을 3보에 포함시켜려는 의도는 다른데 있지 않다. 거룩한 불제자는 굳이 3보라고 하지 않더라도 모두 전등이기에 그럴 이유조차 없다. 다만,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살면서 말법이 아닌 정법으로 돌아가고자 할 따름이다. 3보가 아니면 또 어떤가! 내가 깨치지 못했다면 다 거짓된 명예고 권력이다. 헛된 일일 따름이며 죄업만 악업만 더 쌓일 뿐이다. 오직 깨침이라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전부다. 뭘 하든지 깨치고 입전수수라는 실천을 하면 3보일진대 왜 출가자들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가! 혹시 깨칠 수 없다는 마음부터 낸 것은 아닌가?

오직 부처님의 법 그것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더 큰 안목에서 깨쳐야 한다. 8만대장경의 바다와 같은 법문을 칼로 잘라내서 몰록 깨치는 선불교 수행을 따르는 우리나라에서 ‘깨쳤으면 그만“이지 왜 이미 시대성을 잃은 과거의 산물인 경전 구문만을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선방에 앉아서 알음알이만 만들 것이면 얼른 어간을 걷어차고 나와야 한다.

예수보살도 사량분별만 하는 이들에게 이런 바리새인같으니라고 했다고 한다. 지관을 수행하는 선승들이 깨쳐서 ’아라한‘이 되고 ’선지식‘이 되어 성철스님같은 ’역대전등‘이 되면 아무리 스스로 3보가 아니라고 해도 모두 3보로 아니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으로 떠받들게 된다. 그게 없으니 ’인가‘라는 방패막 뒤에 숨어 ’인가‘를 들먹이며 종정이니 방장이니 하는 그 자리에만 연연하며 속인보다 못한 짓들을 보고만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면목‘만을 바로 봐야 할 것이다. 스스로도 알 것이다. 내가 정말 3보인지 아닌지. 스스로의 마음을 더 이상 속이지 마라! 불기자심(不欺自心)일진대 자신의 마음마저 속이고 강요하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하물며 불제자로서 부패한 출가자들을 만났는데 어찌 삼보라고 귀의할 수 있겠는가! 범계로 인하여 이미 출가자의 탈만을 썼을 뿐인데 그 어떤 천신과 신장들이 그들에게 삼보에게 올리는 ’거룩한 공양물‘을 올리겠는가! 더 이상 스스로의 마음 즉 부처님을 능멸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할!

최근 한 승려가 동국대 총장을 하려고 꽤 노력한다고 한다. 표절시비가 있어서 우리 불교 학교인 동국대가 똥국대가 되어가는데도 일부 승려 이사들에게 의존해 용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한건은 스스로도 표절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정말 이래도 되는가? 스스로 왜 출가했는지 살피면 답을 쉽다. 이렇게 물의를 일으키고도 욕심을 버리지 않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들 좋은 사람이다. 모두 부처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뿐인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부처님 법대로 용단을 내리고 참회하면 된다. 그게 초발심을 찾는 길이며 다시 출가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는 한 신도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사부대중 모두가 깨달음의 길을 가기 위해 자성과 쇄신 등 공익적 목적으로 일부 전문가와 신도들의 의견이나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dogyeom.ha@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도겸 2015-01-26 02:52:11
하도겸 박사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뜻 하도겸 박사가 알고 있는 뜻 아닙니다
수행자는 스스로 부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노력 하는것이며
수행 과정에서 타력이 아닌 자력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할 아무곳이나 써는 것이 아닙니다

모비딕 2015-01-19 08:09:27
하도겸박사님,
참으로 한국불교를 위한 고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깊이 새깁니다~

천웅 능현 2015-01-17 14:23:36
우주에 존재하는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행복을 누릴 수도 있고 비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난을 하던 찬탄을 하던 부처님께서는 그 근기를 나무라지도 않으며 바르게 이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성찰하기를 바란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다가서면 그 가르침을 일러주고 그 스스로의 잘못을 들어내고 교화의 가르침을 증득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입으로 글로 하는 불교는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다. 아상과 아만이 넘치는 자를 증상만이라 했다. 그러므로 몸으로 들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진실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백천만겁난조우라 했느니. "라자색선백"의 했지만 어디 범부 중생이 "라자"의 문에 들기가 그리쉬운가?

ㅎㅎㅎ 2015-01-16 23:13:52
通불교 짬뽕불교 등등
미신불교만 남언네유ㅠㅠㅠ

하박싸 말대로
자등명 법등명 뿐..................임다요.

쪼개동 절깐에 가서 시줏돈 내덜 마서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모다 자승이 도박돈으로 전용 된다는 주장이 있기도 헙디다.
특히 서울 관악산 연주암 응진전 가서 돈 내는 분 덜.... ㅋㅋㅋ

쪼개종 全國 本+말사 사찰에 시주함도 마찬가지......
시줏돈 모아서 총무원장에게 안 가따주문
본+말싸 주지 자리 몬 혀 묵어서 그런다데유 ㅎㅎㅎ

중넘덜이 수행은 안 허고 밸 지룰을 다 떨고 인는
現쪼개종........
더 욕허문 내 입만 드러버지겄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법등명자등명 2015-01-16 21:54:34
....사부대중이 각자 법등명,자등명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컬럼이다...
계받았다고 다 스님 아니어서, 사이비중들의 어물전망신 사례가 요즘 너무 많다...공부가 되거나 공부할려는 스님들은 이런 글을 고마워 할 것이고...사이비땡중들은 이 글을 보면 도둑이 제발저리듯이 못된 마음이 올라올 것...결국 스스로 인식하는 자신의 인간됨됨이에서...자신이 스님인가, 땡중인가 자리매김하면 그게 바로 맞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