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삼귀의 제대로 된 것이다
한글 삼귀의 제대로 된 것이다
  • 법현 스님 열린선원 원장
  • 승인 2015.01.14 08:07
  •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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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스님들께 귀의하면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한글 삼귀의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어서 생각해봅니다.

우선 한글 삼귀의가 문제라는 의견을 내는 분들 가운데는 외국어를 잘 알거나 검색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있는 듯 합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잘 아는 분들이 우리말을 좀더 살폈으면 하는 바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입장을 가졌다는 이들이 말하기를, 빠알리어 경전에서 말하는 상가(sangha), 승가(僧伽)는 스님이 속한 집단이라고 합니다. 승단(僧團), 교단(敎斷)이라고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냥 스님이 아니라 성스러운 스님들을 승단의 구성원이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견해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삼귀의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삼보는 부처님, 가르침, 스님들을 뜻합니다. 빠알리어는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ngha)입니다.중국 한자어는 불타(佛陀), 달마(達摩), 승가(僧伽)입니다.
붓당 사라낭 가차미
담망 사라낭 가차미
상강 사라낭 가차미
나모 붓다야
나모 담마야
나모 상가야
나무 불타야중
나무 달마야중
나무 승가야중
여기에서 다른 것은 문제삼지 않고 승보에 귀의한다는 것만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상황적 배경에는 인도불교가 아닌 현재 한국불교 승려들의 범계행위가 들어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현재 한국불교의 꽤 많은 승려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삼귀의가 아니라 이귀의’라는 말이나 ’스님들에게 귀의하면 안된다’거나 ’승가에, 상가에 귀의한다’는 표현에는 더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취지의 글을 몇군데 사이트에 쓴 적이 있습니다.

우선 단체라는 것은 별도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일반 승려든, 성스러운 승려든 승려들의 모임입니다. 이는 여러 초기불교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경문을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의 글에서는 재가자도 승단에 포함된다 하기도 합니다.

아리야상가 즉 성승(聖僧)은 수다원~아라한 과위를 얻은 성스러운 스님들이라는 것이 <깃발경(다작가숫따)> 등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대승불교의 여래 10호와 초기 상좌부불교의 여래 9덕 ,그리고 법보와 사쌍팔배의 아리야상가의 덕성들이 그곳에 설해져 있습니다.

아리야상가를 주장하는 이들이 현재의 한국승가를 부정하면서 재가자들을 포함시켜 말하는 것은 더더욱 넌센스입니다. 여기에 재가불자가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리야상가 즉 훌륭하신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일반스님들은 어디에 속합니까? 경전에 나오는 보통스님들의 법랍은 대개 10년 미만이고,그 이상은 스승이 될 수 있어서 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른바 아사리(아짜리야)입니다. 15년 이상이면 장로(테라,테리)라고 불렀습니다. 테라가 요즘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리 높은 스님이 아닌 것입니다. 그 가운데 교진여(콘단냐)처럼 부처님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라한이 된 이들도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끝내 아라한이 못된 이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말 삼귀의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로 되어 있습니다.

초기불교를 주장하는 일부 론자들은 앞의 둘은 동의하는데 뒤의 세번째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둘은 그대로 두고 세번째만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거나 "거룩한 상가에 귀의합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니면 제대로된 우리말 표현을 찾아내지 못한데다가 현 한국 승려들의 문제점을 인지하여 귀의할 수 없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개의 현 한국 승려들은 이런 주장들을 위험시하거나 애써 도외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견해들을 접하고 여러차례 여러 곳에서 주장했습니다. 단체인 상가나 승가를 귀의대상인 승보로 하든,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쌍팔배를 승보로 하든 우리말로 옮길 때는 앞의 불보, 법보처럼 다 옮겨야 한다고 말입니다.

붓다, 담마, 상가로 하든지 불타, 달마, 승가로 하는 것은 제 의견과는 다르지만 통일성이 있으므로 주장자체는 문제가 없어서 저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부처님,거룩한 가르침이라고 옮긴데 이어서 귀의승 부분만 거룩한 상가라 옮기거나 거룩한 승가라 하는 것은 어울리지도, 바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있는 삼귀의를 이귀의로 주장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말 삼귀의는 탄생 배경은 더 살펴야겠으나 말과 문장구조, 교리적으로 보아도 잘한 옮김 입니다. 그냥 스님이나 스님들이 아니라 거룩한 스님이나 스님들은 귀의의 대상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는 이미 부처님의 보기에도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이 둘이라서 존경, 귀의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아다시피 아라한 다섯을 배출하고 이 세상에는 아라한이 여섯이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아라한이기에 그렇습니다. 붓다와 아라한의 구별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다루기로 합니다.

현재의 승려, 승려들, 승단에 관한 지율, 수학, 수행에 관한 비판은 몰라도 우리말 삼귀의의 세번째 승귀의를 부정하는 것은 다시 살피기를 또 한 번 더 제안합니다. 한글 삼귀의 문장에는 부처님과 가르침에도 들어있는 ’거룩한’이 스님들께에도 똑같이 들어 있습니다.

그냥 스님이 아니라 거룩한 스님 그것도 단수의 스님이 아니라 복수의 거룩한 스님에게 귀의하는 것은 빠알리어의 상가와 견주어 어긋남이 없습니다.

우리말 삼귀의를 다 긍정하는 견해에서 한국승단, 한국불교를 바르게, 제대로 세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불교, 한국불교에 관한 애정을 가지고 연구해서 대안을 제시하는데 힘쓰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계,정,혜...의 측면에서... 이리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 제안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구성을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승단,승가,상가)에 관한 믿음의 종교, 따름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 삼귀의를 온전히 하고 5계를 수지하는 이를 일러 불자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10계를 지니면 예비 승려인 사미, 사미니라 하고 250, 348등 구족계를 수지하는 이를 비구, 비구니라 합니다.

초기불교, 상좌부 불교의 입장이든 대승불교, 대중부 불교의 입장이든 자신의 지향점과 소속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 그 교단의 계율을 지니고 따르면 됩니다.

남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살피는 것은 어리석다고 <법구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살피는 이가 슬기롭다고 했습니다.

/ 무상 법현(열린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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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법현 2022-04-11 11:33:35
서림스님께서 공유하셔서 들어와보니 댓글들이 다려있네요. 초기불교는 스러져 테라와다와 마하야나(교학,정토,밀교,참선,종합)가 이제 지금의 모습이지요.
어느 신행을 하든지 삼귀의를 합니다.
귀의 자체가 약간의 타력이지요.
긴 토론보다...한글 삼귀의 가운데 불,법 이귀의는 문제가 없다하니 승귀의를 소재로 삼아야겠군요.
같은 한글이어도 이해가 이렇게 편향적입니다.
깔라마숫따에서 처럼 불,법도 살펴보니 도움되고 좋아서 따르는 것입니다.
승,승가,상가도ㅡㅡㅡ승으로 하거나,승가로 하거나,상가로 하는 것은 제 글에서처럼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승,승가,상가만 한글 대신 승.승가,상가로 표현해도 된다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의 의식,어문일지 궁금합니다.
전재성박사는 참모임이라 했습니다.그 의견은 본인 의견이니 중시

산돌림 2016-04-20 09:25:10
진흙속의연꽃 등 일부 재가 불자들이 주장하는 바, 거룩한 스님들은 상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재가불자의 3쌍6배의 집단도 상가에 포함하고 싶은 의도로 굳이 상가를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룩한 스님들' 은 4쌍8배의 거룩한 출가수행자만을 의미하는 용어로 생각할 수 있다. 진흘속의연꽃 등 어떤 이들은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동등하게 승가를 구성하는 것이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자신만의 망상일 뿐, 재가자들이 예류 이상의 도와 과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우바새 우바이만로는 승가를 구성할 수 없다. 승가의 구성은 결국 비구와 비구니들로 가능한 것이다.(물론 성승가는 예류 이상의 출가 성자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재가 자체로는 승가를 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출가로는 승가를 구성할 수 있다. 성승가는 성출가자로 구성된다. 이런 취지에서, '거룩한 스님들' 이란 말은 성자의 반열에 오른 출가 수행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한글 삼귀의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한 스님들이 스님들에게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스님들이 예류 이상의 성취를 보인 '거룩한 스님들', 혹은 그 집단에 귀의하는 것이라 보면 큰 무리가 없다.

이곳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곳에 남겨진 한글삼귀의에 대한 일부 재가 불자들의 글들에서, 그들의 분노와 질투-히스테리가 수반된-가 느껴지는데, 승가의 구성원은 성스러운 출가 수행자들이라는 것이 사실임은 어찌할 수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유마거사와 소성거사와 같은 이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있다 해도, 그들만으로는 승가를 구성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계가 구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다만 계율이 무너진 한국 승가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해 주었으면 한다. 계율이 없으면 성승가는 차치하고라도 일반 승가도 구성될 수 없다.

부루나존자/ 2015-01-19 09:10:03
한글 전용 또는 한국 조계종-불교의 사유적 독단에 대해서요.

부루나존자 2015-01-18 09:13:22
법현스님 말씀에 답변입니다!
낱말보다는 의미를 추구해 보십시다. 형식보다는 맥락을 중요시 해 보십시다.
자신이 사용해 오는 언어는 자신의 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자신이 사용할 언어들로 또 우리는 자신의 습을 변화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라고 하셨습니다, 삼귀의가 제대로 되었다는 생각을 하시는 스님의 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세상 모든 종교는 타력에 의한 자력 입니다
그러나 불법는 세상 모든 이에게 자력에서 가능한 지혜를 일렀습니다
스스로가 불성을 갖추고 스스로 불성을 이룰 것을 가르쳤습니다
불성이 무엇입니까 깨달음이 무엇입니다 지혜 중에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지금의 불교가 과연 자율성의 전법입니까 스님분들로 인하여 불교전체가 우상이자
우를 범하는 삿된 법으로 그토록 거룩한 삼귀의가 이렇게 초라하여졌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지금 "삼귀의 낱말의 의미 형식의 맥락" 을 잘 살펴 보십시요
당연한 우상이며 타력법입니다 타력에 의해 자신을 향상 시키는 이 또한 진리이지만
자력에 의해 자력과 타력이 거룩해지는 형식의 맥락이 불법의 종지법칙이니다
스님! 쉽게 말해서 거룩하다기보다, 진실한 불법을 갖추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지키렵니다 정직한 행으로 이어렵니다 이러한 순수한 자력의
발원이 얼마나 좋겠습니다 삼귀의 정의는 자력의 향상을 위한 발원입니다
진실과 바름과 정직은 삼보의 체상용 모태정신이자 천지로 하나인 진리입니다
지금 삼귀의가 제대로 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지금 불교단체의 부분적 습일 것이며
불법의 자력신앙이 타력의 우상신앙보다 전혀 달라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불교단체 스님들은 불법을 포장한 불교단체를 계승하려는 몸부림일 뿐입니다
그 몸부림은 곧 지칩니다 불법은 지치고 싸우고 이해와 타산이 번복 되는
가르침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님! 불법은 어리석음을 고치는 지혜법이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답변 쓰신 글이 반가워 또 한 말씀 올렸습니다. 이것이 저의 습입니다!^*^()

마하반야 2015-01-18 02:45:27
족쇄를 제거함 경 등(S45:42 ~48)
Sayojanapahna-sutta



2.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무슨 목적을 위해서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하자.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도반들이여, 족쇄를 제거하기 위해서 …(S45:42)
‘도반들이여, 잠재성향을 뿌리뽑기 위해서 …(S45:43)
‘도반들이여, 도정(道程)을 철저하게 알기 위해서 …(S45:44)
‘도반들이여,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해서 …(S45:45)
‘도반들이여, 명지와 해탈의 결실을 실현하기 위해서 …(S45:46)
‘도반들이여, 지와 견을 위해서 …(S45:47)
‘도반들이여,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해서 우리는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다.’
라고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S45:48)

4. “비구들이여, 그리고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그대들에게 ‘도반들이여, 그러면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한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도반들이여,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한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한 도이고 어떤 것이 도닦음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싸띠, 바른 사마디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한 도이고 이것이 도닦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그대들은 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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