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시각 보광스님 논문표절 의혹 회견엔 교계매체 절반 불참
통일신라 시대 원효 대사(617~686)의 대표 저술인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가 현존보다 무려 200년 앞선 판본이 발견됐다는 기사로 포털사이트가 들썩였다. 그러나 정작 200년 앞선 판본 따위는 없다.
지난 8일 밤9시3분 동국대 홍보실이 불교계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하면서 이 사건은 시작됐다. 한밤 중에 보도자료 배포는 다소 이례적이었다.
이메일 내용은 원효대사 <대승기신론소> 투르판 본 단간 발견,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시대 <대승기신론별기> 사본 최초 발견 등 두가지였다.
동국대를 출입하고 문화재 내지 학술을 잠시나마 맡아본 기자의 감각으로 굳이 현장을 가지 않더라도 기자회견 끝나면 자료를 받아 기사를 작성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이날 비슷한 시간대 서울 인사동에서 더 심각한 내용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총장 후보자의 논문 대필 및 표절의혹을 총동창회쪽이 제기하는 자리였다. 열악한 교계지 상황에서 동국대 출입기자가 두 명일리 없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장충동보다 인사동이었다.
기자회견 당일인 12일 오전9시 27분에 보낸 이메일은 다소 솔깃한 내용이 추가됐다. 대승기신론소 투르판본이 현존 최고본인 돈황본보다 무려 200년 앞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자료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당일 배포되는 보도자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후2시까지는 보도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두 가지 전제조건은 여전히 유효했다.
결국 편집회의를 통해 투르판 본 현장취재를 가기로 결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다수 기자들이 동창회 회견장을 가지 않고 장충동 대학본부에 몰려들었다.
오후2시부터 특강형태로 진행된 기자회견장에서 이 대학 불교학술원 HK단장인 김종욱 교수는 이런 기자들의 특종(?) 기대를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돈황본과 비슷한 시기"라고 했다.
곧 이어 등장한 딩위한 교수는 한 술 더 떴다. "두 본은 거의 동시대로 보인다. 투르판본은 9-10세기, 돈황사본 8-9세기로 추정된다. 투르판을 먼저 점령하고, 돈황지역을 나중에 점령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돈황본보다 200년 가량 빠른 8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보도자료와는 오히려 반대의 설명이었다.
또 다른 교수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본의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비슷한 필적과 종이의 질, 감기 등으로 미뤄볼 때 비슷한 시기라고 추정할 뿐이다. 8~10세기로 넓게 추정한다. 어느 게 앞서는지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둘 다 묶어 최고본이라고 하는게 맞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날 회견 자리는 원효스님의 대승기론소가 서역까지 전래된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쳐야 했다. 또 일본에서 불교학술원 HK연구단이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별기> 이본을 비롯한 다양한 저서를 발굴했거나 하는 중이라는 정도였다.
이 행사를 마련한 동국대 관계자는 "ㅇㅇㅇ교수에게 속았다. 그 교수가 이러면 안 된다"며 어이없어 하는 취재진에게 더 이상 말을 아꼈다.
같은 시각 인사동에서 열린 차기 총장후보자의 논문 논란 회견에는 4명만 참석했다. 이날 동국대 회견은, 소설 등 문학에서 꺼려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으로 차용하는 장치인 '우연의 일치'가 아니길 빈다.
회견이 끝나고 학교측은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기 배포된 보도자료 중 투르판 본 제작시기가 8C로 특정하는 것보다는 8C-10C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딩위안 교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이미 배포된 보도자료의 문구를 수정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행사를 주도한 쪽은 지금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200년 앞선 최고본 대승기신론소 발굴'기사와 SNS상의 포스팅에 책임을 져야한다. 가뜩이나 논문표절 의혹으로 시끄러운 동국대가 이번 '낚시질' 보도자료로 인해 특정 몇명을 '번거럽게' 한 수준을 넘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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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이렇게 썩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