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에 손 벌리지 말라” 들리는가, 조사의 외침
“官에 손 벌리지 말라” 들리는가, 조사의 외침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4.10.29 15:3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서지굉의 수좌 경책…426편 담은 ‘죽창수필’

“관의 돈을 받아들이는 일, 관부에 들어가 벼슬아치가 되거나 관인과 사귀어 공사(公事)를 부탁하지 말라. 관가에 출입해 시주를 요구하지도, 관리의 세력에 의지해 다른 사람과 송사를 걸지도 말라.”

운서주굉(1535~1615) 선사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 제자들에게 강조한 말이다. 부처님 계율이기도 한 이 내용은 선사의 수필집 <죽창수필>에 담긴 426편 가운데 하나이다.

81세에 입적한 선사는 그 이전 해, 자신이 살아온 일흔아홉 해를 뒤돌아보며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를 죽창 아래서 붓 가는 대로 진솔하게 풀었다. 책에는 스님이 살아오며 보고 느낀 소소한 경험담, 구습을 바로잡기 위한 비판,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따끔한 경책, 일상의 깨달음이 담긴 단상 등이 담겼다.

책은 지난 1991년 실상사 화엄학림 초대학장을 지낸 연관 스님이 처음 소개한 것을 절판 후 수정‧보완해 새로 펴낸 것이다. 새 <죽창수필>은 현대인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 오류와 한문투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고 주석을 대폭 보강했다.

“스님 된 것은 자신의 일인데”

“스님이 된 것은 자신의 일인데 시방의 시주에게 폐를 끼치고 있으니 참으로 보답할 길이 없다”는 등활거 선사의 말에 운서지굉 선사는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고 했다.

운서지굉은 “스님이 자신의 생사를 위해 공부하는 것은 마치 선비가 자신의 과명(科名)을 위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위해 이웃‧친척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는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성을 이루면 족히 시주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으나 명성을 얻지 못하면 은혜를 저버리게 된다.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시주물이 넉넉지 못한 것만을 탓한다면, 이러한 몰염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스님은 마땅히 검소‧절약해야”

선사는 재상을 지낸 장자소 거사, 호극인 거사를 본보기로 들었다.

장자소 거사는 장원급제해 높은 지위에 이르면서도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을 먹었다. 진기한 골동품도 갖지 않았고 붓도 끝이 닳아 몽땅한 것을 사용했다. 장 거사는 대혜종고의 제자이다. 호극인 거사는 관직에 있을 때 종신토록 채식을 하면서 종이로 된 장막 속에서 잠을 잤다.

선사는 “저들도 재상의 몸으로 비구의 행을 실천하며 살았거늘, 비구는 어찌해야겠느냐”고 했다.

이어 “부처님 법에 비구는 걸식해 먹고 헌옷 기워 입고 무덤곁이나 나무 아래서 자게 했다. 지금 대중에서 단월의 공양을 받아 옷‧음식이 풍부하고 따뜻한 처소에 지내면서 더 맛있고 화려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선사는 “한 벌의 발우를 네 번 꿰매 쓰고, 한 켤레 신을 30년 동안 신었다는 고덕의 고풍이 사라지려 하는가”라고 탄식했다.

“말법에는 비구 신심이 재가자만 못해”

선사는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을 본보기로 들었다.

어떤 이가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보니 두 개의 고깃덩이가 움직일 뿐이군요”라고 했다. 두 사람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으니 그가 답했다.

“두 분은 몸뚱이는 있으나 정신은 몸을 떠나 흑‧백 돌 속에 들어가 있으니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고깃덩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사는 “말법에는 출가 비구 신심이 재가 거사만 못하다. 재가 거사 신심이 재가 여인만 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법을 배우는 자는 많으나 불법을 성취한 자는 적다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느냐”고 했다.

“스님이 종을 둬서야”

선사는 “스님들 가운데 종을 두고 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자가 있다. 출가인에게는 제자가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돕고 있는데, 어찌 종을 두어 이런 일을 시키는가”라고 했다.

선사는 “출가한 스님이 자기 제자를 부귀한 집 자식같이 총애하여, 돈을 들여 종을 사서 밥을 짓게 하고 땔감을 해 오게 하며, 양산을 바치게 하고 바느질을 하게 한다. 아, 말법의 폐단이 어느덧 여기까지 이르렀구나!”라고 했다.

“진정한 도인 참으로 어렵다”

선사는 “업을 짓는 자가 100명이면 그 가운데 선업을 짓는 자는 1~2명이요, 선업 닦는 자가 100명이면 그 가운데 도를 배우는 자는 1~2명이다. 도를 배우는 자가 100명이면 견고하고 오랫동안 지켜 나가는 자는 1~2명이다”고 했다.

이어 “도를 견고하고 오랫동안 지켜가는 자가 100명이면 견고하고 또 견고하며 오랫동안 그 마음을 지켜 보리심에 이르도록 퇴보하지 않는 자는 겨우 1~2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최후 사람이어야만 진정한 도인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부처님도 직언은 기뻐했는데”

선사가 머물던 운서사에서는 청규에 따라 보름마다 대중의 허물을 직언해야 했다. 이것이 대중을 화합하지 못하게 한다며 직언하는 청규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선사는 “그대는 승려가 아닌가? 승려라면 당연히 부처님 법을 따라야 한다. 대중의 허물을 드러내 숨기는 일이 없도록 했으니 그것이 자자(自恣)이다. 운서사 청규의 직언은 이것에 근거한 것이다. 부처님도 기뻐하신 것을 그대만이 기뻐하지 않으니 어찌 옳은 일인가”라고 했다.

선사는 율장도 인용했다. 율장에 어떤 스님이 잘못을 저질렀고, 한 스님이 이 사실을 부처님에게 고했다. 부처님은 허물 있는 스님을 크게 나무라며, 다른 이의 잘못을 보면 즉시 직언할 것을 계율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선사는 “‘임금에게는 임금의 잘못을 직간하는 신하가 있고, 어버이에게는 어버이의 잘못을 직간하는 자식

이 있다. 선비에게는 선비의 잘못을 직간하는 벗이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그대가 직언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아첨하고 간사한 자들이 가까이 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충간을 물리치고 거짓을 꾸미며 덕을 헐고 선업을 헤치게 해 결국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죽창수필┃운서주굉 지음┃연관 옮김┃불광출판사┃3만원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불자 2014-11-02 17:07:27
씨를 뿌렸으니 열매를 느긋하게 기다려봅시다.
산달이 되야 아기가 틴생합니다.미움도,중오도,멸시도
비웁시다.원장께선 강한행정승이며,조계사 성역불사는 꼭 지킬겁니다.
누구보다,우리보다,더욱 절절 간절한 구상입니다.
이젠미움은 멀리보내고 격려박수를 보내주시면 어떨련지요?
총본산 삽질이라도 하고 회양힌다고,,,,,,
떠나보내고 아쉬어 하지말고,눈물짓지말며,그리워하지 맙시다,
매도 맞을만큼,이처럼 강하신 행7핸정승이 였기에 정부나,종교집단에서도 조계종단
커다란 존재감 부인 못할겁니다,때때로 강한목소리로 말씀도 잘하시던데,
지켜보시며 아름다운 말씀으로 성숙한 필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가을 떨어진 낙엽을 보며 무얼생각 하시나요? _()_

불자 2014-11-02 15:24:52
윤달맞아 팔공사 동화사, 갓바위, 은해사를 삼사순례 하였습니다
가는 절마다 많은 불자님들께서 우리 불교를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중생은 행복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원로스님, 조계종 어른스님,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모습은 부처님다운 모습이요
훼불하며 시끄럽게 떠벌리는자들의 모습은 사탄의 모습이요
진정한 불자는 불법승 삼보를 비방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불성에 경배하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