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숭배 사상: 연목구어 緣木求魚
뼈 숭배 사상: 연목구어 緣木求魚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4.10.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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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19

I. 기독교의 성물집착

십자군 전쟁 당시의 유럽기독교계는 성물(聖物 성스러운 물건)집착에 빠져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성물이 기도를 들어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는 성물이 하나라도 있어야 기도객을 많이 유치하고 기부금을 충분히 흡족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광적으로 성물유치 사업에 빠져들었다.

(이 일은, 아직도 그 여진이 남아있는, 한때 우리 불교계를 휩쓸던 진신사리 봉안 소동과 비슷하다. 남방불교국가들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온다고 야단이 났었다. 만약 성물에 그토록 신비로운 힘이 있다면 왜, 가지가지 온갖 종교적 성물이 부지기로 존재하는 인도가 그 모양 그 꼴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성물들이 그렇게 영험하다면, 성물주인이 살아있을 때는 그 영험함이 엄청나게 더 컸을 터인데, 왜 그 당시는 아무도 소원을 빌지 않았는가? 그리고, 꼭 죽은 후에야 영험해지는 이치는 또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거대한 사리탑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런 영특한 성물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류역사에서, 귀한 것이 흔한 적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지상은 이미 오래전에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십자군 전쟁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성지(예루살렘)에서 성물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조각), 예수의 수의(조각), 최후의 만찬장의 포도주잔(Holy Grail 성배 聖杯) 등 매혹적인 대상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예루살렘으로 가기만 하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예수의 유물이 아니더라도 기독교 성자들의 유품만 획득해도 성공이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인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던 16세기 초에도 성물(聖物)을 보고 만지면 죄가 사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연옥에서 불(火)정화와 고문을 당하지 않는다). 죄에서 벗어난 신자들은 교회에 돈을 바쳤으며, 성물을 소유한 교회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루터가 살던 독일 비텐베르크에도 (십자가)나뭇조각, 뼈, (십자가형을 받던 날 예수의 머리에 씌운) 가시, 머리카락을 전시한 곳이 있었다.

기괴한 성물로는 예수의 은밀한 곳의 거시기 피부(귀두피 龜頭皮)를 모신 사원도 존재한다. 성녀 아무개가 기도 중에 신랑 예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그걸로 만든 반지를 받았다고 한다. 영적결혼의 징표로 받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그리고 자극적인) 예물이다. 그 사원이 무슨 소원에 영험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렇지 않은가?

종교는 정말 재미난다. 그런데, 그 재미나는 얘기를 정색을 하고 근엄한 얼굴로 더없이 장중한 톤으로 하니, 우매한 중생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풍성한 수염으로 인하여 사자머리처럼 위압적으로 보이는 동방정교회 신부들이 그런 역할을 할 때는 압권이다. 종교를 바꾸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4월 1일 만우절은, 시시한 거짓말로 서로 속고 속이며 히히덕거릴 것이 아니라, 인류가 그동안 얼마나 종교의 거짓말에 속아왔는가를 상기하고 이제라도 ‘종교의 거짓말에서 벗어나자’고 굳게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 구교인 가톨릭에서 예수는 기도대상으로서는 6번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2, 3, 4, 5번째를 지나 여섯 번째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수많은 성자들 중에서, 잡다한 소원과 가지가지 질병에 맞추어 거기 맞는 성자들에게 성공과 치유의 소원을 빈다. 다행히 가톨릭은 수만 명의 성자(saint)들을 자랑하므로 각각의 성자는 각각의 전문분야를 자랑한다. 철저히 전문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무좀을 나으려면 ‘치퇴좀무’ 성자에게 빌어야 한다. 하하하.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려면 반드시 복수의 기적을 행했다는 증거를 바티칸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하늘을 날았다든지, 비를 내렸다든지, 총알을 피해갔다든지, 또는 기적적으로 고질적인 중증 무좀을 치료했다든지 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가톨릭은 기적집착증후군(miracle-addiction syndrome)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증상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 가톨릭이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제도를 폐지한 후에 가톨릭 성인(聖人) 수가 급증하였다. 성인 후보자가 생전에 행한 기적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의문을 제기하던 역할을 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세우지 않자 공인받는 기적이 급증한 것이다. 

II. 인과관계의 오인

기도로 인한 성취는 많은 경우 원인과 결과의 오인(誤認)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A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B가 연이어 일어나면, A가 B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선행한 사건이 후행한 사건의 원인일 필요가 없다. 어디, 까마귀가 난다고 배가 떨어지랴? A가 먼저 발생하고 그 다음에 B가 발생했다고 해서, A가 B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50살 먹은 당신이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해뜨기 전에 화장실에 갔다고 해서, 그게 지난 50년 동안 아침마다 제시간에 태양을 떠오르게 한 원인은 아니다. (웃을지 모르지만, 윤리적인 이유로는 과민성대장염이나 변비에 걸린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늦잠도 못 자고 휴일도 없이 아침마다 어김없이 제시간에 떠올라야 하는 불쌍한 태양에게, ‘당신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 (태양이) 늦잠을 못 자게 하는 징크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태양신을 섬기던 중미(中美)의 아즈텍 인들은 혹시라도 태양이 다음날 떠오르지 않을까 두려워서 높다란 피라미드 위 제단에서 수백 년 동안 매일매일 사람을 죽여 태양신에게 심장을 제물로 바쳤지만, 이 일이 태양이 떠오르게 한 원인은 아니다. (이 인신공희人身供犧는 1520년 스페인인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태양은 여전히 떠올랐다. 전날보다도 더 핏빛으로 빛나면서.) 단 하루라도 제물을 안 바치고 시험을 해보았으면 될 것을 소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행여 지구의 종말이 올세라 꿈도 못 꾼다. 사람은 스스로 구속될 뿐이다.

제주도 돌하루방 코를 만진 사람들 중 반은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 그렇다고 돌하루방 코를 만진 것이 아들을 낳은 원인은 아니다. 코를 만지고도 딸을 낳은 같은 수의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아프리카 밀림의 침팬지들은 많아야 200여 마리의 무리를 이루고 산다. 지금도 뉴기니나 아프리카나 브라질에 살고 있는 석기문명 원시인들은 그 정도 크기의 무리를 이루고 산다. 작은 무리 속에서는, 경험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으므로 즉 표본집단이 작으므로, 통계적인 착각이 일어나기 쉽다. 신뢰할 만한 통계를 얻으려면 상당히 큰 샘플이 필요한데 작은 집단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착각 또는 망상을 일으키기 쉽다. 지금 인간은 그 수가 70억 명을 넘어서서 사방에 유의미한 통계가 넘치고 넘치는데도, 인간은 아직도 석기시대 원시인의 습성을 못 버리고 있다.

사주팔자도 엉터리이긴 다른 미신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나, ‘토정비결’은 저자 이지암이 그 비결을 저자거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관찰함으로써 얻었다고 전하니 통계적인 접근방법만은 높이 사줄 수 있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초면(初面)일지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즉 직업이나 성품이 어떠한지) 상당히 유의미한 추측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니(그것도 큰소리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술(術)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특히 불교계에 많다.

기독교와 같은 유일신교는 ‘신’이라는 엄청나게 큰 초(월적인) 특대 망상을 하는 반면에, 불교인들은 작은 망상을 무수히 많이 한다. 아마 양측 다 망상총량은 동일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망상총량불변妄想總量不變’의 법칙이다. 유일신교인들은 망상을 하나(神)로 몰아서 크게 하고, 불교인들은 여럿(잡다한 迷信)으로 잘라서 작게 한다.

풍수지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음택풍수(陰宅風水)가 그러하다. 정보가 부족했던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사방에 정보가 차고 넘친다(예를 들어, 뭐든지 인터넷으로 구글google해보라. 대부분,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을 금방 검색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묏자리와 그 후손의 성공을 추적조사하면 그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대관절, 죽은 사람의 뼈다귀가 신통력을 발휘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도 전망 좋은 곳에 묻힌 뼈다귀는 왜 갑자기 힘이 세 진다는 말인가? 생시에 경치 좋은 곳에 살면서도 힘이 없던 자가, 죽어서 그 좋은 경치를 볼 눈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돌연히 힘이 세 진다는 말인가?

(팔이 있을 때도 팔씨름만 하면 지던 자가 정작 팔이 없어지자 팔씨름을 잘한다는 말이나, 혹은 이가 있을 때도 이를 간 적이 없던 자가 이를 다 잃자 갑자기 이를 ‘뿌드득 뿌드득’ ‘들들’ 간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닌가?)

여기에도 역시 원인과 결과의 착각(전도몽상 顚倒夢想)이 도사리고 있다. 묏자리가 훌륭한 것은 망자가 그런 자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권력과 부가 있었다는 말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즉 묏자리를 잘 써서 권력과 부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밭 한 뙤기 없는 서민이라면 무슨 수로 명당에 묏자리를 쓸 수 있겠는가?

불교계에는 사주팔자, 궁합, 토정비결, 풍수, 점치기 등의 미신이 아직도 창궐하고 있다.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는다. 합리적인 부처님을 본받아 이치에 맞게 사유를 하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미륵반가사유상’을 박물관 깊숙이 모셔둔 결과이다. 불교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불교 최고의 무기인 ‘사유(思惟)’를 사장시키고자 일부러 (박물관에) 유폐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문화재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을 해서. 종교적인 수행의 보조도구를 문화재로 만드는 것은 그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종교창시자들이 지하에서 눈물을 흘릴 일이다. “내가 왜 박물관유물이 되어야 하느냐?”고. 음침하고 어두운, 찾는 이 없는 박물관의 유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즉, A, B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해서, A가 B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B 역시 A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A가 B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려면, 첫째로 ‘A를 하면 반드시 B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둘째로 다른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A를 안 하면 B 역시 안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며, 셋째로 A가 유일한 이유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A가 아닌) C를 할 때도 B가 일어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운동선수들의 터부·징크스라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착각한 것이다. 또 설사 A를 하면 B가 일어나고, 또 A를 안하면 B가 안 일어난다 하더라도,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횟수가 중요하다. 얼마든지 우연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털을 뽑았더니 홀짝 맞추기 게임에서 이겼다면,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1/2(1/2)=1/4이다. 3번 연속 일어나려면 1/64의 확률이며, 6번 연속해서 일어나려면 1/4096 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만약 1,000번 연속해서 일어난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의심할 만하다(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2의 1000승분의 1로서, 2의 1000승은 0이 250개가 넘게 달려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수이다. 따라서 확률은 0.000······(250개 0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0001 이다). 무슨 이유로 그러한지는 몰라도, 뭔가 이유가 있을 확률이 크다. 설사 코털을 뽑는 것과 홀짝을 맞추는 것이 진짜 인과관계(원인과 결과)는 아닐지라도 엄청난 확률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에 어떤 중요한 정책변화가 있기 며칠 전마다 언론에 보도된다고 해서, 그 선행한 언론보도가 정책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단지 (제보자를 통해서) 미리 알고 보도한 것뿐이다. 둘 사이에는 전혀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관관계는 존재한다. 이렇듯, 사건 A가 사건 B에 선행한다고 해서 A가 B의 원인은 것은 아니다.

확률이 극히 희박한 일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다. 확률 1/n인 사건은 n이 얼마이건 간에 항상 일어난다. 인구 n인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번호의 로또 복권을 사면 반드시 한 사람이 당첨되는데 그 당첨확률은 1/n이다. 그러므로 매주 확률 1/n인 사건이 일어난다. n이 조(兆)이건 경(京)이건 조경이건 구골(googol. 1뒤에 0이 100개 있는 수. 전 우주의 모래수보다도 큰 수)이건 구골플래스(googolplex. 1뒤에 0이 googol 개 있는 수)이건 상관없다.

III. 유물의 진정한 역할

유물을 기리는 것은 그것이 신비로운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움 때문이다. 유물은 부모나 자식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생에 의욕을 잃다가도 이들의 사진을 보면 힘을 얻는다. 이 고해(苦海)로부터 우리의 질긴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우리 뇌(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들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이런 효과를 신통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성물(聖物)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진짜 신통력은 우리 마음이 부리는 것이다. 하찮은 성물을 보고 그 큰 마음을 내니 말이다. 성물로 인해서 성인의 가르침을 더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나고, 더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물의 기능이자 성물숭배이다. 만약 이런 효과를 볼 수만 있다면, 성물은 아무리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너머로 비약하면 미신이고 광신이다.

해동 화엄종사 원효스님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깨달음으로 이끈 것은 해골바가지였다. 명당은 고사하고 굴속에 버려져 뒹굴며 썩어가던 이름 없는 해골! 우리로 하여금 세상(몸과 마음과 기세간)의 실상(實相)을 바로 보게 하여 이 사바세계의 고통을 벗어나도록 인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성물이다.

삼천대천세계에는 사망한 유정·무정이 즐비하건만, 그들은 태고 이래로 말이 없다. 말을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우리 마음이다. 

자주 들리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갈 때마다 한없이 감동한다. 그곳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의 신통력에가 아니라, 그 먼 이역 인도 땅에서 동쪽 끝 이 땅까지 사리를 모셔온 선인들의 구도심과 스승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에 감동한다. 그리고 대웅전에 앉아 그분의 가르침을 묵상하노라면 한줄기 불어오는 미풍에도 혹시 그분의 숨결이 느껴질세라 숨을 죽인다.

IV.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2,500년 전에 서쪽 땅에 몸을 나투신 부처님은 무한 보배를 남기셨건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흙덩이를 좇는 구자와 같구나. 사자라면 흙덩이를 던진 팔뚝을 물고 금빛 갈기를 휘날리며 승천을 하여야 하건만, 무상(無常) 중의 무상인 뼈라니 엉뚱한 곳에서 부처님을 찾는구나.

부처님은 자신을 보고자 하면 살아계신 32상 80종호도 떠나라고 하셨건만, 생기없는 유물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머리를 조아리는가.

버리고 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진정 소중한 것이 나타나는 법이거늘, 사(死)(에 대한 집착. 환망공상과 욕망과 미련)를 버리지 못하니 생(生)(에 대한 집착. 환망공상과 욕망과 미련)도 버리지 못한다.

무수한 중생이 생멸을 거듭하고 부처는 단 한 번 왔다 가버렸건만, 갈애(渴愛)는 그를 소재로 삼아 주인 없는 동산에 환망공상으로 끝없이 꽃을 피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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