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익재 이제현(1287-1369)의 <역옹패설(櫟翁稗說)>은 패관문학의 압권이기도 하다. 이 책에 이천서씨의 풍수설화가 적혀있다.
<<국초에 서신일(徐神逸)이란 자가 교외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슴 한 마리가 몸에 화살이 꽂힌 채 뛰어들어 왔다. 신일이 즉시 꽂힌 화살을 뽑고 숨겨주어 쫓아온 사냥꾼이 찾아내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사례하기를, “사슴은 내 아들이오. 그대의 은혜를 입어 죽지 아니하였으니, 그대의 자손을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신일이 나이 80에 아들을 낳았으니, 그 이름이 필(弼)이다. 필이 희(熙)를 낳고, 희가 눌(訥)을 낳아 과연 서로 이어 태사, 내사령이 되었고 묘정에 배향되었다.>> (민족문화추진회 편)
풍수설화에서는 여기서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서신일은 사슴이 숨었던 자리가 명당이라는 신인의 말을 새겨서, 자기가 죽을 때 그 자리에 자기를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명문가의 풍수유산 중에 동물이 등장하는 것이 다수 있다. 창녕성씨 시조 묘와 충주인 박응훈의 선친산소는 호랑이가 점지해 준 것으로 유명하다. 강릉의 선교장은 족제비를 따라가다가 찾은 명당이었다. 이런 설화의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풍수를 배우지는 않았으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풍수적 감각이 본능적으로 살아 있어서 자연의 변화나 동물의 생태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명당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동물이 점지해 주거나 신선이 나타나서 점지해 주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나 자신의 내공으로 주어진 기회를 잃지 않았다는 편이 설득력 있다. 이런 경우 좋은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풍수를 잘 알지만, 주위에 소문이 나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동물이 점지해 준 것으로 말을 꾸며 내었을 가능성도 있다. 옛부터 각 집안마다 비밀리에 전하는 풍수가 있었다. 가풍(家風)이란 말도 여기에 근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명당이란 하루아침에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그 징험을 알기도 어려우니 수 년 또는 수십 년을 기다려서 명당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생태적인 행동에서 검증을 해준 매개체였을 가능성도 있음 직하다. 짐승이 숨거나 배설하거나 오래 머무는 곳이 좋은 자리라는 속설이 있다. 동물도 아무 곳에서나 새끼를 낳거나, 배설하지는 않는 생태적 습성이 있다.
인천 남동공단의 모 중견기업 회장이 불러서 갔다. 책상과 출입구의 배치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대뜸 “풍수는 왜 보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내가 여기에 앉아보니 좀 찝찝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입구의 위치를 바꾸라고 조언을 해 준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풍수적인 감각이 있다. 다만 자기 수준 만큼이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공간선정이나 공간 배치에 관한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이렇게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흉한 것을 피하는 능력을 지닌다. 사람은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공간에 대한 선택을 한다. 공간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하기도 한다. 넋 놓고 살지 말고 공간 선택에 만전을 기하라. 풍수는 삶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