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왕따’하지 마라
부처님을 ‘왕따’하지 마라
  • 불교닷컴
  • 승인 2006.03.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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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단사로 인한 양 종단의 다툼을 경계한다


‘한국불교정통종단의 역사 <태고종단사>’는 태고종 ‘종단사간행위원회’가 지난 1월 20일 발행한 책의 제목입니다. 비매품인 이 책의 내용으로 조계종은 본사주지회의를 소집하는 등 발끈하고 있습니다. 근세 한국불교사에 대한 인식은 하나하나의 사건에 접근하여 시시비비를 따질 때 결코 얻을 것은 없으며 오히려 날로 힘없어져 가는 불교계의 에너지만 소모합니다. 그리고 한국불교 정통 종단사를 쓰려면 객관성 있는 전문 학자 집단에 의뢰하거나 조계종과 협의하여 공동으로 할 때만 그 사실적 객관성이 인정됩니다. 현실에서 이 종단의 적은 저 종단이고 저 종단의 적은 이 종단이라는 식의 발상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아래 글은 태고종을 폄하함도 조계종을 추켜세움도 아닌 필자 개인의 느낌임을 전제하며 양 종단의 화합을 바라는 마음에서 삼가 씁니다.

중 냄새를 압니까?

유년시절 초등학교를 10리를 걸어서 다녔다. 대부분의 농촌 아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나 필자는 당시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집-필자의 집은 절이었다-과 학교가 가장 먼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자 내 주변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려댔다. 몸에서 중 냄새가 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중 냄새가 어떤 것인지 지금도 모른다. 아마 승복에 밴 향내를 일컫는 것인지 아니면 특별히 중 냄새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중 냄새가 난다며 소위 ‘왕따’를 시키는 것이었다. 필자 나이가 쉰이 이미 넘었으니 약 45년전에 근래 각급 학교들에서 유행하는 왕따를 경험한 것이다.

다른 농촌의 아이들과는 좀 다르게 유난히 흰 피부에 공부도 상위권에 들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하루하루 생활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는 몸에 코를 대보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어린 중아들로서 그것도 45년 전 한 어린이가 겪은 것은 한순간 해프닝이 아니라 몸서리 처지는 고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5학년 때 전학을 하고서는 좀 나아진 편이였으나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생이 되니 좀 나아졌다. 그러나 초등학교시절에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와 절을 오가는 시계추와 같은 생활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중학생이 돼서야 불서를 읽게 되고 아버지의 직업인 중이 무엇인지, 석가는 누구이며 어떠한 생을 산 분인지, 그리고 비구대처의 의미도 알게 됐다. 이것이 한 대처승 자식의 유년시절의 대략적인 삶이었다. 솔직히 말해 내 자신을 살필 때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문제 학생으로 타락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중 냄새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도 풀지못한 평생의 화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본사로부터 몇몇 스님들이 임명장을 갖고 와서 절을 내 놓으라고 했다. 되돌아보건대 부친이 한달 정도의 말미를 달라며 순수하게 절을 비워주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후 절을 내 주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속가의 조카가 태고종 소속으로 주지로 있다. 필자가 태고종이나 조계종에 자신 있게  한마디 할 수 있는 핑계로서의 과거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 운동

정체성(Identity)은 ‘변화 속에서 한 개인이 견지하는 내면적 연속성과 역사 속에 이뤄진 기본적 확신’이다. 초등학생들이 중아들을 왕따한 것은 출가 승려는 독신이어야 한다는 역사적 사실이 유전적으로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목사아들에게서 목사 냄새난다고 하지 않는 것은 목사들의 결혼은 사회적으로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출가 스님들은 독신이어야 한다는 것은 불교집단에서의 불문율이다. 일제 36년간 강점기가 없었다면 대처승은 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번 태고종단사 간행위의 발표문을 보면 “불교법난이 일어날 당시 전국의 1,100여 사찰에 승려 수는 6,500여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96%인 6,240여 명이 교화승인 사판승이었다. 그 많은 스님과 권속들을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사찰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승려들의 일방적인 편을 들어 전국의 사찰을 불법적으로 강제 점령하고 사판승을 내치도록 하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 고 적고 있다. 권속(眷屬)이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1.식구. 가족. 2.친족. 3.(남 앞에서) 자기의 아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로서 한마디로 처자식 아닌가? 한국 불교사 어디에 처자식을 두는 교화승제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태고종 홈페이지(http://www.taego.org/)의 안내에서 ‘종단의 특성’을 ‘이념적 진보 종단’이라 규정하고 ‘태고종은 자기 수행만을 위주로 하는 은둔적이고 폐쇄적인 소승적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 속에 뛰어들어 직접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며 중생구원의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대승교화 종단으로 취처와 가족생활을 인정하는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행집단인 불교의 수행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수행을 은둔적 폐쇄적이라 폄하하고 있다. 수행을 부정한 불교는 그 생명력을 스스로 삼제(芟除)한다. 태고종에 일부 독신승려가 있다하여 비구 대처 혼합 승단이 아니며 조계종에 만일 처자식이 있는 승려가 있다하여 대처종단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 파계승은 존재했어도 취처승의 개념은 없었다. 원효가 설총을 낳았지만 대처승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파계승 소성거사라고 했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불교 국가는 처자식을 둔 승려는 파계승으로 규정한다. 즉 전통 불교 교단은 독신 출가자로 이뤄지는바 오로지 일본 불교만이 메이지정권 때 대처 및 육식을 허용했다. 이후 출가자들의 세속화가 확산됐고 일제는 우리나라에 본 제도를 시행케해 승려가 처자식을 두게 됐다. 이미 1910년대 송광사 같은 전통의 고찰에서 대처승이 생겨났으니 이를 파계승이라 해야 옳다. 태고종단은 ‘한국불교정통종단의 역사’라 주장하기 이전에, 이승만 박사가 정치적으로 불교 탄압을 위해 대처승을 핍박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비구들이 종조를 바꿔가면서까지 폭력으로 대처를 몰아냈다고 항변하기 이전에 일제 식민지 잔재인 대처승에 대한 발로 참회부터 해야 한다.

지면상 일일이 다 거론 할 수는 없으나 일제는 1926년 비구계 자격을 삭제하도록 각 본산에 조치하고 대부분의 본사가 이를 수용했다. 이후 처자식을 가진 승려도 본말사의 주지가 되자 사찰은 급속히 세속화했다. 솔직히 말해 필자의 유년시절 사찰이 유흥의 터로 제공되는 현상을 수 없이 목격 했다. 사찰이 처자식의 양육을 위한 생계 수단의 직업장화 했음이 역사적 사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5년 경기도에서 개운사 등 10개사 사찰에서 식당을 경영했다고 한다. 일제도 너무하다 싶어서 총독부가 직접 나서서 각 도지사에게 사찰정화 대책을 지시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경허 스님 등을 중심으로 수선결사운동과 1921년 선학원을 건립했다. 이승만 박사의 유시는 구실에 불과하다. 과거 어느 시대 어느 스님을 종조 또는 중흥조로 하고 그 맥을 우리가 이어왔노라 주장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태고사를 조계사로 개칭하고 종권을 빼앗아 갔다 아니다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비구승들이 폭력으로 대처승을 몰아냈다 아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독신 출가 비구 비구니에 의해 면면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는 근본적 사실 앞에 <태고종사>에서 내세우는 어떠한 주장도 합리화될 수 없다.

1940년도 당시 500여명이 안거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비구나 비구니로서 대처를 부정하고 수행자의 본분을 지킨 역사적 증인들이다. 바로 한국불교의 지킴이들이었다. 해방 후 승단의 정화는 ‘스님들은 독신이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바탕으로 한 비구승들에 의한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 운동이다.

누구와 무엇을 위해 분규의 재탕을 바라는가?

태고종단사 발행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오로지 조계종과 분규 재발의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뼈아픈 역사의 산물인 불교사 앞에 비구나 대처승 모두 피해자다. 분규사는 양 종단의 주장이 쉽게 합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태고종이 종단 차원에서 끄집어낸다면 그나마 자리 잡아가는 양 종단은 모두 큰 상처만 남길 게 뻔하다. 조계종 태고종 양 종단의 어떠한 다툼도 소모적이며 한국불교를 말살하려는 세력이나 불교의 번창을 막으려는 세력에게 이로움만 줄 뿐이다. 태고종단사 간행위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계종 태고종 양 종단에 바란다

필자는 태고종에 대해 남다른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태고종단 역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내 부친을 부정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시대의 피해자라며 역사를 핑계 댈 수밖에 없다. 태고종이 과거를 넘어 한국불교의 대표자리에 우뚝 서려면 해방전후 분쟁사에 얽매이거나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태고종만의 장점을 잘 살려서 종단의 장기 발전방안을 세워 전법에 매진해야 한다. 해방 전후 조계종사나 태고종사는 어느 일방의 주장만 갖고 따질 일도 서로 간 얼굴을 붉힐 일도 아니다. 얼추 반세기가 지나는 시점이다. 구태여 한번 과거를 짚어보려 한다면 양측의 관련 학자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역사의 이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종단 역시 태고종사의 발간에 교구본사주지회의를 소집하고 종단 전체가 벌집 쑤신 양 떠들 일이 아니다. 장자 종단이면 장자 종단의 위상에 걸맞게 그야말로 무게감 있게 대처해야 한다. 항의 방문을 해서 무엇을 따질 것인가? 멱살잡이라도 할 것이란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이라는 것은 풀어가는 묘가 따로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태고종에 큰소리칠 자격은 충분한지도 스스로 살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부디 조계태고 양 종단은 이번 다툼에서 더 큰 우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양 종단이 과거사 문제로 싸워 뉴스거리가 되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면 이는 대한민국에서 부처님을 왕따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부처님도 ‘풀로 진흙땅을 덮듯 해서 없앨 것은 없애라’ 하지 않았는가?

空者 一切 生死
不空者 謂大涅槃
헛된 것은 지각없는 생활이요
헛되지 않은 것은 본래의의미를 회복해 가진 삶이다. - 元曉  -

/法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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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2006-03-21 07:19:42
이 양반, 스님인지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본질을 모르는구만, 이보쇼, 그시절 어릴적 가슴에 상처 없었던 사람이 누가 있겠소.이 개화된 세상에 중은 독신이라야만 된다는 그 발상, 전하는 기록만 기록이겠소? 얼마던지 취처승이 있는걸로 알고 있소. 티벴,중국.몽골등등. 뭘알고 제대로 좀 쓰시길.조계종에서 한용운스님을 선생이라부른다는데 그럼 해마다 열리는 만해스님행사엔 그렇게 불리나,한용운선생행사로? 경허스님 말년에 개마고원에서 훈장하며 속한이로 살던때는 어떻게 하고, 우리모두 긴 안목으로 역사를 봅시다.

사리불 2006-03-19 23:56:18
한 마디만 더 합시다. 태고종 종단사 간행위원회에서 태고종사 발간한 것 자기들 일 아니오. 조계종에서는 총무원이나 선우도량이나 각 사찰에서 태고종이나 조계종에서 말하는 대처승 비판 내용의 책자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 지 스님도 아실 것입니다. 태고종에서 한 마디라도 하던가요? 종단사 간행위라는 것도 태고종 총무원을 미덥지 않게 생각해서 태고종 총무원의 지원 없이 자기들이 회비 마련해서 자기 회보 만들듯이 책자 만들어 낸 것 아니오?

사리불 2006-03-19 23:52:41
글쎄..결론은 그럴듯 하오만...현재 조계,태고종에서 합의를 통해 분규사찰문제를 정리하려고 하는 것은 아시지요? 왜냐하면 한 번도 들어 와 본 적이 있는 조계종 승려가 버젓이 태고종 사찰의 주지로 임명되어 있는데,등기도 조계종명이 표기되어 있기때문이오. 그것을 태고종이 아닌 쪽에서는 법적으로 조계종이라고 우기기 때문이지요. 조계종은 소위 그 법적 주지라는 것을 이용해서 천년고찰 왕십리 안정사를 아파트업자에게 팔아넘기고,역시 천년고찰 신촌 봉원사 땅 일부를 16억에 팔아넘기고 ,400억에 달하는 땅을 팔겠다고 공지했다는 것도 알고 계시지요? 왜 이런 작태가 벌어졌겠습니까? 저 윗물부터 그런 자들이 이어왔기때문이라면 억측일까요? 앞과 뒤가 다른 것 말이오. 스님의 아들로서 맘 고생이 심했겠습니다만 스님의 아버지나 조카 등이 지킨 절이 얼마나 컸던가요? 다 어려운 절만 지켰고 그도 좋아지면 얼마전 완주 봉서사처럼 또 처들어 오지 않았던가요? 스님의 분한 문제는 솔직하게 서로 터놓고 고민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구마라지바,밀라레빠,원효,만해가 정녕 거사인지...승려인지...그리고 종조문제도 좀 정정당당하게 법대로 고민해야지요

수보리 2006-03-19 10:09:34
모처럼 좋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정체성이 왔다갔다하시는 분인줄 알았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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