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의 수십 년 공부를 한 번에
탄허 스님의 수십 년 공부를 한 번에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4.05.16 16: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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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CD 발간…“듣고 나면 누구나 말발‧글발 생길 것”

탄허 스님(1913~1983) 생전의 이야기이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1903~1977)가 어느 날 학생들을 데리고 탄허 스님을 찾았다. <장자> 내칠편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다. 1주일간 스님의 강의가 끝났다. 10살 연장자인 양 박사는 스님에게 절을 했다. “장자가 다시 태어나 강의를 해도 탄허 스님만큼 못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도서출판 교림이 펴낸 탄허 스님 오디오 강의집 <동양사상>

CD 18장에 스님 육성 법문 담겨

스님은 예언가로도 알려졌지만, 유불선 동양사상을 회통한 대사상가였다. 역경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선지식이었다.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스님이 1977년과 1982년 두 차례 법문했던 화엄학과 유‧불‧선 특강이 <동양사상> 제목을 달고 오디오CD 18장에 담겨 나왔다. 기존 발매된 오디오 테잎에서 잡음을 제거한 것이다.

스님은 1977년 월정사에서 매일 8시간씩 강의를 했다. 1~12번 CD에 내용이 담겼다. 1982년스님은 3개월 동안 강단에 섰다. 이 때는 스님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 6시간씩 강의가 진행됐다. 13~18번CD에 수록됐다.

특강은 대학원 수료자거나 유교 <사서삼경>을 터득했거나, 불교 강원에서 대교과를 마쳤거나, 선원에서 10안거를 마친 스님이 대상이었다. 당시 무비 스님(前 역경원장), 성파 스님(통도사 서운암), 통광 스님(前 쌍계사 강주), 각성 스님(前 통도사 강주), 김종서‧김선형‧김상숙 교수 등 80여 명이 스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모였다.

<동양사상>을 펴낸 교림 서우림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스님 생전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평생 스님 원고‧말씀을 정리해 책으로 오디오 테잎‧CD로 펴내왔다. 서 대표는 “스님의 서간문만 정리해서 펴내면 모두 끝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30~40년 공부할 것을 몇 달에 하니 여러분은 잘 들으시오’라는 스님의 육성이 생생하다”며 “스님의 강의를 듣고 나면 누구나 말발‧글발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구입문의 (02)733-3334 / www.tanheo.com

탄허 스님은 늘 법상이 아닌 강단에 섰다. (사진=탄허불교문화재단)

한암 스님이 탄허 스님에게 법 전한 까닭

서 대표는 한암 스님이 쟁쟁하던 상좌들을 제치고 막내에 가깝던 탄허 스님에게 의발을 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스님에게는 탄허 스님보다 먼저 깨우친 난암‧보문 스님이 있었다. 만암 스님의 의발을 탄허 스님이 전수 받자 대중이 수근거렸다.

서 대표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암 스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난암 스님은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 두목이 됐고, 보문 스님은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암 스님은 미리 앞을 내다봤던 것”이라고 했다.

서 대표 “큰스님? 가는 날 밝히고 가봐라”

서우림 대표(도서출판 교림)
탄허 스님은 1965년 서울대‧한양대 병원 두 곳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두 병원 의료진이 모두 시한부를 선고했다. 스님은 담당의사를 대원암으로 불러 “병이 어떻게 사람을 잡아가느냐”며 입적하는 날짜를 예고했다. 1983년 음력 4월 24일이었다.

입적을 예고한 당일 대중이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여여(如如) 하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그럼 여여하지 몽롱하냐, 멍충아.”

약속한 시간이 되자 스님은 서 대표 팔을 베고 원적에 들었다.

서 대표는 “살아서는 누가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갈 때 생사를 자유자재 하는 모습에서 공부 수준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절 집에서 시체 장난을 많이 한다. 누운 채로 숨을 거둬도 상좌들이 가부좌 튼 상태로 앉히고 10분만 유지하면 그대로 굳는다”고 했다.

서 대표는 “그러지 말고 제대로 공부해서 힘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가는 날을 밝혀보라”고 했다.

“검소‧절식 복 아껴야 장수”

서 대표는 “입적 시기에 즈음해 스님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상에서 스님은 ‘백약이 무효일텐데, 중생들이 원하니 어디 한 번 해봐라’고 했다. 그러다 입적 전날 돌연 ‘가자’며 퇴원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스님은 항상 ‘복진즉사(福盡卽死)’를 강조했다. 정월 초하루‧보름에는 일종식만 했고, 생일에는 더 적게 공양을 드셨다”고 했다.

이어 “스님은 항상 우리나라 조사스님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 가운데서도 함허득통 선사를 추켜세웠다. 한국스님들이 중국 조사스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었다”고 했다.

한편, 탄허 스님은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법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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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2014-10-22 17:29:12
"必死則生必生則死" 요즘 "명량"영화의 이순신의 대사 이던데... 어디에 근거한 말일까요?

대한민국당원 2014-05-16 19:33:24
알아도 얘기하지 않지요. 그런 걸 가지고 큰스님이네? 작은 스님이네 비교하는 자체부터가 의식 수준의 문제고요. 부처님께서도 열반하기 전 얼마 후, 열반에 든다고 하셨지요. 진심으로 궁금하시면 자신이 깨달아 보세요. 말장난하면? 염마대왕 만나서 큰일나죠.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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