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정신 내세워 세워진 종단에서
율장이 어쩌다 천덕꾸러기 됐을까
율장정신 내세워 세워진 종단에서
율장이 어쩌다 천덕꾸러기 됐을까
  • 미디어붓다
  • 승인 2013.06.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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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율장과 종단법의 갈등…율사들 뭐하나
“율장 정신 훼손 않는 선에서 종단법 제정돼야 마땅”
“그것은 율장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불법이고 인정할 수 없다.”

요즘 조계종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율장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놓고 이견이 속출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율장이란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기록한 문헌 일체를 일컫는 말로 삼장의 하나에 속하는 신성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율장 문제가 조계종에 자주 거론된다. 왤까. 율장에 벗어나는 행동이나 경우가 그만큼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불교도라면, 특히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삭발염의를 한 승려는 부처님의 근본계율로써 모든 행위의 규범을 삼아야 함이 마땅하다. 계율도 근본계율이 아닌 소소계의 경우 시대의 변화나 상황에 맞게 적합한 것으로 여러 차례 재해석되어 왔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불교적 이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행위의 규범도 끊임없이 재해석·제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부처님도 불가피한 경우 계율의 적절한 변용을 인정한 바 있다.


문제는 현재 종단의 법령과 율장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하나 둘 금이 가고 있는 현상이다. 율장이나 율장 정신을 근본으로 해 제정된 종단의 법령은 공히 종도들이 화합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행과 교화를 여법하고 일관되게 수행하기 위한 지침들일진대 왜 이렇게 파열음이 잦아지는 걸까.

아마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규정을 내키는 대로 바꾸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율장의 근본정신은 화합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화합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자의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율장에서 의미하는 승가화합의 기준은 갈마, 즉 올바른 승단회의의 실행여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율장에서 말하는 화합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계율학자 이자랑 박사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승단 운영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갈마를 통해 결정해야 하며, 이는 일정한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스님들의 전원 출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부처님의 법과 율에 근거해서 내린 판단만이 그 유효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6월 25일 열린 제194회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비구니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이 호계위원의 자격을 ‘비구’에서 ‘승려’로 바꾸는 개정안이 논쟁 끝에 부결되자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을 퇴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개정안에 대해 한 비구스님과 한 비구니스님은 공히 율장문제를 거론했다. “율장정신에도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과 “율장만 고집하고 시대변화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찬성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얼핏 들으면 율장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 한 중진 비구 종회의원은 한술 더 떠 “2500년 전 제정된 율장에 위배되느냐 아니냐를 들먹이는 것은 입법위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고까지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율장문제가 제기된 된 것은 종회 회의장에서만이 아니다. 법주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종단의 원로 설조 스님이 최근 현 원로의장의 승납 문제를 거론하며 원로로서 자격이 없다며 총무원장에게 종법에 의거해 정리할 것을 촉구한 것에서도 율장문제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쟁점은 승납을 비구(니)계 수지 이후부터 셀 것인지, 사미(니)계 수계 이후부터 셀 것인지로 요약된다. 설조 스님은 율장에 의거 승납은 반드시 비구계 수지 이후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미(니)는 승려가 아닌 예비 승려인데, 예비승려의 기간을 승납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율장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사미(니)부터 승납을 인정하면 율장에 정해진 비구(니)와 사미(니)를 구분할 이유가 사라지며, 결과적으로 부처님 당시의 엄격한 비구계(구족계) 위의를 흔드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94년 이후 개정된 승려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소급 적용의 문제점과 함께, 종단법이 율장을 넘어서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조 스님은 종법에 있으므로 율장 정신에 관계없이 승납 기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조계종의 설립 근간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조 스님은 조계종의 창종 근거인 ‘정화불사’에서 비구측이 대처측에 이길 수 있었던 근거는 오직 율장 정신이었음을 특히 조계종 종도들은 간과해서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대처측이 장악한 교단에서 교단법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정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조계종도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조 스님은 당시 비구측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웠던 ‘불법(佛法)에 대처(帶妻) 없다’는, 즉 비구측이 내세운 율장의 정신을 법원이 인정해 비구측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조계종도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율장 정신으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 교단을 되찾은 비구승 종단 조계종에서 오늘날처럼 율장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근본을 어지럽히는 것이며,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6월 25일 종회에서 언급한 “제33대 총무원장 소임을 맡으며 음수사원(飮水思源,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의 마음으로 수행하겠다는 각오로…”라는 것과도 맞지 않는 이율배반의 극치라는 게 설조 스님의 주장이다.

비구니 스님의 호계위원 진출 문제, 예비승려 기간의 승납 포함 문제 이외에도 율장정신을 근거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 현재 조계종단 도처에 상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율장 문제에 관한한, 옳고 그림을 정확하게 가리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율사들이 침묵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곳저곳에서 ‘율장정신에 어긋난다’, ‘더 이상 율장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이 분출하고 있는데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율사로서 직무유기이며 온당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율장 문제에 관한한 율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부를 가리고 율장정신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의 종법이나 원칙이 제정될 수 있도록 근거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율사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본다.

‘불법에 대처 없다’는, 그러니까 율장 정신을 명분으로 한 정화불사를 통해 창종된 조계종단에서 율장 정신이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지게 된 현실, 이거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 기사는 미디어붓다가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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