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스님 원공(圓空), 뛰는 스님 진오(眞悟)
걷는 스님 원공(圓空), 뛰는 스님 진오(眞悟)
  • 월간중앙 윤석진취재팀장
  • 승인 2012.10.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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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수행하며 세상 어둠 밝히는 보살행”

 

▲ 선방을 박차고 나와 매일같이 걷고, 틈나면 뛰는 스님은 분명 낯설다. 원공, 진오 두 스님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발 수행에 매진한다. 산중이 아니라 중생 속에서 깨우치는 또 다른 정진이다. 두 스님은 쓰레기를 줍고, 후원금을 모아 무명(無明) 세상을 밝히는 선행에도 앞장선다.
원공(圓空·68) 스님은 걷고, 진오(眞悟·50) 스님은 뛴다. 원공 스님의 걷기는 무려 34년째고, 진오 스님의 뛰기는 이제 11년째다. 원공 스님의 걷기는 자연스런 일상이고, 진오 스님의 뛰기는 마음먹고 벌이는 이벤트다. 원공 스님은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고, 진오 스님은 뛰면서 후원금을 모은다. 원공 스님은 쓰레기를 주워 오염된 자연환경을 살리고, 진오 스님은 모은 돈으로 다문화가정의 시름을 덜어준다. 두 스님의 보살행(菩薩行)은 서로 다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목적은 같다.

원공, 진오 두 스님은 발을 쓰는 수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불가에 ‘행각(行脚)’이란 말이 있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한다는 뜻이다. 행각은 ‘만행(萬行·卍行)’의 한 가지이기도 하다. 만행은 대승불교에서 현실 세계 속에서 중생과 함께하는 수행을 말한다. 행각의 각(脚)을 각(覺)으로 바꾸면 ‘돌아다니는 수행으로 깨닫는다’는 의미가 된다. 수행의 의미를 강조해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행각, 만행, 행선 등 용어야 어떻든 모두 사람이 발을 써서 수행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원공 스님과 진오 스님은 법랍(法臘, 스님 경력)도 각각 48세, 34세로 10년 차이나 난다. 출가 후 수행 내력도 전혀 다르다. 원공 스님은 1964년에 출가했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無門關)에서 혹독한 6년 수행을 온전히 마친 몇 안되는 스님이다. 무문관 수행은 식구통(食口桶) 외에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 사방이 막힌 독방에서 ‘폐문정진(閉門精進)’하는 것으로, 원공 스님이 마지막이다. 진오 스님은 1980년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해 1981년 사미계, 1986년 비구계를 받은 전북 김제 금산사 출신이다.

서울 도봉산 자락 선각원(蟬覺院)에 주석하는 원공 스님이 걷기 수행을 시작한 것은 1979년 가을 무렵부터다. 무문관 수행을 마친 뒤 2년 가까이 시일이 흐른 뒤였다. “막힌 선방에서 오래 있다 보니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또 “한 곳에 머무르면 집착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도 원공 스님이 속으로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사람은 직립 동물이다. 직립 동물은 다 걷는다. 직립 동물이 걷는 것처럼 그대로 하는 것뿐이다. 그냥 걷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말을 더 보탤 것이 없다. 속보로 걸을 때는 있다. 그러나 뛸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남을 앞서야 할 만큼 바쁜 게 없지 않나. 나는 운동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운동도 되고 밥맛도 생긴다.”

진오 스님의 뛰기는 마라톤이다. 2002년에 시작했다. 이유는 ‘건강이 나빠져서’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군 군법사 시절인 1987년 왼쪽 눈을 실명한 것이 계기였다. 흔히 ‘사이트 기지’로 불리는 공군 관제부대 산 꼭대기에서 눈 길에 미끄러지는 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장애인으로서 삶의 고통을 깨닫고 사회복지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경북 구미 대둔사(大芚寺) 주지인 진오 스님은 구미시 금오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에 나섰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매달린 까닭에 더 이상 봉사가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우선 내 몸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을 하게 됐다. 마라톤을 선택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마라톤을 시작한 후 ‘잘 뛴다’는 얘기를 자주 들을 만큼 내게 마라톤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0㎞, 하프코스, 풀코스 등으로 점점 뛰는 거리를 늘려갔는데 거뜬히 소화했다. 건강이 좋아져 2003년에는 마라톤에 수영, 자전거 타기를 잇달아 하는 철인3종경기에 입문했다.”

막힌 선방 박차고 나와 중생 속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행각도 분명 불가의 공인된 수행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원공 스님은 “걷기도 수행이냐?”는 물음에 한사코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답변을 뜯어보면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걷기는 걷기다. 굳이 수행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나는 걷지만 깨닫는다고도 말한 적이 없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걷다 보면 처음에는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걷기가 한나절을 넘어가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걷기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얻는 것 중 하나다.”

진오 스님은 뛰기도 수행이라고 말한다. ‘주선일미(走禪一味)’ 라는 불가에 널리 알려진 격언도 인용했다. ‘뛰는 것과 참선은 한가지 맛’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이름을 딴 불자 마라톤 동호회도 있다. “출발선에 서면 음악이 들려오고, 소풍 나온 아이처럼 조금은 들뜬 기분이 다. 10㎞쯤 달리면 목이 마르고. 20㎞가 되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30㎞ 정도에서 배가 고파지고, 이를 넘어서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골인하는 순간 다양한 상념이 불쑥 떠올랐다 사라지는 다양한 사고(思考)의 경계에 부딪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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