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북한의 역경사업
⑩북한의 역경사업
  • 이지범/북한종교연구소 실장
  • 승인 2012.08.23 0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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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불교의 재발견 시리즈
불교 최초의 역경은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이다. A.D 401년경 구마라집(鳩摩羅什) 등 역경승(譯經僧)들에 의해 인도의 언어로 된 부처님의 말씀을 한자(漢字)로 바꾼 그것이다.
이 한역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經藏), 계율 및 그것을 해설한 율장(律藏), 경(經)을 해석하고 체계화한 논장(論藏)을 모두 목판(木版)에 새긴 대장경(Tripitaka)이다.

최초의 대장경은 북송(北宋)에서 만들어진 『개보대장경(蜀版, 開寶勅版大藏經)』(971~983년)이다. 그 다음으로는 고려가 직접 만든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1011~1087년)이 세계에서 두 번째이다. 초조대장경은 1010년 거란의 침략이 있는 이듬해부터 76년에 걸쳐 판각되었다. 그리고 고려 고종 23년에 다시 판각한 것이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별칭 팔만대장경: 1236~1251년)이다. 이 가운데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대장경의 주석서인 『고려 제종교장(諸宗敎藏)』(고려교장 또는 별칭 續藏經: 1091~1101년)이 대각국사 의천스님의 주도로 조성되었다. 이 세 가지를 묶어 ‘고려대장경’이라 한다.

그러나 고려가 만든 초조대장경과 교장은 1232년 몽고의 2차 침략으로 말미암아 목판본이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고종 19년(1232) 12월 중순경 지금의 경기도 용인 처인성(處仁城) 전투에서 승장(僧將) 김윤후(金允侯)가 이끈 승군에 의해 몽고병의 적장 살리타이(撒禮塔)가 사살되자 물러났다.<『고려사』권103,「김윤후열전」> 그 후, 고려는 다시 대장경을 조성하였는데 그것이 해인사판 고려대장경이다.<李圭報,『동국이상국집』권25,「大藏刻板君臣祈告文」>

남북한의 역경사업

불경이 삼국시대로부터 구법승(求法僧)에 의해 들여오게 되면서 번역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기 위한 번역은 신라의 『향가』를 비롯하여 고려 균여대사의 『십구장원통기』, 조선시대의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등 한자 표기방식을 우리나라 말의 문자 형태로 옮기는 작업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오늘날의 역경불사로 불리는 역경사업이 시작된 것은 1921년 백용성 스님이 조직한 삼장역회(三藏譯會)로부터이다. 1950년대에는 운허·자운·석주 스님 등이 법보원(法寶院)을 만들어 번역을 추진했고, 1962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역경위원회가 설치되었다가 1963년 9월 역경위원장을 맡은 운허(龍夏耘虛)스님의 노력으로 1964년 7월 21일 동국역경원이 출범하면서 역경사업이 공식화되었다.

이 역경사업에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 평양 대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5월 금강산 유점사에서 경송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일제강점기에 만주의 봉천보성학교장(1929년) 취임과 조선혁명당 가입(1930년) 등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36년 경기 양주 봉선사에 불교전문강원을 설립한 대강백 운허(1898~1980년)스님을 중심으로 이종익·김달진 학자 등이 번역을 담당했고, 조지훈·서정주 시인이 윤문을 맡았으며, 최현배·이희승 등 국어학자가 맞춤법과 문장을 감수하기도 했다. 송광사 법정스님은 당시 편찬부장으로 실무를 맡았다.

한편, 1966년 한국 정부로부터 1천3백만 원의 국비(國費)를 처음 받게 된 동국역경원의 초대원장 운허스님은 “불교계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국고지원으로 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회고한 바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고려대장경 등 불경을 번역하는 역경사업이 모두 관(官) 주도로 추진되었다.

북한불교의 역경사업은 김일성 주석이 1947년 5월 묘향산 보현사의 현지지도에서 “8만대장경과 목판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라고 하여 영구보존에 대한 지침이 내려졌고, 1978년 8월에 다시 보현사를 방문하여 “8만대장경이 옛날의 불교경전이라고 하여 번역해 놓지 않으면 지금 사람들이 그것을 보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거기에 담겨진 뜻은 물론 민족문화유산도 잘 모르고 지낼 수 있다. 번역 해제하여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교시를 내림으로서 본격화되었다.

또한 “8만대장경을 해제하자면 큰 학자연구 집단이 있어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학자집단을 동원하여 번역 해제하도록 대책을 세우라. 많은 참고도서들이 요구되겠으므로 우리나라에 없는 것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라도 구해 와야 한다.”는 대책까지 마련해 주었다고 전한다.(심상진,『불교도들의 참다운 삶』,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2001. pp.79~80>,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태양의 따사로운 품』, 1995. pp.26~27.)

이러한 북한불교계의 각종 자료를 통해 보면, 북한 당국이 대장경의 번역과 해제 사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불교경전의 번역은 조선사회과학원 산하 민족고전연구소(소장 홍기문)가 중점적으로 맡았다. 『조선왕조실록』을 한글 번역한 홍기문(洪起文) 소장은 『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저자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喜)의 아들로서 1992년 7월 사망하기 전까지 고려대장경의 번역과 해제 작업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이 사업에는 홍화두 조불련 고문이 번역 감수(監修)를 맡았을 뿐 아니라, 1997년 망명하여 사망한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1965년), 주체사상연구소장(1979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1987년) 등을 맡으면서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민족고전연구소는 1993년부터 김승필 소장이 맡고 있다.

북한이 대장경 등의 번역을 단기간 내에 추진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해인사판 고려 재조대장경의 목판과 인경본(印經本)이 보현사 팔만대장경보존고와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등에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자집단이라 할 수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이 1946년 개교 당시부터 사학과, 문학과, 교육학과를 두었고, 1949년 9월에 역사학부, 조선어문학부 등을 다시 확대 개편했으며, 특히 1956년 8월에는 어문학부 내에 한문학과를 신설하고 한문학 강좌를 독립적으로 개설․운영할 만큼(『김일성종합대학 10년사』, 1956. pp.18~19>, <전영선,『문화로 읽는 북한』, 문예원, 2009. p.214.) 학술적으로나 인문학적 기반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 출처: 묘향산, 조선화보사, 2001: 묘향산 보현사 내 팔만대장경보존고 전경@이지범

북한불교의 역경사업 현황

옛날 고려가 거란, 몽고와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국토의 재건과 전사자들을 위로하는 대국민 통합의 의미로 집약하고, 당시 최고의 선진 문물을 통한 대장경 조성사업을 국책 프로젝트로 추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신생 정부의 문화·전통적 권위를 높이고, 일제로부터의 수탈과 약탈당한 국민들을 위로하는 방안으로 김일성 주석이 1947년 5월 묘향산 보현사를 찾아 고려대장경의 번역과 해제를 지시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1984년 6월, 그 당시 ‘묘향산력사박물관’으로 명명되었던 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에 ‘팔만대장경보존고’ 건립을 추진하고, ‘고려대장경’의 번역도 같이 병행하고 있다고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이 대장경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묘향산 금강굴에 보관하였다가 1988년 5월에 완공한 팔만대장경보존고에 다시 옮긴 것이다.<조선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팔만대장경해제-서문』, 사회과학출판사, 1990> 이 보존고에는 현재, 고려대장경 영인본 전질과 조선시대 인쇄목판본 3천여 점 등 서산과 사명, 처영대사 등과 관련된 문화재를 다량으로 보존되어 있다.

북한 당국이 추진한 고려대장경의 번역과 해제 작업에 있어서 첫째는 원본을 최대한 살릴 것, 둘째는 경전 단위 내용을 개괄하여 서술하고 경전 매권은 요약하여 알기 쉽게 풀이할 것, 셋째는 해제 시 주관적 비판이나 분석을 하지 말 것, 넷째는 사전류, 목록류 등 불교관계 자료들은 정단위로 간략하게 소개할 것 등이 ‘해제 집필요강의 기본원칙과 요구’로 하였다.(『내외통신』제627호(1989.2.17):「최근 북한의 종교실태와 정책」. p.1)

그리고 조선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가 발행한 『팔만대장경해제 해설』에서는 총 14가지 항목으로 대장경 해제의 근본원칙과 서술의 기본요구를 정하고 있다.

대장경 해제의 기본원칙의 1항에서는 “해제에서는 팔만대장경의 편성 순서에 따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불교경전과 책들을 빠짐없이 해제 대상으로 하였다.” 2항에서는 “해제에서는 매개 경전과 책들의 번역 또는 편찬 년대, 역자 또는 저자, 권수와 품수, 이름 뜻과 내용 등을 개괄한 다음 매권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9항에서는 “해제에서는 해당 경전의 가치와 연구보급 실태를 보여주는 후세 고승학자들의 주석서와 해석서들은 우리나라의 것을 위주로 하면서 대표적인 것만 밝혔다.” 12항에서는 “해제에서는 대장경과 불교연구에 참고자료로 이용될 수 있도록 원전의 기본사상과 내용을 의역하여 체계적으로 정확히 전달하기 위하여 힘썼다.” 13항에서는 “해제에서는 해제집필요강의 기본 원칙과 요구를 지키면서 경전과 책들의 특성과 체제에 맞게 다양한 형식과 방법을 서술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등으로 정하였다.(조선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팔만대장경해제-서문』, 사회과학출판사, 1990)

이러한 기준으로 하여 1983년부터 시작된 조선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 주관의 고려대장경 번경사업은 1987년 4월까지 5년에 걸쳐 해인사본 ‘팔만대장경’과 동일한 보현사본 팔만대장경의 번역 해제로써 전25책의 『팔만대장경 해제본』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이 해제본을 50질로 한정 출판하였다가, 1990년 4월을 기해 “해외 등 수요자들의 요구와 사회적 관심을 고려하여 편의상 25책의 내용을 그대로 15책을 묶어서 재판하게 된다.”는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의 『팔만대장경해제』의 발간사에서와 같이 불교와 관련한 출판물이 거의 없는 북한의 현실을 감안할 때 팔만대장경의 완역(1989년 7월)과 출간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세계 사학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 출처: Vestiges historiques aux monts Myohyang, 조선국제여행사, 1977, 팔만대장경보존고 내부 전경@이지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제본은 경전의 원 뜻과 사상을 담는데 충실한 완역적인 의미에서 부족한 것이 많이 드러났다. 경(經)의 제목과 유통에 대한 해설 그리고 경전의 중요한 부분을 선별하여 엮은 것으로써 북한의 <평양방송>에서도 1987년 5월 “원전에 있는 대로 요약하여 통속적으로 해제했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장 법타 스님은 “완역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북한의 대장경 번역본은 경의 제목과 유통에 대한 해설, 경전의 중요한 대목을 가려 뽑아 정리한 해제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해제본의 구성을 살펴보면, 1권에서 7권까지는 대승경전, 8권에서 10권은 율장과 논장, 11권에서 18권까지는 소승경전, 19권에서 24권까지는 불교의 역사와 자료, 25권은 한국고승의 저술을 포한한 내용으로 편찬되었다.

이와 같은 번역작업은 주로 범어와 산스크리트어, 한문문헌학, 교리학 등 번역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민족고전연구소의 40~50대 학자 40여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한편, 1987년 조선사회과학원에서 전25책으로 출간한 『팔만대장경 해제』본이 국내에서는 1991년에 처음 소개되었다가 1994년부터 ‘91년판 해제본’ 전15책이 판매되기도 했다.

한·중·일 등 동양의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대장경은 그 당시로 보면, 선진국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써 당대의 기술력이 집약된 문화대국의 상징이었다. 이 대장경을 남과 북이 같이 한글로 번역한 것은 한민족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대장경 속에 담신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이를 같이 실천한다면 불국정토, 통일의 세상을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남과 북의 불자들은 우리글로 말하고 표현하며 부처님을 시나브로 닮아가고 있다.

다음은 <북한불교의 법계제도> 편입니다.

이지범/ 북한종교연구소 실장(ejb99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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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송 2012-08-23 16:22:25
북한 불교에 대해서 너무 문외한이고 잘 몰랐는데 금번 기회에 너무 자세하고 좋은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폭을 넓혀 불교에 제한되지 않고 이슈화 되는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관광이나 중국의 공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네요.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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