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인들의 이같은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헌법 체계 속에서도 정교유착에 목메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기독교인들의 말실수는 실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또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 차이로 벌어지는 풍경은 ‘개신교에 감염됐느냐’라는 단 한가지 원인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종교간 갈등의 원인은 ‘개신교에 감염됐는가’
장 교수는 지난 6일 (재)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최한 2012만해축전 학술심포지엄 ‘정치와 종교 뗄 수 없는가?에서 ’정교유착, 어떻게 끊을 것인가? 과학에 묻는다‘ 발표를 통해 창조론과 변형인 설계론을 통해 정교유착을 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 한국 기독교의 정교유착의 원인을 배타주의와 성장주의에서 찾는다.
장대익 교수는 자신만의 나침반으로 가는 한국 기독교의 배타주의 성향의 원인을 “한국개신교는 근본주의 기독교에 뿌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 전달된 ‘배타주의’라는 밈(meme,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이 그 이후로도 가정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수직적 수평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 교수에 의하면 한국기독교는 배타주의와 성장주의 ‘밈’의 복합체이다. 그는 “생존 자체가 목표였던 시절, 한국 개신교가 선택한 가치는 성장주의였다”면서 “압축적 근대화의 외면적 성공과 더불어 교회가 풍요로워 졌으며 이과정에서 개신교의 뿌리 깊은 배타주의가 슬며시 끼어들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모세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정교유착 고리 못 끊어
장 교수는 ‘배타주의의 밈에 감염돼 정교유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복신앙으로 인생에서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받은 사람들, 즉 우리 부모 세대의 경우 배타주의 밈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으로 작용한다”면서 “이 부모 세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정교유착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 교수의 말은 독감 바이러스의 숙주가 격리되지 않는 이상 그 바이러스가 접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듯 서울시를 봉헌하겠다는 등의 배타주의와 정교유착을 확산시키는 개인과 단체가 일시에 사라지지 않는 한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정교유착은 이명박 정부 뿐은 아니다. 해방 이후 기독교인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섰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비슷한 문제들이 불거졌다는 게 정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기독교는 창조론 옹호집단 정교유착 개연성 커
정 교수는 한국 기독교는 ‘창조론 옹호 집단’이기 때문에 정교유착에 더 호감을 가질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정 교수는 기독교와 과학의 유착 방법(메커니즘)을 통해 ‘기독교와 정치’의 유착 관계를 분석했다. 어떻게 미국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현대과학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의 교리로 과학을 덧 씌우려는지를 살핀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의 유착 방법을 대표하는 것이 미국의 ‘지적설계론 운동’이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적인 진화론에 위기의식을 느낀 기독교계가 학생들을 상대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교유착의 대표이다. 지적설계론 운동의 산파는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둔 디스커비리 연구소로, 보수 기독교계의 싱크탱크다. 이 연구소는 공화당 정치인 출신의 부르스 채프먼과 정보기술의 석학 조지 길더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공정책 연구기관이다.
이 연구소가 낸 ‘쐐기 문건’은 과학적 유물론과 그것의 파괴적인 도덕적 문화적 정치적 유산을 물리치는 일과 유물론적 설명을 인간과 자연이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유신론적 이해로 대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한 마디로 미국 국민들에게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전하고 학교에서 이를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학생들에게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현대과학의 상식을 무시하고 창조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라고 말하고 진화론과 창조론이 논쟁하도록 하는 ‘논쟁 교육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공교육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라는 미국 기독교계
지적설계론과 논쟁 교육 캠페인은 지적 열등감을 떨쳐버리려는 보수 기독교계의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지적 설계론은 설계자(신)를 특정하지 않아 일부 기독교와 가톨릭 등 유신론 진영을 포섭하는 데 일정부분 성공한다.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대안론으로 부각시키려 한다. 하지만 더 나은 진화론적 설명이 제시되면 지적계게론은 설 땅을 잃게 된다. 이에 미 기독교계는 설계론 지위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자연적 과정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복잡성에는 지적설계론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면서 창조론을 부각하고 진화론을 비판한다.
사실 이 같은 주장들은 현대 과학의 상식인 진화론을 조금만 제대로 알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2005년 ‘진화론과 함께 설계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라’는 도버 카운티 교육위원회 결정에 학부모와 미국시민자유연맹들이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과학이론으로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연방법원 존 존즈 3세는 “설계론은 창조론의 한 형태이며,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설계론을 가르치라는 도버 카운티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인 국교금지 조항을 어긴 위법‘이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설계론 운동은 미국 개신교가 진요하게 기획한 ‘유신론적 세계관 확산 전략’이 과학의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 보여준 사례로 미국 기독교계와 과학의 유착 방법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한국 창조과학회도 창조론 교육개혁 주장
한국 기독교계와 과학의 유착은 어떨까? 미국에 지적 설계론 운동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한국 창조과학회’가 있다. 창조과학 옹호론자들은 성경의 축자 영감설에 근거한 근본주의 색채를 띄며, 투사적 교회관과 종말론에 있어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 창조과학회’는 보수적 대학선교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단체(CCC)가 주체한 80 세계복음화 대성회에서 열린 ‘창조론 세미나’에 미국 창조과학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끈 수력학자 모리스와 화석학자 기쉬가 참여해 발표한 후 이 영향으로 김영길 현 한동대 총장 등이 10여명의 과학자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것이다.
‘한국 창조과학회’의 목적은 창조론적 교육개혁과 창조과학관 건립이다. 진화론만 가르치는 공교육에서 과학적 증거를 통해 창조론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며, 창조신앙 회복과 다음 세대에 훌륭한 기독교 문화유산을 전해세계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태생부터 성장까지 미국 창조과학 운동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장 교수는 밝혔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교계와 교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교회들이 공식 비공식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데 비해 미국 기독교계는 설계론 운동을 더 환영한다.”면서 “미국 창조과학을 직수입하면서 신학적 과학적 문제점도 무비판적으로 떠안았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식교에서 출발한 창조과학의 한계에도 한국의 옹호론자들은 근본주의적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에 창조과학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게 장 교수의 분석이다.
장 교수는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은 ‘학술단체를 빙자한 종교단체 정도로 치부되지만 서울대학교 창조과학 연구회 설립과 서강대학교 지적설계연구회 등 발족으로 이어지는 등 영향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미국에서 설계론은 현재 진화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라는 오보가 발생하긴 해도 전문가들에 의해 재빨리 교정되지만 한국은 창조과학이나 설계론 옹호자들이 터무니없는 진화론 공격에도 그들의 무모함이나 무식함을 지적하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장 교수는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는 데, 이 단체를 이끄는 김영일 회장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이었고, 2011년 카이스트에서 명예박사를 받기도 했다”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겠다는 단체의 장을 대학교육 정책의 수장으로 두지 않으며,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이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창조과학 주장자가 명예박사를 받은 것은 “조선이 원해서 한일합방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역사학자를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앉힌 격”이라며 “서울시를 봉헌 한다던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고 고발했다.
장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악마를 믿는 기독교인이 77.6%나 되고, 80.9%는 천당을, 81%는 사후 영혼을, 83.6%는 기적을, 70.2%는 창조설을, 63.6%는 심판설을 믿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에게는 지식이나 과학도 무의미하며, 지식 교류측면에서 소통이 가장 더딘 동네가 기독교 집단”이라고 말했다.
또 장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경전의 콘테이너를 쌓고 이견의 유입을 차단, 자신들만의 소통에 골몰하면서 배타주의의 성을 높이 쌓고 있다”면서 “이같은 이들의 정교유착이나 배타주의 해결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