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2] 출ㆍ재가 역할 문제는 ‘교단 재구축(restructuring)’ 차원의 문제 / 윤남진
[토론문2] 출ㆍ재가 역할 문제는 ‘교단 재구축(restructuring)’ 차원의 문제 / 윤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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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7.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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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고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째서 그것은 사람들이 기쁠 때에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가. 만일 맛있는 음식이 즐거움이라면 어째서 그것은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가.” [입보리행론, 9:88]

“그러므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그런 그릇된 개념을 고치기 위해서이니 왜냐하면 이런 분석과정에서 일어나는 선정이 수행자들의 양식이기 때문이라네.” [입보리행론, 9:92]

“반대자에 대해서 자신을 관찰하면서 비판에 어떻게 대답할 지 를 고려하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적 관계를 터득하게 된다. <……> 이러한 자기비판의 모델에 따라 산출되는 자기 관계를 성찰적 관계라고 부르고자 한다. ”[의사소통행위이론2, p.128]

Ⅰ.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는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민감하면서도 무거운의제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문제의 무게나 민감도에 비해, 혹은 그로 인해 담론 상황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대체로 기능주의적 수준의 결론으로 끝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고 봅니다. 바로 그런 논의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기 위해 두 가지 점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먼저 출ㆍ재가의 역할에 대한 경전 및 사료에 대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자구 그대로를 주장하거나, 반대로 대단히편의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향에 주의해야 합니다. 의미나 상황 등을 고려한 맥락적 이해, (인과관계 등을 포함한) 관계론적 이해와 해석, 그것을 풍부화하기 위한 상상력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로는 경험론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인데 너무 적은 증거나 불충분한 정보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주의해야 하고, 그리고 다양한 대안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제기된 문제에 대해 충분히 분석적이어야 하고, 세분화해야 하고, 적절히 범주화해야하며, 그것을 조직의 존재이유(가치, 사명)에 부합되게 수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점을 기준으로 개인, 조직, 사회가 어느 수준에 있느냐를 일정한 지표로 측정할 수 있다면, 개인과 조직과 사회의 ‘성찰성’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불교교단도 이제 이런 토론회를 릴레이 행사 정도로 끝내지 않고 조직에 ‘어떻게 자기 성찰적 관계를 구조화 할 것인가’ 하는 차원으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Ⅱ.
이상에서 제기한 바에 입각해서 오늘의 의제에 대해 발제문에 대한 보충적 입장에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교단에서 출ㆍ재가자의 역할에 대한 경전 및 역사자료의 맥락은 ‘사회의 변화(+세상 사람들의 삶)과 연관 하에서 조망하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의, 혹은 10 ~20년 내의 미래의 사회변화의 양상을 조망해 볼때, 그 폭과 깊이는 교단정화운동을 통한 교단 구축의 시대(대략 50여 년 전)보다도 더심각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종교의 기능과 역할, 종교적 행위의 양태, 성스러운 것에 대한 인식과 태도, 종교적 수준의 집합체험 양상의 변화, 인지과학을 비롯한 마음이론을 다루는 분야의 전망 등과 같은 외부적, 거시적 변화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출가 특성변화(표1, 표2), 재가구성변화(표3), 출가 및 신앙 동기의 변화, 출가 및 신앙 결정 연령과 조건의 변화 등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출ㆍ재가 역할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교단 재구축(restructuring)’ 차원의 중대의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불자 전문인을 활용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가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라고 하면 대체로 출가자의 역할은 재검토하지 않고 재가자에게 어떤
역할을 얼마나 허용해 줄까 하는 식의 생각을 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의 틀, 보는 틀(프레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단 재구축 차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전과 미래목표, 그의 달성을 위한 전략사업을 설정하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작업에서 출가의 역할이 먼저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고서는 재가의 역할을 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출가자 스스로 먼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사찰운영위원회 강화, 재가 전문가의 활용 등을 위해서라도 폭넓은 사고 가 필요합니다. 사찰운영위원회가 왜 안됐을까요? 협의만 하게하고 결정권을 안줘서 안 되었을까요? 제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규모와 구조, 시스템, 보편적 의식과 문화수준, 리더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Ⅲ.
이제 좀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갈까 합니다. 우선 개별 사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중앙(혹은 중앙종무기관) 차원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중앙은 일종의 플랫폼서비스 사업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발제자께서도 지적하였듯이, 북청물장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사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에서 어떻게 플랫폼사업자가 되겠는가 하면, 어떤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완강하게 실행함으로써 그 규칙이 공통의 틀(기준)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찰운영위원회를 강화하는 법안을 내기 전에 중앙종무기관 차원에서 사찰에서와 같은 그런 수준의 실행방침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사 실천 항목 중에서 ‘중앙신도회와의 매월 정례 만남’ 정도는 말이 안됩니다. 사찰에서는 대단히 세게 하라고 하고 중앙종단에서는 아주 느슨하게 하는데 그게 실행되겠습니까? 저는 비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하나는 이타적인 삶, 청빈한 삶을 산다는 것을 전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집안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앙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불교적인 차원에서 정명생활(바른 직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런이타적 SO(사회적 조직) 창업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방법이 열세에 놓인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불자들의 지혜와 열정으로 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가치사슬로 이어진 드넓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며, 중앙종단은 그 생태계의 가장 고급의 정책과 지식을 소비하는 (긍정적 의미의) 가치 포식자 자리를 어떻게 유지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묻는다면, 저는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를 현재의 종단 구조에 고정시켜놓고 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과 판단으로는 현재의 종단구조를 건드리면서 어떤 미래지향적인 혁신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오직 가능한 것은 ‘새로운 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출ㆍ재가의 역할 문제 가 바로 그런 차원의 문제입니다. 차원을 달리하고 생각의 틀, 보는 틀을 달
리해서 풀어가야 해답이 보이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Ⅳ.
끝으로 출ㆍ재가의 역할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하고 체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차원의 조치, 좀 이상적이지만 아주 구체적인 주문을 두 가지 하고자 합니다. 출ㆍ재가 관계가 어떻다 해도 같이 큰일을 성공시키면 거기서 출로 가 열립니다. 여기서 큰일이란 경영에서 종종 이야기 하듯이 ‘달성하기에 좀 벅찰 듯한 수준의 목표’를 말합니다.

저는 출ㆍ재가가 함께 <(가칭)이타적 창업 투자은행> 같은 것을 설립했으면 합니다. 스님들은 이미 사후유산기증서약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재가자들이 나설 차례인데, 몇몇 재가지도자들이 제안한 바 있는 ‘유산10 %기증운동’ 같은 것을 벌여서 그런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스님들 노후 문제 해결에도 동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법적 중재효력을 갖는 분쟁중재기구를 설치하였으면 합니다. 사회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재가 법조인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고, 조계종 차원이 어렵다면 종단협의회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내부의 분쟁을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의미도 있고, 재가 전문법조인의 판단 하에서 법정에까지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에 공연히 정재를 낭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교단자정센터> 일을 몇년간 간여해온 경험자로
서의 호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왜 상징적이냐 라고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전자는 정명생활 (이타적으로 먹고 살기)문제와 포교문제를 결합하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고, 후자는 코삼비 비구에 관한 경전적 맥락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Ⅴ.
발제자께서도 거론하였듯이 출ㆍ재가가 원력을 공유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토론회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구조화된 성찰적 담론의 장으로 구실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대승의 핵심 가르침이 보살행에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인간의 마음이 이타주의적 방향에서 결정되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여러모로 증거 할 수 있는 징표를 교단과 사부대중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또한 그런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증명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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