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정당관료제
민주당과 정당관료제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5.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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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4.27 재보궐 선거가 민주당의 승리, 한나라당의 패배로 끝났지만 민주당의 선거 승리는 한-EU FTA 합의로 빛을 바랬습니다. 처음부터 민주당이 잘 해서 선거 승리를 일궈낸 것이 아닙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실패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은 민주당에 지방선거에 이어 보궐선거 승리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민주당의 승리는 철저한 반사이익일 뿐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한나라당을 넘어섰다고 해서 이제 민심은 우리 편이라고 마음 놓을 때가 아닙니다.

국민은 민주당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것입니다.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못해서입니다. 민주당은 이제부터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된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또 과거와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면 언제든 민심은 다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당 구조에서부터 민주화되지 못한 오늘의 민주당은 시민과의 직통과 시민의 이익에 충실하기보다는 오로지 선거 승리에만 집착하는 이익집단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부의 관료화가 당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이어야 합니다. 당권은 당대표가 아닌 당원에게 있어야 합니다. 당권이 기득권이 되고, 당 대표 권한이 독점적이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권한으로 존재해서는 민주당에 미래는 없습니다. 민주당의 당원은 그저 관객, 무대 위의 배우는 몇 몇 정치엘리트들일 뿐입니다. 지금과 같이 당원 없는 정당, 시대착오적인 폐쇄형 간부정당, 일반 당원과 시민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폐쇄 정당으로는 안됩니다.

정당관료제와 관련해서 독일 정당 연구자의 개척자였던 로버트 미헬스는 노동자계급 정당인 독일사회민주당을 경험적 사례로 대중정당인 사민당이 관료화됨으로써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들이 당을 지배하고, 결국 당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목적 전치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과두화의 철칙’입니다. 그는 결국 민주주의는 인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인민을 위한 통치체제가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관주의입니다.

반면 베버는 미헬스와 달리 정당의 관료화와 그에 따른 당 내부 조직의 과두화를 재난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베버가 보기에 정당의 관료화는 선진 자본주의 산업국가라는 환경에서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관료적 정당 머신이 독점자본주의가 가져오는 퇴영적 측면을 제어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역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았습니다. 관료화한 정당 기구는 리더십의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고, 지도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미헬스의 ‘과두화의 철칙’이 당의 내부 구조가 관료화되고 엘리트화됨으로써 민주주의가 그들에 의해 포획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면, 베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최장집, “정치가는 누구인가” <막스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베버의 말대로 현대 정당의 관료화가 필연적인 현상이라면 민주당의 정당 관료화 역시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베버는 정당에는 다른 선택이 없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있다고 말합니다. ‘머신’에 기반을 둔 지도자 민주주의 아니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가 그것입니다. 그가 볼 때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소명이 없는 ‘직업정치가’, 즉 지도자의 필수 요건인 내적 카리스마적 자질이 없는 직업 정치가들의 지배를 뜻하는 도당의 지배를 의미합니다.(막스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베버는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가 가능할 때 정당의 관료화가 가져오는 역효과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긍정적 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문제는 단순히 정당의 관료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사정당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면서 정당의 관료화는 뚜렷한데,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 즉 소명이 없는 ‘직업정치가’들의 지배가 이루어지면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정치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직업정치가들, 소명이 없는 직업정치가들의 집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주신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선거 승리에만 집착해 어떤 정당으로 거듭나야 할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 민주당의 선거승리도, 국민들의 신뢰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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