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불교계 주변에서는 평생을 불자로 살아온 분들 가운데 7.80 세에 접어들면서 타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사후에 보다 질 좋은 장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다. 천주교는 각 지역마다 교단차원의 공동묘역을 조성해놓고 신자들에게 무상에 가까운 저렴한 실비로 장지를 제공한다. 장례의식비용도 무상이다. 기독교계의 대형교회들도 이와 비슷한 서비스로 노령 층을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러한 서비스가 없다. 종단 또는 사찰 등과 연계된 상조회에 가입했을 경우에나 장례대행업체로부터 불교식 장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상조회비가 일반 그것에 비해 저렴한 것도 아니다. 또한 화장한 뒤 산골(散骨)하는 것이 불교식 장의규범이다 보니 신도들을 위한 공동묘역을 따로 마련 할 까닭도 없다. 그러니 남아있는 가족들의 장례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수기변심’하는 노 처사 노 보살님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노후를 걱정하기는 스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노스님께서 조그만 토굴로 거처를 옮겼다기에 찾아뵈었더니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다. 거동조차 불편한 노구로 깊은 산중 조그만 토굴에 홀로 들어 손수 밥 짓고 빨래하는 모습이 참으로 궁핍하고 민망하기 그지없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지만 수중에 지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꿈도 꾸지 못한단다. 세속을 등진 탓에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 의료혜택을 받을 길도 없다. 병원비를 마련하려면 인연 닿는 절이나 도반을 찾아가 구걸해야 하는데 그 짓이 구차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계종단에 속한 스님들에게는 늙어 의탁할 가족이 없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배우자가 있을 리 없고, 출가할 때 연을 끊은 친족이 찾아올 리도 없다. 오직 부처님만 우러르며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출가자의 도리라 여겨 곁눈질 하지 않고 살아온 죄로 노후가 외롭다고 장탄식이다.
“하늘이 보이고, 물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중이 되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안 보여. 늙은 몸 하나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안 보여!”
평생을 선방에 묻혀 공부만 한 것이 후회란다. 흔한 주지자리 하나 꿰차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돈 한 푼 챙겨놓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단다.
세수나 법랍이 오래된 스님가운데 더러는 큰스님으로 대접받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자기를 돌보지 않고 수행에만 정진하고 있는 많은 스님들은 노후를 보장받을 수가 없다. 뒷방으로 물러앉아 눈칫밥을 먹거나 토굴암자를 전전하는 노스님이 허다하다. 병이 깊어도 병원은커녕 수발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가 허다하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는 청정도량을 꿈꿀 것인가.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년이 넘었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세월이 그토록 흐르도록 원로스님들 편히 모실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래서 노후대책을 마련하느라 자리다툼이 끊이질 않고, 삼보를 축내 사설사암이나 세우는 풍토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처럼 혼탁한 분위기에 발들이지 않으려고 출가자가 줄어드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종단 지도부는 문화재 못지않게 원로스님 보호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평생을 곁눈질하지 않고 불제자의 도리를 지켜 수행에만 정진해온 가난한 원로스님들이야말로 성보(聖寶) 중에 성보일 것이고, 그러한 스님들 없이는 불교의 존립자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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