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의 어제와 오늘
신림동 고시촌의 어제와 오늘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3.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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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얼마 전 신림동에서 고시공부하고 있는 제자들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로스쿨 간 학생도 함께 있었습니다. 로스쿨 학생의 검사임용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벌써 이 친구들의 사고방식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변했고 현실이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특히 신림동이 그렇더군요.

로스쿨 도입과 2017년 사법시험 제도 폐지 결정으로 고시촌의 풍경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과거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고시제도의 폐지로 그나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변호사 되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비싼 등록금과 면접 선발 방식으로 중상류층만 갈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고시촌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도 좋은 머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들어가는 제반 비용들이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림동에서 고시공부하고 있는 제자에게 요즘 신림동의 현실이 어떠한지 좀 적어 보내 달라 부탁했습니다. 이 글은 그 학생이 보낸 부분을 단순히 재정리했을 뿐입니다.

기본 강의 100만원

2010년 1차 사시 기본 강의, 즉 3월부터 7월까지 기본 3법의 기초를 다뤄주는 기본 강의는 한 회당 18000원이었다. 민법 강의의 경우 과목 자체가 양이 방대하다 보니 작년의 60회를 기준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게 된다. 올 해의 경우 학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45회(ㅎ법학원 K강사 기준)정도로 횟수가 줄기는 했으나 매년 인상된 학원 강의(매년 회당 1000원 정도 인상)에 매년 새로 구입하는 교과서와 부교재 구입비를 감안하면 부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부담은 학원 강의를 들음으로써 시험에 빨리 합격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지만, 장수생이 되어갈수록 학원 강의 비용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비싼 학원 강의에 대한 대안으로 고시생들은 서점에서 강의가 녹음되어 있는 플레이디스크나 강의 테이프를 구입하기도 한다. 민법총칙과 물권 진도(채권법 제외 기준)가 녹음되어 있는 민법 플레이디스크가 10만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비록 귀로만 듣기 때문에 직접 학원 강의를 듣는 것보다 집중력은 떨어질 수 있으나 비용 면에서는 실강의 3분의 1 정도도 되지 않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다 듣고 필요가 없어지면 중고 책방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되팔 수도 있어서 비용 회수 가능) 꾸준히 팔리고 있다.
 
불법으로 학원 강의 다운로드

인터넷 강의의 경우에도 실강과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아이디 하나로 강의를 등록한 다음, 돈을 나눠 내고 아이디를 공유하여 여럿이 같이 듣는 방법도 있다. (강의 사이트에서는 아이디 공유를 금지) 이러한 방법을 차단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강의 사이트에서는 ‘수강시간 종량제’를 적용한다. 동영상을 실제 재생한 시간의 2배까지만 동영상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한 강좌를 나눠 들을 수 있는 것은 2명까지라는 이야기가 된다. 또 아이디를 동시 접속하는 경우 아이피 접속 때문에 적발될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아침 시간, 저녁 시간 등으로 시간을 나눠서 듣는 것이 보통이다.

학원 강의는 듣고 싶으나 돈이 없어서 혹은 아까워서 강의를 얻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동원된다.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학원 강의를 불법으로 다운 받는 일들이 생기면서 학원에서는 단속과 형사 처벌을 경고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두고 있다. 또한 몇 년 전에는 학원 강의가 저장된 불법 시디를 팔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고, 어떤 수강생이 학원 수강증을 직접 위조해서 싼 가격에 팔다가 갑자기 불어난 수강생 수에 의아함을 느낀 학원 측의 경찰 수사 의뢰로 수강증 위조가 적발되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시 종합반의 등장

사시 합격 인원이 줄어들면서 수강생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학원에서는 줄어드는 수강생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학원비 선납 1년 치의 학원 과정을 미리 등록하게 하는, 종합반 제도를 만들었다. 종합반 과정은 500만 원이 넘는데, 매년 3월부터 그 다음 해 사법시험을 보기 직전인 2월까지의 총 강좌를 듣는 데 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학원의 주장이다. 종합반 강의는 3월부터 8월 초․중순까지의 기본 3법 강의와 7, 8월 상반기 판례강의, 9월부터 12월까지의 진도별 모의고사 강의, 그리고 12월, 1월의 하반기 판례 강의와 1월의 마무리 강의를 다 포함한 것이다.

문제는 시간상 이 모든 강의를 다 듣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강의를 모두 수강하는 것이 합격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라는 데 있다. 학원 강의에 치중하면 자칫 복습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쯤 되는 시험 막판 기간이 되면, 독서실 게시판에는 판례 강의와 마무리 강의 수강증을 싸게 넘기는 쪽지가 여러 개 붙어있는데, 종합반을 등록하는 고시생들이 막판 정리를 위해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넘기는 것이다.

프리미어 종합반 1년에 2000만원

2010년 ㅂ법학원에는 고시생 생활 관리를 해주는 일명 프리미어 종합반이 생기기도 했다. 1년 비용이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니 보통 사람은 꿈도 꾸기 어렵다. 프리미어 종합반은 학원 강의가 끝난 후 생활 통제를 철저히 하고 질문을 받는 등의 관리를 해주고 있다. ㅎ법학원의 경우 학원 선생님들이 고시생들을 관리하는 제도가 있는데 프리미어 종합반 정도는 아니고 160만원 정도의 비용을 별도로 부담한다.
 
사시 2차의 경우 ㅂ법학원에는 학원 강사들이 답안지 작성을 위한 소수 과외식 지도를 하는 강의도 생겼다. 행시나 외시의 경우 이미 몇 년 전부터 면접이나 답안 작성을 위한 소수 지도 강의가 있어왔다. 소수 지도 강의이기에 일반 강의보다 비용이 더 부담되지만, 2차까지 시험을 치룬 사람들의 경우 합격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시의 경우 면접에서 탈락하는 비율도 극히 낮고, 설사 탈락해도 후년에 기회가 주어지지만 행시나 외시의 경우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고, 2차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도 3차 면접이 블라인드 면접 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면접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하다. 때문에 2차 시험을 치룬 사람들은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곧장 학원에서 3차 면접 강의를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 강의 외에도 가끔 사시 2차 합격생 중에 사법연수원 입소를 대기 중인 사람들이 법률저널 게시판 등에 사시 과외를 해준다는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행시의 경우 행시 합격생이 주 2회 정도를 가르치고 받는 과외비는 한 달 기준 3~40만원 정도 라고 한다. 고시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명문대 학생들의 경우,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스터디를 결성하기도 쉽고 합격생 선배들이 답안 연습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고시 합격생을 거의 배출하지 못하는 학교 출신이 고시를 준비하는 경우에는 고시 시작을 마음먹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일단 시작해도 공부하는 데 있어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고시원과 원룸 사이에서

소득에 따른 격차가 가장 많이 나는 것이 자취방이다. 신림동에서는 자취방을 광고하는 홍보물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고시원의 경우 15만원부터(시설이 매우 열악해서 공부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잠만 겨우 잘 수 있다고 함) 30만 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원룸 보증금은 보통 100만 원 정도부터 시작하며 월세는 40만원 안팎에서 시작한다. 방의 층수와 평수, 방음 정도, 개인별 세탁기 등과 같은 시설 구비 여부에 따라 가격대가 정해진다. 시설이 좋거나 방음이 잘 되는 경우 보증금 10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식비도 문제다. 100장 단위로 구입하거나 책방에서 식권을 구입하는 경우 한 끼당 3,000원 정도가 든다. 독서실비(10~15만 원 선)와 책값 등을 고려하고 원룸에서 살고 학원 강의는 대체로 듣는다고 가정할 때 최소 한 달에 1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합격자들이 고시에 붙기까지 평균 4~5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 그중 약 3년의 시간만 고시촌에서 보낸다고 해도 최소한 3,6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1980년대 신림동 고시촌

저는 1986~7년 신림동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돈 없어도 공부할 수 있었을까요?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제 주변 동료들 중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다들 못버티고 취업일선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보다 더 돈의 굴레가 정교해지고 더 악화되고 더 기능적으로 짜여진 듯 합니다. 잠재력을 공정하게 인정받고 평가하는 그런 사회적 수단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요?

잊고 살다 제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 이렇게 보내온 자료를 읽고 정리하다보니 참으로 답답해집니다. 참고로 저는 사법시험을 확 늘려버리자는 쪽입니다. 로스쿨도 당연히 확 풀어버리자는 쪽입니다. 대륙법제의 전문가형 법조인력 충원 구조를 바꾸자는 쪽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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