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고생의 자살 “이제 됐어?”
한 외고생의 자살 “이제 됐어?”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1.20 1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로봇 영재의 자살

얼마 전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 최초로 카이스트에 입학해 화제가 됐던 학생이 1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로봇 영재로 무한한 미래가능성을 가진 학생을 자살로 이끈 것은 성적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이번 학기에 학사 경고를 받는 등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카이스트의 ‘징벌적 학사제도’가 더해졌습니다. 이 학생은 2.0이 되지 않는 평점을 받았고, 현재의 학사제도에 따라 등록금(약 200만원)을 제외하고도 600만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추가적으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2006년에 취임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2007년 카이스트 학생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학사제도를 개선하게 됩니다. 이 제도로 학생들은 평점 3.0(만점 4.3)에서 0.01점이 낮아질 때마다 약 6만원(2010년 기준)을 다음 학기 시작 전에 지불해야 합니다. 2.0 미만의 평점자에 대해서는 최대치인 600만원의 수업료가 부과됩니다. 자살한 학생은 학칙에 따라 ‘징벌적 등록금’ 약 600만 원을 포함해 한 학기에 총 800여만 원을 납부해야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성적 지상주의 자살을 부추긴다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는 차등 등록금 제도와 영어 강의 진행 등 학교 측의 ‘성적 지상주의’ 방침이 이번 사건을 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이스트에서의 이 같은 자살 사건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2003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세 명의 재학생이 자살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학벌 지상주의와 경쟁적 사회 환경 속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이제 대학에서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가 시행하고 있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창의적인 괴짜 학생을 배출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며 "창의적인 대학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학생들을 정량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됐다"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입학사정관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뽑아 놓고 정작 학생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지 못한 학교와 교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됐어?

몇 년 전 일입니다. 기사를 보고 섬뜩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외고생이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했습니다. 유서는 단 네 글자였다고 하지요. “이제 됐어?”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 그 아이는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외고에 다니며 공부도 잘하는, 그래서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던 그 아이는 끝없이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어느 순간 그 노력을 그만두는 선택, 아니 결정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됐어?”라는 짧은 말에서 느껴지는 섬뜩함과 살벌함은 학생의 절규와 어머니의 고통을 동시에 환기시켜 줍니다. 누가 이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이게 어디 더 좋은 성적을 요구하던 엄마만의 잘못일까요.

현재 한국과 같은 교육여건 속에서 남보다 뒤지면 평생을 무시와 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부모가 성적을 올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를 가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두가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꼭 서울대를 가야한다’고 말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대학 못가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도 없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끝이라는 극도의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국가에 의한 죽음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입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자살은 사망 원인 순위에서도 10년 전인 1999년 7위에서 2009년 4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특히 2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 앞에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아직 채 인생을 시작해 보지도 못한 어린 친구들을 성적이라는 굴레, 경쟁이라는 올가미를 씌어 죽여야 할까요?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국가에 의한 죽음은 2억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1억3천만 명이 자국민이라고 합니다.(더글러스 러미스, <녹색평론>116호에서 재인용) 물론 여기에는 국가가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살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이 선택한 죽음이 아닙니다. 사회가, 국가가 죽인 것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