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이 나라에서 불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그래서 부산을 한국불교의 1번지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 부산불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 범어사다. 범어사는 부산불교 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선풍(禪風)을 지키고 이끌어가는 선찰대본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대본산의 얼굴이랄 수 있는 천왕문이 누군가의 방화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하여 세밑의 부산불교는 매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현장을 확인하려는 신도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잿더미로 변한 천왕문을 향해 절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합장한 손등에 눈물을 떨구는 사람도 있다. 범어사 천왕문 소실은 하나의 전각만 불탄 것이 아니라 범어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산시민들과 2,000만 불자들의 마음에 큰 화상을 입힌 꼴이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는 있지만 아직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화재현장을 찾는 불자들 사이에 ‘부산지역의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부르짖던 자들의 소행’이라는 소리만 높아갈 뿐이다. 불교와 관계없는 일반시민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만약 경찰수사가 미진하여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부산지역의 종교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범어사에 적을 둔 스님들끼리 화재에 대한 책임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자중지란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되었든 범어사에 적을 둔 스님이라면 성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불자들이 입은 상처를 위로하는데 진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모든 대중이 사태수습을 위해 한 마음으로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먹이를 다투던 짐승도 환란이 닥치면 하나로 뭉치는 슬기를 발휘하는데 하물며 우주의 스승이라는 수행자로서야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범어사는 분쟁이 가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지스님이 모든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대중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러한 자중지란이 가뜩이나 우울한 부산불자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스님의 퇴진을 주장하는 측의 전단을 받아든 어느 불자는 이렇게 한탄하고 있었다.
“천왕문 잿더미 속에서 살아난 분쟁의 불씨에 절집이 몽땅 타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것이 어찌 한 사람만의 걱정이고, 범어사만의 문제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불교계는 걸핏하면 지도부의 퇴진을 들먹이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이 다르다고, 방향이 다르다고 지도부를 흔들어대기 일쑤다. 그래가지고서야 어찌 체계가 설 것이며 불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겠는가.
정여스님을 옹호할 뜻은 결코 없다. 다만 종교도 하나의 사회조직인 바에야 그 조직의 체계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특히 직분에 대한 거취는 그것을 결정하는 기구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최소한 그러한 체계조차 무너진다면 자리싸움은 끊임없이 벌어질 터이고 결국 이전투구나 하는 집단으로 비난받기 십상이다.
묵정밭은 아닐테고
여기가 어디 평소 감정 표출하는 곳이에요.
다들 냉정하세요.
이렇게 가다간 다 골고다언덕으로 갈 것이니까요
우린 모두 거기가 아니잖아요
화합된 모습 보여주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