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빼기' 정치에서 벗어나라
'코빼기' 정치에서 벗어나라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12.0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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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뽑아놓으니 코빼기도 안 비치는군." 지방선거가 끝난지 5개월, 이쯤 되면 들려올법한 소리다.
한국정치는 코빼기 정치다. 좋게 말하면 의전정치다. 솔직히 말하면 행사정치다. 얼굴내밀기정치다. 특히 지역정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행사에 참석하거나 여기저기 코빼기라도 비치는 것이 어느새 정치인의 본분이 되고 말았다. 일이 아니라 얼굴이다. 현장성, 생활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본질의 역전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작 집중해야 할 정책이나 행정이나 입법이나 감시나 견제나 균형은 실종상태다. 전념해야 할 일에 바쁘지 못하고, 조금은 게을러도 될 법한 일에 부지런떠는 꼴이다.

첫 번째 이야기.
당나라 무종(武宗) 시대에 환관의 우두머리로 구사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종은 환관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이 못마땅해 그들을 멀리할 작정을 했다. 구사량은 대단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서둘러 사직서를 제출하고 낙향을 도모했다. 황제도 즉각 허락했다. 환관들이 배웅길에 나섰다. 어떻게 하면 황제에게 아부할 수 있는지, 자신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황제께서 한가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항상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가지고 그 눈과 귀를 즐겁게 해야 하니, 나날이 새롭고 성대하게 하면, 다른 일은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런 후라야 우리 무리가 뜻을 얻을 수 있다. 삼가 황제께서 책을 읽고 유생들을 가까이 하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황제가 전대의 흥망을 보고서 마음으로 근심과 두려움을 알게 되면, 우리 무리는 멀리 배척될 것이다." 바쁘게 만들라는 것, 한가한 틈을 주지 마라는 것, 그리하여 전략적 판단을 할 기회를 아예 봉쇄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얼마 전 미국의 '뉴스위크'는 지난 10월 한 달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헤아렸다. 한 달 동안 무려 57건의 연설이 있었다. 연설문 작성자만도 7명이나 달라붙어야 했다. 그렇게 많은 연설이 대통령 연설이 갖는 메시지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어떤 날은 웨스트윙(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바삐 돌아간다"고 오바마 백악관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많은 업무가 대통령의 힘과 권위를 약화시키고 전략적 오판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취지의 표지기사였다.

세 번째 이야기.
충북 청주시장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904건의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하루 평균 2.47건이다. 제천시장은 625회, 음성군수는 574회, 진천군수는 375회 행사에 참석했다. 당연히 시장ㆍ군수실은 늘 '부재 중'. 지난 10월 열린 충북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에서는 행사 참석 기준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행사 참석 때문에 도저히 할 일을 못할 형편이라는 공감대가 제기됐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ㆍ군수 행사 참석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기준안은 시장ㆍ군수의 행사 참여 횟수를 절반 이상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단위 행사와 법정기념일 행사, 시ㆍ군이 주관하는 행사는 단체장이 참석하고 연례행사나 유관 기관 행사, 각종 단체주관 행사 등은 부단체장이나 실ㆍ국(과)장에게 대리 참석토록 할 방침이라고 알려졌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이미 행사 참석을 예년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강원지역에서도 최명희 강릉시장과 김연식 태백시장은 기관ㆍ단체에 서한문을 보내 행사 참석 요청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현장에 임하고 시민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얼굴을 맞대는 일은 지방자치의 본질이다. 하지만 문제는 행사만을 위한 행사, 선거캠페인 일환으로서의 행사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구적 캠페인(Permanent Campaign)'이 있다.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 정치나 행정을 위한 최우선 수단으로 대중의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교묘히 조작하기 위해 1년 내내 벌이는 정치활동을 말한다. 목적은 시민이 아니다. 자신의 재선이요, 3선이다. 선거 캠페인의 일상화요, 상시화다. 스스로가 속아넘어가고 있고, 시민들을 속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지역의 시장, 군수, 의회 의원들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행사에 쫓기며 오로지 선거 정치에만 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순간 멈춰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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