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지퍼를 내려 신뢰를 담보받은 존슨 대통령
바지 지퍼를 내려 신뢰를 담보받은 존슨 대통령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11.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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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 어디까지 보여줄 때 믿을 수 있을까

1. 바지를 벗고 ‘그것’을 보여 준 미국의 존슨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 시절의 일입니다.

▲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 1908-1973) 제36대 미 대통령

기자가 존슨 대통령과 미국이 왜 베트남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논리가 상대방을 설득까지 못하는데 실망한 대통령은 바지를 벗고 음경을 꺼낸 다음 ‘이것이 그 이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충돌이었습니다.
로버트 댈릭의 <손상된 거인 : 린든 존슨과 그의 시대, 1961-1973 (Flawed Giant : Lyndon Johnson and His Times 1961-1973)>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데이비드 프리드먼, <막대에서 풍선까지-남성 성기의 역사> (까치, 2003), pp.14-15.)

2. 바지를 벗고 그것을 보여주려다 멈추고 만 나훈아 선생

2008년 1월, 대한민국 사회는 이른바 ‘나훈아 괴소문’에 대한 나훈아 선생 당사자의 해명 인터뷰로 떠들썩했습니다. 당시 그는 “언론은 펜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하며 존슨 대통령과 같은 행동 직전까지 연출해 인구에 회자된 바 있지요.

나훈아 선생은 당시 괴소문에 대한 즉각적인 언론 대응을 피했던 이유로 “40년 동안 노래를 해 왔기 때문에 매스컴의 속성을 잘 안다”며 “(어떤 해명을 해도) 또 시끄럽게 떠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 “나훈아 ‘선정적 언론, 펜으로 사람 죽여’,” <한겨레> 2008. 1.25. 참고.)

3.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을까 - 법률에 있어 입증 책임의 문제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을까요. 의심하는 사람이 증거를 들이대야 하나요, 아니면 의심을 받는 사람이 증거를 제출해야 하나요? 증거가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다면 상관 없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 증거가 편중되어 있고, 그 사람만이 그 증거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누가 증거를 제시하고 입증할 책임이 있을까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을 때, 그 불이익은 누가 입어야 하나요? 이것이 법학에서 가장 중요한 ‘입증 책임의 문제’입니다.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돈을 빌려주고도 못 받는 사례

첫 번째 사례입니다.

철수가 영희로부터 1억 원을 빌렸습니다. 분명히 빌린 것이 사실입니다. 갚아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갚지 않자 영희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돈을 갚으라고 주장했습니다. 철수는 빌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영희는 서로 친한 사이라 아무런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영수증을 받아 놓지도 않았고, 송금한 영수증도 없고, 채권 채무 증서도 없고, 증인도 없습니다. 인출한 흔적도 없습니다. 독촉한 서류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표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철수는 그저 빌린 적이 없다고만 떼를 씁니다 이 재판은 누가 이길까요.

사실은 1억 원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희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철수가 이긴 것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희가 재판에서 패소하는 것입니다. 영희가 재판에서 패소함으로써 철수가 자연히 이기는 게임이 됩니다. 이 때 영희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각 종 증거를 제출할 책임이 있습니다. 권리의 근거 사실에 대한 증거들입니다. 이를 물증이나 사람 증거로 제출하지 못하면 그 불이익은 영희에게 돌아갑니다. 이 때 입는 불이익을 ‘입증 책임’이라는 말로 풀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학에서의 입증 책임은 소극적입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런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돈을 갚고도 또 갚아야 하는 사례

두 번째 사례입니다.

철수가 1억 원을 빌린 것 맞습니다. 때가 되어 영희에게 갚았습니다. 그런데 영희는 받지 않았다고 떼를 쓰며 또 다시 1억 원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철수는 돈을 갚은 것으로 끝났다며 아무런 증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갚았다는 영수증도 없습니다. 갚을 때 송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직접 만나 현금으로 주었습니다. 녹음을 해 놓지도 않았고, 사진을 찍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갚았으니 됐다며 영수증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간 사람도 없습니다. 갚은 것을 본 사람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갚았습니다.

그런데 영희는 또 1억 원을 달라며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철수는 갚았다며 법원에서 주장했지만 영희는 돈을 1억 원 빌려 갈 때 철수가 건네 준 차용증을 증거로 제시하며 분명히 갚지 않았다고 1억 원을 다시 요청했습니다. 이 재판은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영희가 이깁니다. 영희는 또 1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그렇게 재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실 관계와 재판 결과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판은 진실 게임이 아니라 입증 게임이다

그래서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재판은 진실 게임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진실에 근접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지요. 철수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영희의 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 영희의 채권자적 지위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증거로 입증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갚았다는 증거를 대던지, 갚은 사실을 아는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던지 해야 합니다. 권리의 소멸과 연기 등에 대한 증거는 저항하는 쪽에 제출 책임이 있습니다. 영희는 채권의 존재를 주장하면 됩니다. 철수는 채권의 소멸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각기 입증 책임은 분배되어 있습니다. 이 입증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입게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 불이익이 입증 책임의 본질이라는 것도 말씀드렸지요? 그 불이익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입증 책임의 반사적 측면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입증 책임 분배의 기준은 ‘공평성’

그렇다면 입증 책임의 분배 기준은 무엇일까요? 아직까지 우리나라 통설과 판례는 ‘공평성’입니다. 공평을 기준으로 분배합니다. 어떤 권리 주장은 누가 입증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타당할 것인가가 입증책임 분배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입증 책임 분배는 간혹 수정되기도 합니다. 의료사고의 입증 책임은 미국에서는 의사가 자신의 책임 없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한국은 여전히 환자 쪽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 의사의 잘못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환자에게 부여해두되 약간 수정하는 쪽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법원의 판례입니다. 의사가 좀 나서서 스스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원인 불명이라거나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사실 정도를 의사가 나서서 입증해주라는 것입니다.

컵라면을 먹는데 쥐꼬리가 나왔다고 합시다. 일반 시민이 컵라면에서 쥐꼬리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어떻게 해서 컵라면에 쥐꼬리가 들어갔는지 자신의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가 되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어렵겠지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이 경우는 입증 책임을 아예 전환시켜버렸습니다. 그것이 ‘제조물책임법’입니다. 입증 책임의 전환입니다. 원래 손해배상 청구권을 주장하는 권리자인 피해자 쪽에서 권리의 근거 되는 사실인 피해 사실과 원인 사실과 그 인과 관계를 밝혀야만 합니다. 그런데 제조물의 생산과 유통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서 공평의 차원에서 입증 책임을 제조업자나 유통업자에게 돌려버렸습니다. 시민은 컵라면에서 쥐꼬리가 나왔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됩니다. 제조 회사나 유통 회사는 그건 컵라면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합니다. 그 입증을 하지 못하면 재판은 무조건 시민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증 책임’의 논리입니다.

시민들은 재판이 완전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이런 입증 책임의 한계에서 결정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소송 기술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입니다. 판례의 경향 또한 중요합니다.

형사 소송은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민사소송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형사 소송은 검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자백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자백이 유일한 증거일 때는 무죄입니다. 이것은 헌법 원리입니다. 그래서 자백과 함께 각종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모으는 일은 검사의 일입니다. 입증하는 일도 검사의 일입니다. 이걸 제대로 못해내면 당연히 검사가 입증 책임을 뒤집어 쓰는 겁니다. 불이익을 뒤집어 쓰는 거지요. 그래서 피고인은 당연히 무죄가 됩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리도 이 때 적용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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