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은혜 갚는 보시행”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은혜 갚는 보시행”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0.10.13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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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법정 스님 ‘무소유’ 마지막 판본에
출판사 대표 서명이 왜 있을까?”
‘책을 건네다-저자 서명본’展…12월 31일까지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겸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책에 서명된 글씨체를 찬찬히 살펴보라. 짧은 서명이지만 저자의 멋스러움과 힘이 느껴진다. 저자 마다 필력이 달라 묘한 매력이 있다. 저자 서명은 단순한 ‘물리적 사실’이라기 보다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것들이 담긴 것이 바로 저자서명본이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은 “저자의 서명본이 단순한 책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될 때가 있다”고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저자가 누구에게 책을 증정했는가에 따라 서명본은 다양한 사연과 풍부한 이야기를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서명본은 증정할 때는 시대 상황을 증언하기도 한단다. 역사를 증언하는 역할을 자임한 서명본은 단순히 책에 저자 사인이 친필로 적혀 있다는 물리적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물리적 사실’에서 ‘역사적 의미’가 탄생하는 곳이 바로 저자 서명본이라는 게 김 관장의 해설이다.

김 관장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물 가운데 자신이 그동안 보관해온 1,000여종의 책 중 101종의 책을 골라 전시하는 ‘책을 건네다-저자 서명본전2’를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삼성출판박물관에서 열고 있다.

<무소유>는 지난 3월 법정 스님이 열반하신 후 ‘무소유’는 마지막 판본이 출간됐다. 마지막 판본의 책은 저자인 법정 스님대신 출판사인 범우사의 윤형두 발행인이 저자서명을 대신해 증정했다. 보통 책의 저자서명은 저자와 출판을 맡은 대표자만이 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이 열반한 지금 유일하게 무소유에 서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출판사 대표이다. 법정 스님의 서명본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김 관장은 서명본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전시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지난 전시회는 사회저명 인사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역사적 의미를 찾는 데 고민했다.

▲ 백범일지
이번 전시회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1949년 윤봉길 의사의 장남 윤종(1929~1984) 씨에게 증정한 <백범일지>가 전시되는 데, 백범의 서명이 심하게 떨려 있어 눈길을 끈다. 백범의 서명이 떨린 이유는 무엇일까? 백범은 1938년 중국 장사에서 저격을 당했다. 그때 심장 바로 아래 박힌 총탄이 보금씨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전증을 얻었다. 백범은 자신의 서체를 ‘총알체’라고 농담하기도 했단다.
유길준이 권재운에게 준 <서유견문> 서명본과 중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가륜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증정한 서명본을 만날 수 있다. 반공노선을 걷던 중국과 한국의 현실 등 현대사의 거인들을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기회다.

▲ 백범일지 서명
김종규 관장의 불교인연을 증명하듯 이번 전시회에는 불교와 관련 있는 인사들의 서명본도 대거 전시된다. 김동리의 <등신불>과 그의 형인 김범부의 <화랑외사>를 범부선생유고간행회장인 김석원의 서명본,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의 <차와 더불어 삶>,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또 다른 예수>, 윤청광의 <큰 스님 큰 가르침>, 천문학자인 이시우 서울대 교수의 <붓다의 세계와 불교우주관>,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의 <인도에 가면 누구나 붓다가 된다>, 정수일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등이 전시된다.

‘히말라야 성스러운 기운을 드립니다’라고 적은 산악인 엄홍길 서명본, ‘제가 곤충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썼습니다’라고 적은 벌레와 노는 여자 정부희의 <곤충의 밥상>, 그림인지 서명이지 알쏭달쏭한 조영남의 서명본 등을 보노라면 미소가 지어진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담은 책을 다른 작가에게 증정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작가들이 주고받은 서로의 서명본은 세월이 오래 흐르면 문학사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서명본을 통해 작가의 친분과 교류를 읽을 수 있고, 문단의 풍경과 이면사도 엿볼 수 있다.”

▲ 서유견문 서명
‘문화계의 대부’로 알려진 김 관장답게 전시품에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이건무 문화재청장, 백남준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 연극배우 박정자 등 문화계 종교계, 문화재계 인물등의 서명본이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전시회는 한 시대 문단풍경과 교류 기록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은 ‘불자’로 우리 문화계의 대부‘로 통한다. 출판사 사장을 처음 맡은 게 40여 년 전이다. 1999년부터 한국박물관협회장을 지냈다.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박물관 일 외에도 문화재 보호 운동 역시 김 관장의 영역이다.

김 관장은 2007년부터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이사장을 맡아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있는 개별 문화유산을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부동산 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유재산권 보호를 명목으로 계속 사라졌던 역사적 장소와 건물들을 시민·단체·기업의 기부금과 회비로 사들이고 보존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을 하는 단체다.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은 우리 세대가 다 써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보관 받은 ‘자산’이다. 현 세대인 우리는 우리 앞 세대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자산을 미래세대에게 되돌려줄 의무가 있다. 국민신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것을 소중히 지켜온 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보시와 같은 것이다.”

김 관장은 영국에서는 이미 100년 전에 시작돼 현재 360여만 명이 참여하는 국민신탁(National Trust) 처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문화재 보호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했다.

▲ 덕수궁 중명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최근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덕수궁 시대’를 열었다. 국민신탁이 새로 입주한 덕수궁 중명전<사진>은 최근 복원된 을사늑약이 강제된 비운의 현장이다.1897년 처음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을 때는 ‘수옥헌’이라 했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의 큰 화재로 고종 황제의 거처를 중명전으로 옮겨 순종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국사를 보았던 곳이다.

비운의 현장이었던 곳을 김 관장은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 자발적인 보존 관리 활동’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자발적 국민신탁 참여를 독려하데 힘쓰고 있다. 또 덕수궁 시대를 열면서 중명전을 거점으로 정동 일대에 산재한 박물관, 전시관, 근대문화유산 등 역사문화자원을 한데 묶어 국민에게 알리는 사업도 추진하려고 한다.

강임산 사무국장은 “정동 일대 골목문화해설사 운영, 정동 스토리텔링 지도 발간, ‘정동지역 근대문화유산 관리자·소유자 모임 결성’ 등을 통한 정동 활성화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신탁의 올해 목표는 당초 1,000명이 국민신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초 목표는 지난 5월 달성했고, 현재 1600여명의 신탁자가 참여하고 있다. 김 관장은 “10만 명이 문화유산 지킴이가 되면 우리 유산이 함부로 훼손되거나 망실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정부가 다 책임질 수 없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360만명 정도가 문화유산 지킴이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70%에 육박하는 불교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운동이다.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꼭 지켜야 할 사찰들이 많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위대한 유산’ 만들기가 바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을 지키는 길이다.”

최근 고운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 관장은 상금 1,000만원을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각각 500만원 씩 기부했다. 김 관장은 ‘기부’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야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 관장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선진국으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부와 자원봉사가 사회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회원은 보전회원과, 일반회원, 1%회원, 청소년 회원 등이 있다. 회원병 가입방법은 다르다.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가입 문의 02)732-7520~1 홈페이지는 http://www.nationaltrust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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