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휴대전화 훔쳐 써도 처벌 못한다?
남의 휴대전화 훔쳐 써도 처벌 못한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10.04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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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남의 휴대전화를 무단으로 사용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남의 휴대전화를 훔친 것도 처벌할 수 없게 되나요?

최근 대법원(주심 민일영 대법관)은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무단 사용한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로 기소된 박모씨(33)에게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2006년 박모 씨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훔쳤습니다. 그리고 훔친 휴대전화로 인터넷 5만 4,240원 어치를 사용했습니다.
휴대전화를 훔쳤다고 전부 다 유료 인터넷이나 게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휴대전화를 도둑질한 행위가 하나 있고, 그 훔친 휴대전화로 유료 인터넷 게임 등을 한 또 다른 행위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 둘은 따로따로 법적인 평가를 받아야 되겠고요.

휴대전화를 ‘도둑질한 행위’와,
훔친 휴대전화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요금을 부담시킨 행위’는 전혀 별개다

첫째, 휴대전화를 도둑질한 행위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죄일까요? 당연히 절도죄가 되겠지요? 이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상습 절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이나 검찰이 전혀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둘째, 훔친 휴대전화를 이용해 유료 인터넷 등을 사용하고 요금 부담을 절도 피해자(휴대전화 소유자)에게 떠넘겨 버린 행위가 남아있지요?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죄’라는 겁니다. 그런데 피해자 입장에선 억울하겠지요? 왜 무죄인가를 따져보겠습니다. 조금 복잡합니다.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이유

먼저 대법원 결론입니다. 1심, 2심도 대법원의 결론과 일치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래서 원심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사용자 신원 확인 절차가 없는 휴대전화의 통화·인터넷접속 버튼을 누른 것만으로 공소장에 나온 대로 ‘사용자에 의한 정보 혹은 명령의 입력으로 정보처리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은 검찰이 유죄라고 생각하고 기소했던 이유이자, 항소하고 상고했던 이유입니다 :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누르는 행위에는 휴대 전화의 정당한 이용자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예를 들어 ID‧패스워드 입력)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근거가 되는 형법 조항이 있겠지요?
제347조의 2 [컴퓨터 등 사용사기]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절도죄는 이미 처벌 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행위인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해서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친 행위 부분입니다. 검찰은 형법 제347조의 2 위반으로 그 부분을 기소한 겁니다.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여 ’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한 경우라고 본 것이지요.
이 형법 조항은 생긴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새로 생겨난 범죄 유형이 되겠지요. 사람을 속인 게 아니라 기계를 속인 행위를 처벌하는 겁니다. 은행의 현금자동지급기를 속이고 돈을 빼간다, 허위로 입금 데이터를 입력시키고 돈을 빼간다, 이런 것들입니다.

‘사람을 속인 경우’가 아니라 ‘기계를 속인 경우’도 사기죄일까?

왜 이런 조항이 필요했을까요? 컴퓨터 등을 조작해서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한 경우에는 기존의 사기죄와는 달라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기죄는 사람을 속이는 거죠? 사람에 대한 기망 행위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컴퓨터 등을 조작한다?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속이는 거죠? 그래서 기존 사기죄로는 처벌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러면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었을까요? 절도죄는 점유가 이전되어야 합니다. 어떤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권리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넘어가는 행위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이 경우는 그것도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결국 사기죄로 처벌할 수도 없고 절도죄로 처벌할 수도 없는 경우를 고려해서 특별히 만든 조항이었습니다.

대법원이 대부분이 무죄라고 선고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휴대전화가 정보처리 장치인 건 맞다. 동의하시죠? 둘째,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것도 맞다. 동의하시죠? 하지만 잠금장치도 없는 휴대전화의 통화 또는 인터넷 연결 버튼을 누른 것을 두고 ‘부정한 명령’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부정한 명령을 ‘당해 시스템의 사무처리 목적에 비추어 지시해서는 안 될 명령을 입력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가 있고, 휴대전화의 인터넷 버튼을 연결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명령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명령이라는 거지요. 그 정도만으로 부당한 명령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바로 죄형법정주의입니다. 엄격해석주의입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리입니다. 법이 상식적으로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멋대로 확대해석하거나 고무줄 식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법을 엄격하게 해석해서 법이 꼭 예정한 경우만을 처벌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률이 없으면 범죄 없다’가 되는 것입니다.

‘사용 절도’로는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자동차를 몰래 타다가 제 자리에 갖다놓은 경우도 처벌할 수 없나요?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지요?

여기에는 형법 제 331조가 있습니다. 검찰도 이 조항을 모를 리 없었겠지요? 형법 331조의 2는 “권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원동기장치자전차를 일시 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백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면 휴대전화 사용 행위도 이런 식으로 권리자의 동의 없이 일시적으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순 없었을까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죄형법정주의’입니다. 형법 제331조의 2는 사용 절도 객체, 즉 사용 절도의 범행 대상이 되는 행위를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원동기장치자전차로 정해 놓았지요? 여기서 원동기장치자전차는 오토바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법은 딱 4가지만을 정해놓았지요? 이 4가지 경우를 권리자의 동의 없이 일시적으로 사용하면 ‘자동차 등 불법사용죄’가 되는 겁니다.

다시 묻습니다. “어차피 동의 안 받고 사용해서 손해를 끼친 경우라면 휴대전화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합니다. ‘죄형법정주의’입니다. 4가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보자는 것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길이 되겠지요? 이것이 죄형법정주의라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입니다. 그래서 죄형법정주의야말로 인권의 가장 기초적인 법 원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나요?

형사상 무죄라고 해서 민사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상으로는 당연히 불법행위이지요. 그래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해야 합니다. 5만 4천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해야 하는 거지요. 거기다 위자료도 구할 수 있겠네요. 위자료는 이혼할 때 주는 돈이 아니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내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고 또 나중에 휴대전화 요금까지 부담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물질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손해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대한 별도의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예 형사절차에서 한꺼번에 처리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절차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법을 해석하는 권한도 본래는 시민의 것입니다

저도 아침 신문을 읽다 재밌어서 한참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사실 이런 이슈는 법률가들도 천천히 읽고 확인해야만 되는 일입니다.
법은 특수한 영역이기 때문에 별도로 훈련되고 전문적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대륙법 국가의 전통이 있는가하면, 법은 상식이기 때문에 누구나 법률가가 될 수 있고 배심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미법 국가의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법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사법시험이라는 아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다는 ‘특수한’ 관념이 지배합니다. 저는 이 관념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모든 권력은 본래 시민의 것입니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모두 다 시민의 권리이지요. 일시적으로 위임했을 뿐입니다. 어렵다고, 모른다고 일을 맡겨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판사들을 감시하거나 감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안되겠지요? 제대로 감독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되겠지요? 그래서 시민 노릇하기도 쉽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입니다. 법은 상식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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