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계속 의료행위를 해도 되는가
환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계속 의료행위를 해도 되는가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9.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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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얼마 전 시민 한 분께서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는 의료인의 진료 중 성추문 관련 사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이 없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요지는 이런 파렴치한 직무상 범죄 행위를 저지른 의사들에게 면허 박탈 처분 등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지요.

사실 경찰 등 국가 공무원들이 범법행위나 기타 공무상 부적절한 행위를 했을 경우 사법 처분과는 별도로 강력한 징계 절차를 통해 신분상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신분이 다르지요. 변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인들입니다.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에 자율적으로 징계를 맡길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징계를 통제할 것인지가 일단 쟁점이 됩니다.

우리 법은 의료인의 의료 행위에 대한 허가권을 정부(보건복지부장관)가 갖고 있습니다. 대신 징계권도 역시나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습니다. (의료법 제66조(자격정지 등) 1항 :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인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술과 관련한 판단이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수 있다.)

국회에 제출된 여러 자료를 확인해 의료인에 대한 징계 실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진료 과정에서의 성폭행은 법 시행령에 따르면 ‘품위 손상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고, 현재 보건복지부의 해석도 그렇습니다.

이런 규정에 근거해서 보건복지부가 ‘품위 손상 행위’ 명목으로 이뤄진 징계 실태를 보면, 2010년 7월 31일 현재까지 최근 3년 간 총 57명(전체 행정처분 건의 4% 정도에 해당 / 연도별로 2008년 약 0.7%, 2009년 약 15%)의 의료인에 대해 자격정지 1개월에 해당하는 행정 처분을 시행했더군요. 다만 여기에는 부적절한 금품수수 행위 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직무상 행위 과정에서 이뤄진 성폭행에 대한 징계가 딱히 몇 건인지는 구분해내기 곤란합니다.

▲ 참고 1 :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른 최근 3년간 행정처분 현황('10. 7.31.현재)

이런 징계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개인과 의사 사이에 이뤄지는 각종 민형사상의 조치와는 전혀 다른 조치입니다. 우리 법은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그리고 행정처분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그래서 의료행위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우선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제기해서 해결할 수 있겠고, 재판 결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앞서 말씀드린 의료법 조항 위반을 이유로 별도의 징계 처분을 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련 조항에 비추어 볼 때 실상은 자격정지 1개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요. 이를 시민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출된 법안이 있더군요. 지난 17대 국회 때 민주당원 10분이 만들어 제출한 법안이 있습니다. 성폭력 등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파렴치 범죄에 대해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재교부도 금지하는 강력한 행정처분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입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경우 의료행위의 결격사유에 추가해 더 이상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영구적으로 면허를 박탈하도록 했습니다. 면허의 재교부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아예 법에다 못박아버렸지요.

여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 의견 제시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부정론에 가까운 신중론이었습니다. 내놓고 반대하기는 힘들었겠지요. 변호사 등 다른 전문 직업 자격증과 형평을 고려해야 하고 면허 재교부를 제한하는 일은 과도한 권리제한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대단히 객관성을 유지해가며 신중한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는 인상입니다. 물론 결론은 '반대'로 해석함이 합당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반대 때문이었겠지요. 직접적 이해 관계자인 대한의사협회가 반대 입장을 내는 앞에서 법이 통과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찬성에 가까운 신중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외면하기도 힘들었겠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법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반대가 있었겠지요. 민주당 법안이라 그랬을까요? 소위 속기록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17대 국회가 끝이 났고 이 법안은 결국 자동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누군가 새롭게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해야 합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요. 문제의 의료인들에 대한 강한 처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의료 행위라는 현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피해자와 시민사회의 여론이 드높아져 갑니다.  (제게 메일을 주신 시민께 대한 답장의 형식입니다.)

 

▲ 참고 2 : 현행 의료법 및 2007년 발의했던 법률 개정안(폐기)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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