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강목수
노숙인 강목수
  • 이기표 원장
  • 승인 2010.08.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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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얼마 전, 볼일이 있어 밤 열차로 상경하여 서울역 로비를 나서는데 꼬지지한 차림의 사내가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원장님 아잉교? 지를 모르겠심꺼? 강목수라예. 강목수!”
“아하! 강목수! 그런데 여기는 웬일입니까?”
“뵐 낯이 없심더. 다시 이 모양이 되어서...”

내가 운영하고 있는 부산보현의집에서 두어 해 정도 머물다 간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는데 무슨 장사를 하다 빚더미에 올라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고 했었다. 아내는 그때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어린 아이들만 보호시설에 맡긴 채 노숙인으로 떠돌다가 우리 쉼터를 찾아왔던 것이다.

노숙인 대부분이 그렇듯 그도 입소하던 무렵에는 알콜 중독자였다. 하지만 우리 쉼터의 자활프로그램인 ‘일자리찾기’ 사업을 통해 건설현장 등지를 찾아다니며 돈을 모았었다. 그리고 그 얼마간의 돈으로 방을 얻어 아이들과 함께 살겠다며 사회로 복귀했었다.

그가 강목수로 불리게 된 것도 건설현장에서 익힌 목수기술로 쉼터의 이곳저곳을 매만졌기 때문인데 솜씨가 제법이었다. 그랬던 그가 다시 노숙인이 되어 서울역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국밥집으로 데려가서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어보았다.
“어쩌다 다리를 다쳤습니까? 아이들은 또 어찌하고?”
“오토바이타고 가다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빙신 됐심더. 돈이 없어서 손 한번 몬써보고 이래 되고 말았지예. 장애자라고 기초생활연금이 나오긴 하는데 한 달에 50만원도 안 됩디다. 그걸로 월세 20만원 줘야지예, 또 전기세 수도세 줘야지예, 그래삐리고 나면 어린 새끼들 밥 멕일 돈도 없으니 우예 사능교.”

그는 보현의집에서 퇴소 한 뒤 보호시설에 맡겨두었던 두 아이들과 함께 단칸방을 얻어 생활했다고 한다. 다행히 퀵서비스업체에 취직했지만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오토바이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그리고 더 이상은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연금에만 의지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 아이들을 다시 보육원에 맡긴 채 거리생활을 거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조차 지킬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며 넋두리를 이어갔다.

“원장님예. 정부에서 우리 같은 기초생활자에게 보조해주는 식비가 하루에 얼만지 아능교? 1인당 2천원이라예. 2천원! 라면 한 그릇 값도 안되는 거라예. 그러니 우얍니꺼. 일 년이 넘도록 생선꼬랭이는커녕 어린애들한테 과자 한 봉지, 과일 한쪽 사주지 못했심더. 그랬더니 인마들이 머락카는지 압니꺼? 차라리 보육원이 낫다카데예. 그래서 다시 데려다 줬는데, 그노마들한테 과자 한 봉지 몬사준 게 철천지 한이 됩니더.”

그는 국밥 한 그릇조차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 한 그릇 먹여보지 못하고 다시 보육원에 맡긴 죄책감이 그의 모든 것을 얽어매고 있었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어디 그 뿐이랴. 수많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강목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겨우 몇 십만 원의 생활보조금으로 집세와 공공요금을 해결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결국 단칸방마저 포기하고 노숙인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강목수처럼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병원치료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철저한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중얼거렸지만 턱도 없는 말에 불과했다.

“원장님예. 지 같은 놈에게 무슨 좋은 날이 있겠십니꺼? 부처님도 예수님도 우리 같은 놈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데예.”
“그게 무슨 소리요?”
“게우 밥 한 그릇씩 나눠주는 종교단체도 있지만 그런다고 우리 생활이 바꿔집니꺼? 우리가 바라는 것은 종교계가 정치인들에게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거라예. 정치하는 양반들이 젤로 무서워하는 게 종교단체 아닝교?”

오죽이나 답답해야 저런 불평을 하랴 싶어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정치하는 양반들 하는 짓 좀 보이소. 멀쩡한 학생들에게까지 공짜밥 멕여준다 하면서 밥 굶는 우리한테는 신경 하나 안 쓰는 거라예.”

학생들에게 무료급식 할 예산으로 노숙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당장에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게 하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종교계가 그 역할을 감당해 달라는 것이고, 그것이 보다 실질적인 자비실천이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종교계의 빈민구제활동은 너무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저런 자선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서민정책을 만들어 정부로 하여금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건의하고, 우리 사회가 나눔의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종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강목수의 푸념대로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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