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의 6대조인 진서공(公)은 고려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사람으로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경북 풍산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대대로 물려받던 벼슬길도 끊겼다. 가문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집을 옮기기로 작정하고 좋은 터를 찾아 삼남을 뒤졌으나 눈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지나던 노승이 다가오더니 옆자리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남루한 행색으로 보아 탁발승이라 짐작하고 무료를 달랠 겸 스님에게 말을 걸었다.
“이 더위에 탁발하러 다니느라 고생이 심하시오. 실은 나도 새로 지을 집터를 구하느라 몇 달 째 삼남을 헤매고 있으니 우리 신세가 비슷하구려.”
가만히 듣고 있던 스님이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안동 땅 물돌이골에 가면 아주 빼어난 길지가 있긴 한데, 그 터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소.”
스님이 자격을 운운하자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진서공이 화를 벌컥 냈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만도 만석 지기가 넘는데 그까짓 집터 하나 차지하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이요.”
위세를 떨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진서공이 한참을 걸어가다 스님이 일러준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팔도를 떠도는 탁발승이니 숨어있는 명당자리를 보아두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걸려 물돌이골에 당도하여 여기저기 살펴보던 그의 두 다리가 한 곳에 말뚝처럼 박혀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는 큰 물줄기가 휘돌아들고 뒤로는 구릉이 병풍처럼 둘러친 것이 언뜻 보기에도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는 명당자리를 발견한 것이다.
진서공은 그 곳에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대들보만 올라가면 멀쩡하던 기둥이 까닭 없이 나자빠지기를 거듭하는 통에 진척이 되지 않았다.
목재를 다듬던 일꾼들까지 망연자실하며 한숨만 쉬고 있을 때, 남루한 행색의 노승이 나타나 주인을 찾았다. 얼마 전에 집터를 알려준 그 스님이었다.
진서공이 그 제서야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고 지난날의 무례를 사과하며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얘기한 뒤 괴변이 일어나는 까닭을 물었다.
“이 터는 자손이 번성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울 길지 중의 길지로서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요. 기둥이 쓰러져 일이 지연되는 것은 주인의 덕이 모자라 생긴 일이니, 꼭 여기에 집을 지으려거든 앞으로 삼년 동안 열심히 덕을 쌓은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해보시구려.”
스님의 얘기를 듣고 난 진서공은 그날부터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재물을 나눠주고, 배고픈 나그네에게는 밥과 옷을 적선하는 등 덕을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과연 아무 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공사가 마무리되고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스님이 찾아왔다. 진서공이 반갑게 맞이하며 은혜 갚기를 청했다.
“스님께 큰 은혜를 입었으니 절을 하나 지어드리겠습니다. 해마다 공양미도 넉넉히 바칠 터이니 그만 탁발하는 고행은 끝내시지요. 부처님께 올리는 정성으로 알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스님이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부처는 배를 곯으면서도 고생을 참고 견디는 불쌍한 민초들이라오. 그러니 그들에게나 덕을 베푸시구려. 이 터가 자손이 번성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울 명당임에 틀림없으나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사람이 덕을 쌓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을 주는 법이외다.”
스님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은 진서공은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을 베풀었다고 한다. 또한 스님의 예언대로 유성룡을 비롯한 빼어난 인재들이 후대를 이어가며 가문을 영예를 드높였다.
풍산 유 씨 문중이 오늘에까지 명문가로서의 맥을 이어가는 것도 자비를 실천하는 가풍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땅과 같은 자연물도 남에게 덕을 쌓는 사람에게나 은혜를 베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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