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금모으기 운동’ 상찬, 그리스를 위한 글일까?
<중앙일보>의 ‘금모으기 운동’ 상찬, 그리스를 위한 글일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5.31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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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경제는 대차대조표로 말해야 합니다.
지난 11일(화) <중앙일보>는 ‘개인 먼저 살겠다는 2010 그리스, 나라 먼저 살리자던 1998 한국’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통신 칼럼리스트가 쓴 ‘유교 사상에 반하는 그리스의 고통 없는 구제금융’이라는 글에 자극을 받아 쓴 특집기사입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1998년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아 민간에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산업계에서는 노사정 합의를 하는 등 온 국민이 단합해서 외환위기를 극복한 데 반해, 작금의 그리스 사태를 보면 유럽연합의 지원만을 기다리면서 재정개혁안에 대해 파업과 투석시위로 맞서는 모습이 대조적이라는 것입니다. 글 말미에 다시 페섹의 말을 빌어 “구조조정 등의 조치가 경제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점잖게 끝을 맺고 있지만, 사실상 그리스 경제를 걱정하는 기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경제활동은 대차대조표로 말해야 합니다. IMF를 탈출하기 위해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을 합니다. 무려 20억 3천만 달러의 금을 모았습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노사정 위원회에서 고용유연성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페섹이라는 칼럼리스트에게는 이것이 ‘유교정신’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모두 조금씩 양보하자고 했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대차대조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이용한 <민중의 소리> 2002년 6월 21일자 기사입니다. “97~2001년간 소득분위별 소득증가율에서 상위 20%는 19.6%의 소득상승을 경험했고, 하위 20%는 IMF 직후의 소득감소를 간신히 회복한 수준인 4.0%의 상승에 그쳤다.”

더 놀라운 부문은 자산격차입니다. 2009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황현일 연구위원의 논문에 따르면, 1998~2005년까지 상위 10%의 총 자산은 2.1배 늘어난 반면, 하위 60%의 자산은 1.4배 늘어난 데 그쳤습니다. 확인하기 힘듭니다만, 하위 60%라는 점에 유의한다면 서민층의 자산상승은 거의 없거나 혹은 마이너스였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경제위기를 포함한 변동기에는 다양한 디바이드(격차)가 경제주체들의 운명을 바꿔놓기 일쑤입니다. IMF 직후 상황은 어땠을까요? 김영삼 정부 시절 벌어지기 시작한 자산격차로 인해 자산 디바이드는 이미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형국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재정을 투입한 공적자금으로 한숨을 돌린 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둔 채 ‘유동성 위기’를 부채질 했습니다. 이것은 참여정부 들어 자산폭등의 원흉이 됩니다. 공적자금 자체가 디바이드 역할을 하는 모럴헤저드가 벌어진 것입니다.

‘금모으기 운동’과 ‘노사정 합의’를 상찬하는 중앙일보의 기사가 ‘천안함 참사’나 ‘지방선거’와 겹쳐 보이는 것은 ‘오버’일까요? 언제나 서민은 자신도 모르는 디바이드의 희생자가 되어 불평등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경제는 대차대조표로 말해야 합니다. 정치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중앙일보>가 왜 페섹의 글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지, 그에 앞서 <조선일보>가 같은 칼럼을 소개했는지 우연은 아닙니다.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이후 국제회의에서 ‘아시아적 양식’에 대해 비판적인 말씀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그것이 경제위기의 또 다른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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