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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서 희망의 촛불을 보았습니다_ 도법스님
 인드라망
 2008-12-19 16:23:48  |   조회: 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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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도법 서울시민에 고함] 농촌서 희망의 촛불 보았습니다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장ㅣ경향신문


안녕하십니까. 서울 순례길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순례자는 서울의 성격과 내용을 한마디로 ‘악마의 마술도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의 존재가 악마입니다. 사람을 유혹하여 혼을 빼놓는 재주가 마술입니다. 악마의 마술은 대단히 유혹적이고 황홀합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보지만 버텨내는 장사가 별로 없습니다. 아차 하고 깨달았을 때엔 이미 마술의 잔치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하고 체념하며 정신없이 마술의 재미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자신을 보면 마치 불빛을 찾아간 불나비 꼴입니다. 기대했던 영광은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도법스님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2004년 시작된 탁발순례 5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절명상을 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돌아온 것은 피곤과 상처와 죽음입니다. 참상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0일간 순례하며 돌아본 서울은 영락없이 불나비를 피곤과 상처와 죽음의 나락으로 유혹하는 불빛과 같은 악마의 마술도시였습니다.

마술도시에 살고 있는 당신 삶의 실상이 어떤지 살펴봅시다. 항상 지금은 숨가쁘지만 2만달러 시대가 된 다음엔 내 삶이 여유로울 거야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오늘을 희생시키며 2만달러 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살고 싶은 여유로운 삶은 여전히 먼 훗날의 꿈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진 미래엔 내 삶이 편안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의 고단함을 견디며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살고 싶은 편안한 삶은 또다시 미래의 바람으로만 남아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생활이 편리해진 훗날엔 우리의 모든 바람들이 실현될 것이라는 신념으로 지금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다음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왜 가면 갈수록 삶이 더 숨가쁘고 팍팍하고 불안한 것입니까.

서울의 삶엔 내일만 있고 오늘이, 다음만 있고 지금이, 미래만 있고 현재가 없습니다. 바로 누려야 할 지금의 홀가분한 삶을 믿을 수 없는 다음을 위해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만끽해야 할 여유로운 삶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다음으로 미루어 놓습니다.

오늘 즐겨야 할 편안한 삶을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유보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같이 입에 달고 다니는 바빠, 바빠뿐입니다.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입버릇처럼 되뇌는 힘들어, 힘들어만 있습니다. 현재 있는 것이라고는 눈만 뜨면 부딪히게 되는 큰일 났다, 큰일 났다만 있습니다. 서울의 삶이란 내일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허망한 마술의 불빛에, 다음엔 행복해질 것이라는 허망한 마술의 불빛에, 미래엔 행복할 것이라는 허망한 마술의 불빛에 넋을 잃은 바보의 삶입니다.

현재의 주체적인 삶, 개성있는 삶, 창조적인 삶, 역동적인 삶이 없습니다. 돈, 부자, 일 등 미래라는 환상을 탐하는 어리석고 획일화된 덧없는 삶뿐입니다.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삶은 없고 있지도 않은 미래를 좇는 불나비 삶뿐입니다. 서울의 곳곳에 화려한 말도, 돈도, 집도, 자동차도 넘쳐나지만 당신이 당장 누리고 싶은 편안함, 여유로움, 따뜻함, 넉넉함, 인간다움은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가치의식과 삶의 방식을 붙잡고 살아가는 한 불나비 인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잘 될 거야 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좇는 한 우리가 희망하는 질 높은 삶은 덧없는 꿈이 되고 맙니다.

순례자도 한국 최대의 도시인 서울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어디에서도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울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의 산내로 내려가 그곳에서 내 인생의 꿈을 가꾸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진정한 희망의 촛불을 서울이 아닌 지역농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이고 자립적이고 아담하고 소박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촛불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내일이 아니고 오늘, 다음이 아니고 지금, 미래가 아니고 현재에 자유와 여유를 누리는 단순 소박하지만 위풍당당한 촛불들이 구석구석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촛불들은 경제타령의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경쟁력 타령의 홍수에도 휘말리지 않고 의젓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단순 소박한 촛불들의 삶은 내일이 아니고 오늘 편안합니다. 다음이 아니고 지금 여유롭습니다. 미래가 아니고 현재 홀가분합니다. 내일은 생각과 말뿐입니다. 미래는 물거품입니다. 다음은 뜬구름입니다. 오늘, 주체적이고 자립적으로 단순소박하게 잘 살면 내일은 저절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없이 많은 역사경험들이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만이 희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지역현장의 사례들이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단순 소박한 삶만이 희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경험과 현장사례들은 지역농촌에서 주체적으로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단순 소박한 삶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 확실한 희망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는 농업을 중심으로 개성 있고 의미 있는 당신의 희망을 꿈꾸십시오. 종합예술행위인 집짓는 삶을 중심으로 지역농촌에서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당신의 희망을 가꾸십시오. 참사람을 키우는 지역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당신의 희망을 꽃피우십시오.

멋과 여유를 창조하는 지역문화활동을 중심으로 인간적인 품격을 갖춘 당신의 희망을 만들어 가십시오. 지역농촌에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 우리시대의 희망입니다.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의 촛불을 밝히는 것이 우리시대의 대안입니다. 지역곳곳에서 다양한 가치가 살아 숨쉬고 다양한 삶들이 펼쳐질 때 그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활기찹니다. 인간적인 삶을, 참사람의 삶을, 여유로운 삶을,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면 당신이 서울을 떠나십시오. 지역농촌으로 돌아가 단순소박하지만 주체적이고 개성 있는 삶을 꿈꾸십시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청안청락하십시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_ 도법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2008-12-19 16: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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